자리잡은 공교육정상화법…교육과정 위반 염두에 둔 대학들의 행보
대학별 ‘특색’ 사라진 점 아쉬워…반수생 양산 가능성도

현장 교사들을 중심으로 논술전형 풍토가 사뭇 달라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공교육정상화법을 기반으로 한 선행학습 영향평가가 자리잡으면서 논술고사 난도가 대폭 낮아졌다는 것. 자연계에서는 수능만 잘 준비하면 논술 대비까지 가능하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사진은 논술고사를 치르기 위해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한국외대 제공)
현장 교사들을 중심으로 논술전형 풍토가 사뭇 달라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공교육정상화법을 기반으로 한 선행학습 영향평가가 자리잡으면서 논술고사 난도가 대폭 낮아졌다는 것. 자연계에서는 수능만 잘 준비하면 논술 대비까지 가능하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사진은 논술고사를 치르기 위해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한국외대 제공)

[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사교육을 유발한다며 ‘축소 대상’으로 점찍혀 점점 그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논술전형이 오명을 벗어던지고 다시 예전의 위용을 되찾을 수 있을까. 현장 교사들을 중심으로 논술전형의 풍토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선행학습 영향평가를 주축으로 한 공교육정상화법이 자리를 잡으면서 전반적으로 논술고사 난도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자연계열의 경우 수능만 잘 준비하더라도 논술고사 대비에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쉬워진’ 논술, 자연계 ‘이점’ “수능 대비가 곧 논술 대비” = 최근 고교 현장을 중심으로 ‘논술전형’ 대비가 매우 쉬워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학들이 논술고사 난도를 대폭 낮춘 탓에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논술전형에 도전하기 쉬워졌다는 얘기다.

쉽다는 반응이 주로 나오는 것은 자연계열이다. A고 진학부장은 “최근 대학들의 논술고사가 상당히 쉬워졌다. 예전에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합격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전부 풀어야 합격을 노릴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논술고사 합격선이 올라갔다는 것은 그만큼 고사 난도가 낮아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계열의 경우 수능만 착실히 준비하더라도 논술고사 대비가 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창영 휘문고 교사는 “자연계열 논술이 특히 쉬워졌다. 수리논술의 경우 수능 기출문제들을 풀 때 풀이과정을 곁들인다면 논술이 대비되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처럼 ‘쉬워진 논술’은 기존 인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본래 논술전형은 ‘사교육 유발 전형’으로 낙인 찍혀 점진적 축소·폐지 정책의 대상이 돼 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대학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출제되기도 해 사실상의 ‘본고사’라는 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교에서 대비 불가능한 난도의 문제들이 나오다 보니 학생들은 논술을 대비하기 위해 사교육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자리 잡은 선행학습 영향평가…대학들 논술 난도 대폭 낮춰 = ‘본고사’라는 평까지 받던 논술이 이처럼 난도를 대폭 낮추며 사교육 유발전형이란 ‘불명예’와 거리를 두게 된 것은 공교육정상화법과 관련이 깊다. 

선행학습금지법 내지 공교육정상화법으로 불리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학습 규제에 관한 특별법’은 대학들이 논술·면접 등의 대학별고사를 실시할 시 고교 교육과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들은 이 법에 따라 한 해 입시가 끝나면 선행학습 영향평가를 통해 교육과정 위반 사례가 없었는지 스스로를 점검한 후 3월 말 선행학습 영향평가 보고서를 낸다. 선행학습예방연구실과 공교육정상화심의위원회 등에서는 대학들이 낸 보고서를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벗어난 출제가 있었는지 점검한다.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위반 사례가 2년 연속 나오면 일부 인원에 대해 모집정지 처분이 내려진다. 지난해 연세대가 교육부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벌였던 것이 바로 논술고사 연속 위반으로 인한 모집정지 처분에 대한 것이었다.

이처럼 강도 높은 ‘점검’이 시행되는 탓에 대학들은 교육과정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을 쏟고 있다. 출제 교수진을 대상으로 고교 교육과정에 대해 상세히 안내하고, 문제 검토인력을 늘리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노력의 과정에서 논술고사 난도는 자연스레 낮아지고 있다. 

논술고사 난도가 낮아지는 것은 수험생 입장에서 보면 ‘호재’로 보인다. 누적 기록인 학생부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경우 도전하기 힘든 학생부종합전형, 같은 맥락에서 학생부 교과성적을 망친 경우 포기해야 하는 학생부교과전형 등과 달리 논술전형은 사실상 논술고사에서 당락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수능위주전형과 마찬가지로 ‘재도전’의 기회 측면에서는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 것이 논술고사다. 학생부위주전형을 준비하던 수험생도 쉬워진 난도로 인해 논술전형을 노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권’이 늘어나는 측면도 존재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논술고사 난도가 낮아지는 것을 경계하기도 한다. 대학 재학생들이 다시 수험에 뛰어드는 ‘반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 대학 입학팀장은 “논술고사 난도가 너무 낮아지면 졸업생들의 지원이 늘어난다. 자연계의 경우 대학에서도 수학을 꾸준히 공부하기 때문에 논술고사에 뛰어들기 쉽다”며 “특히 이러한 경향은 수능최저가 없는 대학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수능최저가 있는 경우에는 국어ㆍ영어 등도 따로 공부해야 하지만, 수능최저가 없으면 오로지 논술고사만 대비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대학별 ‘특색’이 사라지는 데 대한 아쉬움도 나온다. B고 교사는 “예전에는 문제만 보더라도 어느 대학의 논술고사인지 알 수 있을 만큼 특색 있는 문제들이 출제됐다. 지금은 난도가 일률적으로 낮아지면서 대학별 특색이 전부 사라진 상태다. 낮아진 난도는 긍정적이지만, 대학들이 선보였던 참신한 문제들이 없어지는 것은 다소 아쉽다”고 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