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성 본지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공학

대학입시에서 정시모집과 학생부종합전형 중 어느 것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데 더 좋은가는 우리 사회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돼 찬반이 극심하게 나뉘는 주제다. 이에 대한궁극적인 평가는 각 방식으로 선발된 학생들의 대학 학업 성취도에 대한 종적분석을 통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근 이에 대한 자료들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데, 필자의 대학의 경우를 보면 학점으로 대표되는 학업성취도의 경향이 이 두 그룹의 학생들에게서 다르게 나타난다. 한 그룹의 학생들이 다른 그룹 학생들에 비해 저학년에서는 성적이 낮으나 3학년을 넘어가면서 역전하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이는 듣기로는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된다고 한다. 언뜻 이것은 기대된 바대로 바람직한 선발방식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근래 학생들의 대학생활을 보면 이러한 기대는 형편없이 깨지고 만다. 대학의 본질과 존재이유를 흔들고 있는 취업지상주의의 세태 때문이다. 고등학교 진학에서부터 시작되는 취업을 위한 전쟁은, 대학 입시는 물론, 대학재학 기간 내내 계속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근래엔 졸업을 유예하면서까지 이 전쟁의 기간을 늘리고들 있다.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서 학생은 0.1점이라도 학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결석하는 날엔 부모님의 애절한 부탁 전화를 동원하기도 한다. 이렇게 대학캠퍼스에 다니는 초등학생의 모습을 보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대학의 문화와 낭만에 대한 얘기는 1학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나 들린다. 날씨 좋은 봄날에 하루는 결석해도 좋다고 말해 주어도 종강까지 한명도 결석이 없는 전공수업이 근래 종종 생기고 있고, 학과체육대회가 없어진 지는 꽤 됐다.

물론 취업의 문제뿐 아니라 혼자 커온 요즘 학생들의 취향도 개입된 현상이겠지만 한마디로 공부 외엔 관심도 여유도 없다. 다른 생각과 경험을 하는 여유를 갖지 못하고 공동체의 연대감도 배우지 못하는 이런 대학생활은 직장생활에도 연장되고 있는 듯, 근래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직장에서의 소속감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선배 졸업생들은 말하고 있다. 이렇게 대학이 취업준비를 위한 학원으로 전락하면서 정작 좋은 사회인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점만을 가지고 ‘우수한 대학생활’ 또는 ‘우수한 성취능력’을 판단하는 일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영국의 Legatum institute에서는 Prosperity Index(국가번영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2009년 우리나라는 여기서 104개 국가 중 26위를 했는데, 작년 말 보고서에서는 35위로 크게 후진했다. 얼핏 생각하면 그간의 경제와 민주화에서의 발전에 힘입어 순위가 올랐어야 할 것 같은데 안전, 환경, 사회적 자본 등의 지표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 하락이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다.

특히,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평가가 31위에서 78위로 아주 낮아졌다. 사회적 자본은 다소 생소하지만 이해가 어렵지 않은 개념이다.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되는 것이 사회적 자본이다. “지난 한 달간 당신은, 자선기관에 기부한 적이 있는가? 또는 도움이 필요한 낯선 이를 도와준 적이 있는가? 또는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는가? 지난 1년간 당신의 가족이 다른 가정을 도운 적이 있는가? 어제 하루 사람들이 당신을 존중하며 대했나? 당신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당신을 도와줄 친구나 친척이 있는가?” 국가들의 사회적 자본에 대한 평가를 위해 갤럽에서 하는 질문들을 보면 아주 쉽게 그 개념이 잡힌다. 국민 개개인이 부자가 아니어도 다들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기에 국가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가치다.

특히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당분간 경제적 확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에서 경제가 아니고 사회적 자본의 확대를 통해서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일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갤럽의 질문들을 내 경우에 비춰 보면 우리의 사회가 사회적 자본을 얼마나 빠르게 잃어가고 있는지가 아주 잘 느껴진다. 이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 지식인과 지도층의 의식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함께 느끼게 된다.

이제라도 대학에서 이를 키워 줘야 이들이 사회에서 그 역량을 발휘해 미래에 우리의 사회적 자본을 부유하게 만들 것이 아닌가? 과연 지금 얼마나 대학들이 이 사회적 자본의 역량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추구하고 실제로 노력하고, 실현하고 있을까? 공립대학인 필자의 대학만 하더라도 공익적 역량을 배양할 목표로 사회봉사 교과목들을 두고 있긴 하지만 학생들의 실제 대학생활은 예의 ‘공부기계화’의 트렌드가로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AI의 시대에 대학들이 키워내야 할 인재는 ICT 전문가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자본을 키우는 창업가와 역군이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자본의 역량이야말로 ‘우수한 대학생활’과 ‘우수한 성취능력’의 주안점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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