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희 본지 논설위원/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필자가 대학원생으로 재학하던 시절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의 프랑소아 쿠어렌이라는 커뮤니케이션학자의 특강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쿠어렌 교수는 ‘Non-Human Agency(비인간 행위성)’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무언가를 바꾸는 힘인 ‘에이전시’는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으며 인간이 아닌 생명이나 사물도 에이전시를 발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당시에 함께 참석했던 동료 학생과 타 교수님들은 쿠어렌 교수에게 많은 질문을 했으며, 필자 또한 인간이 아닌 사물조차도 에이전시를 갖는다는 관점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약 1년 뒤, ICA (International Communication Association) 정기학술대회에서 우연히 쿠어렌 교수님의 발표를 다시 접할 수 있었고 당시에도 청중들로부터 많은 질문이 있었다. 이처럼 인간이 아닌 행위자가 에이전시를 발현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최근에는 쿠어렌 교수님의 말씀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특히 스마트폰을 필두로 파괴적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수많은 기술이 개발돼 사회 각 영역에 침투돼 왔고, 현대인은 이러한 기술들에 크게 의존하면서 사람과 기술 중 어디에서 에이전시가 보다 강하게 발현되고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일례로, 필자가 글을 쓰기 시작하기 이틀 전 필자는 기술에 대한 의존으로 인해 상당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됐으며, ‘등·하교 안심 문자 서비스’를 지원하는 자그마한 기기는 필자와 필자의 아내로 하여금 극도의 불안감을 심어줬다. 두렵도록 강한 에이전시를 발현하면서…. 즉,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는 혼자 하교할 수 없고 보호자가 하교를 시켜줘야 하는데, 아무도 하교를 도우러 학교에 가지 않았음에도 필자의 아내에게 12시에 딸아이가 하교했음을 알리는 문자가 수신됐다. ‘오작동’의 가능성을 알지 못했던 우리 부부에게 딸아이가 아직 학교에 있음을 확인하기까지의 시간은 너무나도 느리게만 흘렀고, 불안감과 긴장감은 딸아이가 학교에 있음을 확인하고도 한참 동안이나 지속됐다. 아이가 제때 등교하고 하교함을 자동으로 알려줘 부모에게 ‘안심’을 제공하는 문자 제공 서비스가 오작동 한 번으로 ‘불안’을 심어주었을 때, 쿠어렌 교수의 ‘Non-Human Agency’가 떠올랐음은 커뮤니케이션학자로서의 직업병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에게 ‘불안’을 심어줬던 ‘등·하교 안심 문자 서비스’의 오작동이 일종의 해프닝에 의해 발생한 단발성 에이전시의 발현이라면, 스마트폰으로 인한 일상 생활에서의 비인간적 에이전시의 발현은 조직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기존의 연구를 살펴보면, SNS를 비롯한 각종 디지털 미디어가 조직의 경계를 침투하면서, 조직원들 간의 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반면, 임무 수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게다가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조직원들의 내·외적인 소통에 대한 통제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통한 사적인 소통으로 인한 업무 방해를 예측하고 측정해 그 효과를 분석하기도 어려우며,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규제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따라서 다양한 디지털 기기의 조직 내 활용은 ‘주의산만’과 ‘소통확산’이라는 측면에서 아이러니한 성격을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업 중 스마트폰 활용과 관련해서는 ‘주의산만’이라는 부정적인 결과에 조금 더 무게를 싣게 된다. 사전이나 사례를 찾는 것과 같이 보다 정확한 지식의 습득을 위해 스마트폰이 활용된다면,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수자와 교습자 간의 소통(언어적·비언어적 소통)이 원활해야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진대, 같지만 (Offline) 다른 (Online) 공간에 있는 교수자와 교습자 간의 소통에 있어서의 분리는 교육적 효과를 제한한다. 스마트폰이라는 비인간 행위자가 현대인들에게 갖는 파워는 이전 미디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이럴수록 집에서, 조직에서,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스마트폰이라는 행위자에게 고개 숙일 것이 아니라, 때로는 고개 들고 외면할 줄도 아는 당당한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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