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영 / 본지 논설위원, 포항공대 교수

최근 일부대학의 수시모집에 의한 신입생선발과정에서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 하여 교육부에서 감사를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떤 국회의원은 국정감사를 통해서 고교등급제에 의한 학생선발을 끝까지 밝혀내겠다는 말을 하였다. 이것은 우리정부가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정부의 기준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라는 정책때문에 모든 고등학교 수준은 똑같다는 가정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 전세계는 교육의 수월성을 최우선으로 삼고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21세기에 중국의 1백개대학을 세계수준으로 올리자는 211공정을 실시하고 있으며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부여하고 있다. 전국적인 국가시험을 실시하고 있지만 문제는 대부분 주관식으로 우리나라처럼 시험이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그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아니고 고교 성적을 참고하는데 우리처럼 백분율에 의한 내신등급제는 없다. 미국대학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이 만점이라도 에쎄이와 사회봉사, 지도력등을 고려해서 불합격될 수도 있다. 따라서 A고교에서 2등한 학생은 불합격되고 B고교에서 10등한 학생이 합격된 것을 가지고 언론에서 문제삼는 경우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학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1351개의 일반계 고교와 729개의 실업계 고교가 있다. 이들이 모두 똑 같은 수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잘못된 평준화개념 때문에 과학고에서 중간수준의 학생들은 내신성적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보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과학고의 중간수준 학생은 일반고의 상위수준학생과 동등한 경우가 많다. 과학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하는 학생은 대부분 과학고 학생들이다.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는 민족사관고는 학생수가 극소수인 때문에 내신에서 크게 불이익을 당하므로 국내대학 대신 외국의 저명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많이 보고 있다. 국내대학에는 불합격되는 학생이 미국에 저명한 대학에 합격되는 사태를 보고도 우리의 잘못된 제도를 고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고교 평준화정책을 실시해온 결과는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중에서 부유층자녀 비율이 훨씬 높아졌다. 고소득층 부모 1만명당 자녀가 서울대 사회대에 입학하는 수가 1985년에는 8.2명이었고 일반가정 부모 1만명당 6.4명이었다. 그러나 15년동안에 그비율은 16.8배로 증가되었다. 사회대 신입생 가운데 서울출신자의 비율은 41.9%이며 부산이 10.3%, 대구가 7.2%를 차지해서 대도시 출신 학생이 59.4%나 되었다. 강남지역 고교생은 사교육을 통해 곧바로 새로운 입시제도에 적응하여 높은 입학률을 보이고 있다. 결국 평준화 정책과 쉬운 출제경향이 오히려 부유층자녀에게 유리하게 된 것이다. 하바드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뉴욕주, 칼리포니아주와 마싸츄세츠주학생들이 많지만 소득이 낮은 알라바마와 미씨씨피주 학생들에게 일정비율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대학에는 ‘수석입학’이라는 용어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어떤 시험성적에 의해서 학생을 선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룩쉴드 같은 여배우도 프린스톤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으며 한국계 첼리스트 장한나양도 하바드대학에 입학하였다. 각대학마다 선발기준이 다르며 거기에 대하여 학부모나 언론이 시비하지 않는다. 한편 입학원서만 내면 입학이 가능한 대학도 미국에는 많이 있다. 평준화정책을 폐기하고 대학입시를 각대학에 자율적으로 맡기면 가난하지만 우수한 학생들이 명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많아진다. 무엇보다도 1분내에 정답을 고르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세계수준의 인재양성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국가경쟁력의 퇴보를 의미한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조속히 평준화 정책을 버리고 대학에 학생선발 자율권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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