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단] 혁신의 두 가지 의미
[수요논단] 혁신의 두 가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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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 연성대학교 기획처장
이현호 기획처장
이현호 기획처장

2019년은 새로운 틀의 대학 재정지원사업이 시작되는 해다. 전문대학의 경우,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사업(SCK)와 세계적 수준의 전문대학 육성사업(WCC)이 종료되고 대학혁신지원사업이 시작된다. Ⅰ유형(자율개선형)과 Ⅱ유형(역량강화형)은 대상 대학들이 계획서를 제출한 상태다. Ⅱ유형은 선정평가, Ⅲ유형(후진학선도형)은 신청서 제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의 핵심 키워드는 ‘혁신’이다. 대학들은 ‘혁신’을 정의(定意)하기 위해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4차산업혁명과 4C형(창의성, 비판적사고, 협업, 소통) 인재, 대학 핵심역량과 역량중심 교육과정 운영, 학사운영의 유연화, MOOC로 대표되는 온라인 학습, PBL/플립트 러닝 등의 새로운 교수학습법, 데이터 기반 성과분석 등 내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분석과 국내외 사례 연구를 통해 도출된 혁신의 재료들은 많이 나와 있지만, 막상 이러한 재료들을 가지고 어떤 메뉴를 만들어야 할지 뚜렷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왜일까? 좋은 재료(아이디어, 사례)도 많이 나와 있고 재료 살 돈(재정지원)도 주었는데 맛있는 메뉴(프로그램)를 못 만들어낸다고 세프(대학)만 탓할 수 있을까? 대학들에게 ‘혁신’은 왜 풀기 어려운 숙제일까?

우선, 혁신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들 수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대표적인 대학 혁신모델로 미네르바대학을 꼽는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의 GFA(Global Freshman Academy) 또한 교육과정 운영의 혁신 사례로 얘기되는데, 1학년 기초과정을 전 세계 어디에서나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없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서 물리적인 캠퍼스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불법이다. 캠퍼스가 없는 대학은 존재할 수 없으며, 외부 교육장을 운영할 수 있으나 매우 제한적이거나 운영을 위한 전제조건들이 많다. 온라인 수강을 통한 학점 취득도 고등교육법상 전체 학점의 20% 이내로 제한된다. 현재와 같은 규제가 있는 한 미네르바대학과 ASU의 사례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혁신지원사업은 일반재정지원사업으로 기존의 SCK와 같은 목적형 사업보다는 사업비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좀 다른 것 같다. 아직 정식 사업비 운영지침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사업 설명회나 Q&A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일부 사업비 집행대상의 확대가 이루어지긴 했으나 대부분의 비목에서 SCK에서 인정했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해외 어학연수 집행 불허나 자격증 응시료 지원 불가 등 오히려 SCK보다 집행범위가 더 엄격해진 비목도 존재한다. 국고집행의 책무성과 목적에 어긋나는 사업비 부당집행 방지라는 측면을 이해하더라도 사업을 목적형에서 일반형으로 바꾼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둘째로 ‘하고 싶은 사업’과 ‘해야 할 사업’간의 미스매치다. 대학은 ‘혁신’을 위해 특정 부문에 과감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고 싶지만, 기본적으로 돈을 투자해야 할 곳이 너무 많다. 혁신지원사업에서는 혁신과 차별화를 강조하지만, 대학이 생각하는 이번 사업의 목적은 이번 사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장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이 있다. 기본역량진단의 목적은 대학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을 잘하고 있는가에 있고, 혁신과 차별화를 포인트로 하는 혁신지원사업과는 분명히 다르다. 예를 들어, 학생지원 부문에서는 기초학습이나 학생상담이 강조된다. 대학은 학업능력이 떨어지거나 정서적 안정성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관리하고 교육시킬 책무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본역량진단 관점에서는 바람직한 접근이다. 그런데 대학들은 기본역량의 강화는 교비, 혁신역량의 강화는 사업비와 같은 원칙을 세워 운영할 만한 재정적·인적 여력이 없다. 그래서 혁신지원사업에 혁신보다는 기본 프로그램에 가까운 기초학습이나 상담프로그램을 계획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평가 방식의 역량진단 체제 역시 대학들을 다다익선식 실적쌓기로 내모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처럼 ‘혁신’에만 몰두할 수 없는 혁신지원사업은 현 대학정책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대학의 ‘교육혁신’뿐만 아니라 정부의 전향적인‘대학정책혁신’이 같이 추진될 때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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