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청원고 교사

배상기 청원고 교사
배상기 청원고 교사

오늘 필자의 책상 위에 누군가 노란 리본 배지를 놓고 갔다. 노란 리본은 세월호를 생각나게 하고, 그때의 참상을 기억하게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했고 눈물을 흘렸던 사건인가.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힘들고, 가장을 잃은 아내와 자녀들이 어렵게 지내게 된 사건이다.

요즈음은 따스하고 꽃이 많이 피는 봄이지만 가슴 아픈 사건들이 많다. 3월 1일, 4월 16일, 4월 19일, 그리고 5월 18일 등등 역사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들을 지나온 것 같다. 해마다 봄이 되면 온 세상에서 생명력을 느끼지만,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표현한 것처럼 잔인한 계절이다.

가수 양희은씨의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라는 가사가 가슴속에서 맴돈다. 또한 가수 이문세씨의 노래 ‘그녀의 웃음 소리 뿐’이란 노래의 가사가 생각난다.

“하루를 너의 생각하면서 걷다가 바라본 하늘엔/ 흰구름은 말이 없이 흐르고 푸르름 변함이 없건만/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걸...”

필자도 큰 아들을 멀리 유학 보내고서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눈물이 났다.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다시 오면 과거의 그 시절이 아니기에, 그 시절에 함께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함께 하고 싶었으나 대학입시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아쉽기도 하다. 아들도 아빠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필자는 아들이 떠난 후로 많은 생각을 했고, 지금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아들이 아빠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을까? 지금은 내가 아들에게 어떤 의미로 살아 있을까? 아들은 그가 다녔던 학교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그러면서 세월호와 함께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학교와 가정, 친구와 선생님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안고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또한 생명력은 있지만 잔인한 계절에 이 세상을 뒤로 한 젊은 학생들에게 학교와 가정, 친구와 교사는 어떤 의미였을까를 생각했다.

우리는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은 우리의 안전을 담보하지 않고, 우리의 행복도 담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도 모르는 위험에 노출돼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아이들의 학창시절과 청소년 시절이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시절이었으면 좋겠다.

큰 아들이 어릴 때 몹시 아파서 울고 있었다. 감기몸살로 아팠는데, 아파서 죽을 거란 공포에 휩싸였던 모양이었다. 나를 보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아빠, 살려주세요. 아빠, 살려주세요. 아빠, 살고 싶어요.” 지금도 그 눈빛과 그 눈물이 생생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필자는 아들의 청소년 시절에 행복한 경험을 많이 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아빠가 자기를 정말로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돼 인생을 돌아보면서, 청소년 시절의 의미를 아빠와 함께 여러 가지 활동을 했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회상하게 하고 싶었다.

​노란 배지를 옷에 달면서 다시 생각했다. 아이들은 학교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아이들은 집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있을까?

이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무엇이 있을까?

천상병 시인은 그의 시 <귀천>에서 인생을 소풍이라 하고, 아름답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처럼 우리는 이 세상을 소풍이라고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청소년들이 각자에게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했으면 좋겠다. 성적을 추구하고, 성적을 지상의 과제처럼 보는 학교이지만, 친구와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의 인생이 무슨 의미였을까?’라는 질문에 기쁜 대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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