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수‧교수학습센터장

주현재 교수
주현재 교수

얼마 전 혁신지원사업 계획서 제출이 끝났다. 몇 달 전 처음 TFT(Task Force Team)가 꾸려질 때만 해도 이번에는 계획서니 좀 마음 편하게 준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혁신이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이 생각보다 컸다. 예상보다 고민의 시간과 기술의 정성이 많이 들었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좀 쉬어야지 결심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바쁘게 쫓기듯 살다가 준비가 부족한 채로 새 학년도를 맞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사업계획서가 제출되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좀 생긴 것 같다. 오랜만에 동료 교수들과 차 한잔 마시며 소규모 대학이 감내해야 하는 고충에 관한 설움을 공유했고, 주말에는 광화문 서점에 나가 독서의 여유를 즐겼다.

서점에 가니 익숙한 책이 눈에 들어온다. 보라색 표지로 감싸진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란 책이다. 나는 보통 감성적인 수필은 잘 읽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무려 3년간 100쇄에 무려 130만 부가 팔렸다. 저자 본인이 운영하는 1인 출판사에서 별다른 홍보 없이 거둔 결실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연보라색이 표지라는 점 등이 작용해 책을 사서 돌아왔다.

기대 반 흥미 반으로 책을 읽는데, 마음을 사로잡는 글귀가 있다. 작가는 책에서 멈춤을 이야기한다.

“종종 공백이란 게 필요하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우린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어야 한다.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러니 가끔은 멈춰야 한다 (p248)”

오늘날 대학은 혁신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혁신이란 말이 넘쳐나고 있다. 그만큼 혁신의 온도는 뜨겁다. 하지만 교육의 혁신은 너무 뜨거워서도 안 된다.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혁신의 온도가 알맞게 따뜻해지기 위해서는 2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혁신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란 점이다. 이기주 작가의 글처럼 사람에게는 종종 공백이란 게 필요하다. 유대인도 7일 중 하루인 안식일에 모든 것을 멈추고 쉼을 갖는 엄격한 전통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유대인의 창의성의 비결이라고 한다. 불교계의 유명 작가인 혜민 스님도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교육을 혁신한다면 경쟁 구도가 아닌 상생 구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둘째는 '학생'이다. 우리는, 특히 교수들은, 지금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에 대해 잘 모른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그리고 신입생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교수회의 시간에 종종 이런 말이 들린다. 도대체 요즘 학생들은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하기야 40대 이상인 선생들이 최소 20년 이상 어린 2000년생을 이해하기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 유력 일간지는 최근 2000년생의 사회 데뷔에 맞춰 ‘2000년생이 온다’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그 시리즈를 위해 특별 취재팀을 꾸려 2000년생 30명과 전문가 10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별도의 설문 조사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2000년대생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자신과 연관된 공정성을 중시하는 ‘공정세대’를 꼽았다. 이들은 매우 개인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에 수저계급론처럼 거대한 사회 불평등 이슈에 반응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직접 관계된 출석 확인과 같은 사소한 불공정에 크게 분노한다고 한다.

오늘날 혁신은 무엇인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인가?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교육형식인가? 나는 교수와 학생이 자주 만나 온기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혁신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교수는 신입생의 신뢰를 받기 위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른 것보다 교수의 지도능력과 섬세한 수업 설계가 충분히 신뢰를 받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은 절대로 쉽지 않다. 따라서 교육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대학 구성원부터 먼저 쉼표를 중요시하고, 상생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학생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긴 호흡의 접근이 필요하다. 3년간 진행될 대학혁신사업을 통해 머리와 가슴에 새겨지는 온기 있는 교육이 실천되길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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