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 / 본지 논설위원, 전 월간 에머지 발행인

게이오 대학(慶應義塾大學)은 1858년 창립 당시부터 ‘실학(實學) 정신’을 이념으로 삼았다. 서양의 합리주의를 배워 일본의 ‘부국강병’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일본의 개화 사상가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가 세운 학교다. 그의 초상은 지금 일본 화폐 1만엔권을 메우고 있다. 이 대학의 그 후 특색은 일본의 부국강병이라는 목표보다도 서양의 합리주의라는 방법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2차 대전 이후는 이 대학의 이런 특성이 일본 전체의 특성이 된 것 같다. 서양의 합리주의를 추구한 결과 망외(望外)로 얻은 것이 부국강병이었다. 부국강병은 내셔널리즘이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게이오 대학의 후지자와 쇼난 캠퍼스는 1990년에 개교한 새로운 개념의 대학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21세기형의 복잡하고 세계화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선명한 목표를 걸어 놓고 있다. 총합정책학부, 환경정보학부, 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부와 대학원 모두 ‘학과목’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별 프로젝트를 걸어 놓고 ‘문제 해결’을 해나가는 것을 공부로 삼고 있다. ‘학과목’은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도구로서만 배운다. 게이오와 함께 일본의 양대 사립대학의 하나로 꼽히는 와세다(早稻田)대학의 건학 이념은 ‘관학(官學)에 대한 자유주의 정신’이었다. 그러나 그 후의 특색은 자유주의보다는 일본의 전통성과 민족주의에 더 경사(傾斜)되어 있었다는 평을 들어 왔다. 그러고 이런 특성이야 말로 와세다를 게이오와 구별 짓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의 와세다는 달라 보였다. 와세다의 도쿄 캠퍼스는 5만 명의 재학생이 뿜어 내는 넘치는 다이너미즘이 압도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외국인 유학생 수가 많고 외국의 4백개가 넘는 대학들과 교류를 맺어 세계적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었다. 와세다의 페컬티 멤버들은 거의 말끝마다 ‘열린 대학’, 세계화, 정보화를 강조하고 있었다. ‘세계의 대학과 경쟁, 협조하는 대학’이 되는 것이 새로운 교육체제라고 주장하는 강력한 교육관(敎育觀)을 그들은 자랑으로 삼고 있는 듯 했다. 이번에 우리 일행이 가 본 일본 교육기관 가운데 내가 평소에 가장 많은 호기심을 가졌던 곳은 마쯔시다정경의숙(松下政經義塾)이다. 마쯔시다전기회사의 회장이던 고(故) 마쯔시다고노쓰께(松下幸之助)가 일본과 세계의 지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기금 1백억 엔을 내어 창립하였다. 금년이 창설된 지 25년으로 매년 7, 8명의 신입생을 뽑아서 최장 3년간 무상으로 교육한다. 지금까지 2백여명이 의숙을 거쳐 나갔으며 그 가운데서 60여명이 정치가가 되었다. 이 숙생(塾生)은 모두 의숙 안에서 생활하며 수업료를 비롯하여 일체의 비용은 의숙이 부담 한다.상근 교수는 한 명도 없다. 강의는 그때그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제목으로 삼아 그 방면에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을 강사로 초빙한다고 한다. 강사료는 교통비 정도를 지급하는데 대부분 기꺼이 응낙한다고 한다. 마쯔시다씨는 장기적 전망이 없다는 것이 일본 정치의 최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25년을 한 기로 삼고 10기, 즉 2백50년간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런 장기 계획을 세울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 그의 포부였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일본을 세금이 없는 무세국가(無稅國家)로 만들 수 없을까 하는 것을 장기적 전망의 하나로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지도자는 다른 사람이 가르칠 수 없으므로 숙생은 모든 공부와 수련에서 자수자득(自修自得)하는 것이 의숙의 원칙으로 되어 있었다. <연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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