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호 본지 논설위원/고려대 블록체인연구소 소장(컴퓨터학과 교수)

인호 고려대 교수
인호 고려대 교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필자는 소프트웨어(SW)중심대학사업의 ‘SW벤처융합전공’ 주임교수로 학생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한 여대생에게 들었던 말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학생은 1,2학년 때 수학을 전공하고 3,4학년 때 SW중심대학사업으로 만들어진 SW벤처융합전공으로 전과해 SW창업을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이 안에서 팀을 만들어 교내 창업경진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유망벤처 여성경영인’으로 선발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스타트 텔 아비브의 결선까지 진출해 다양한 곳에서 수상과 투자를 받는 성과를 올렸다. 

물론 상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지는 않았을 터다. 이 학생이 받은 창업교육을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아울러 국내 대학이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교육이 무엇인지도 살펴볼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문제발굴(Problem-Finding)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SW벤처융합전공 학생들이 들어야 하는 첫 번째 과목이 스탠퍼드대에서 시작한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이다. 이는 창의력 훈련을 체계화시킨 것으로 문제해결(Problem-Solving)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문제발굴(Problem-Finding) 관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매일 주어진 시험 문제를 틀리지 않고 빨리 푸는 데만 초중고 12년을 보낸다. 대학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수가 내주는 시험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 학점을 잘 받고 취직도 잘 된다. 이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 성공하는 데 밑천이 됐다. 하지만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세대에 당면한 중요한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정의하는 문제발굴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창의력의 첫 단추다. 이 학생은 스마트워치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고객 관점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빨리 문제를 파악해 해결해 주목 받았다. 문제발굴 능력이 뛰어난 셈이다. 

둘째는 팀워크와 소통 능력을 훈련해야 한다. 문제발굴이 잘 됐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이 학생의 전공이 수학이다 보니 프로그램 실력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대안을 생각한 게 외부와의 협력이었다. 이내 컴퓨터학과와 디자인학과 학생을 섭외해 하나의 팀으로 조직해 잘 이끌었다. 우리나라의 고교 현장을 보면 축구·야구 등과 같이 또래 친구들과 운동을 같이 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고, 심지어 친구에게 자신이 필기한 노트도 보여주지 않는다. 상황이 이럴진대 어떻게 팀웍을 훈련할 수 있겠는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창업교육이다. 이를 통해 팀웍을 배우고 그 안에서 리더십을 배울 수 있다. 또한 팀내의 소통뿐만 아니라 외부 투자자에게 자사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소비자 입장에서 잘 어필해 투자를 유치하는 방법도 터득할 수 있다. 특히 이공계 학생들은 교과과정에서 팀 단위의 과제를 통해 훈련을 함으로써 소통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셋째는 도전과 실패를 통해 자기주도적 삶의 태도를 배양해야 한다. 어렵게 팀을 만들고 투자를 받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사람들 앞에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 과정이 남아 있는 것.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진짜 고객에게 혹독한 피드백을 받고 크게 실망하기 마련이다. 이 학생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자기주도적 삶의 태도를 만들었던 데 있다. 작은 실패를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고 용기를 내어 하나씩 수정해갔고,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 학생은 창업교육을 통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기존 대학교육이 주어진 문제를 시간 안에 풀어 답을 제출하고, 학점을 받아 취업하는 일종의 길들여진 생산자·개발자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정글의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세상의 난제를 찾아 스스로 팀을 꾸리고 세상과 소통하며 해결책을 만들고, 때로는 좌절과 실패를 극복하면서 성공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인생으로 바뀌어야 할 때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가기 위해 혹은 인공지능이 단순한 사무직을 전부 대체하게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대학교육을 통해 문제발굴 능력, 팀워크와 소통능력 그리고 자기주도적 삶의 태도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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