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본지 전문위원 / 한국 과학재단 기초연구지원단장

작년말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대학원에 지원하고자 하는 학부 졸업생으로부터 진학을 상담하는 전자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내용은 ‘○○대학원 과정에 관심을 가진 학생입니다. 제가 대학원 과정에 다닌다면 등록금 지원이 가능하며 어느 정도의 월급을 줄 수 있습니까?’라는 내용이었다. 예전의 대부분의 대학원 진학 희망자의 질문은 ‘진학을 위해선 어떤 공부를 해야 되나요?’, ‘어느 정도의 학부 성적이면 진학이 가능한가요?’, ‘전공 학위 취득 후 어떠한 진로를 갈 수 있나요?’ 등이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위와 같은 급여(?)에 대한 질문이 가끔씩 있다.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언제부터 사제관계가 노사관계처럼 되었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학문적 열정이나 미래에 대한 굼보다는 현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틀린 것만은 아니지만 학문영역까지 이렇게 삭막한 거래와 타협이 이뤄져야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러한 왜곡된 사제관계의 형성에는 수년전부터 시행하는 대학지원 프로그램인 교육부의 BK21 프로그램의 기요도 일부는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연구경쟁력이 있는 분야의 국가적인 집중지원을 통한 국제적 연구경쟁력 향상의 취지는 좋으나,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법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BK장학생으로 진학한 대학원생의 경우 지원받는 학자금에 대해서 교수가 본인에게 지급하는 연구에 대한 인센티브나 과제수행에 대한 인센티브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국가가 지급하는 급여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수의 학생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므로 대학원을 진학하는 학생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지도교수로부터 급여 형태의 장학금을 요구하게 된다. BK지원을 못 받는 학교의 경우, 우수한 학생들의 모집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원하는 양질의 당근(?)을 제시해야만 되는 현실이 요즘 대학가의 풍토이다. 물론 우수한 인적자원의 확보 및 교육을 위해서는 대학원생을 위한 많은 장학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대학원 지원정책이 왜곡된 사제지간을 형성하거나, 학문 발진의 불균형을 이루는 독초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많은 연구자들이 우수한 연구를 하며 좋은 연구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다수의 교수들이 좀더 좋은 연구 환경에서 연구원 및 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더 많은 연구비를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몇몇 연구자의 경우 연구원과 대학원생들의 적정한 인건비를 지급하기 위해서 혹은 연구에 꼭 필요한 고가의 기자재를 구입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다소 융통성있게 연구비를 운용하는 경우가 잇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비 지원기관에서 정해진 원칙을 따르지 않는 것은 물론 불법이다. 결국 이러한 연구자는 연구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서 범법자가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제자를 기르기 위해서 범법자가 되기도 하는 스스의 어려움을 제자들이 아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언제부터인가 우수한 연구자란 제자를 잘 가르치고 좋은 연구업적을 내는 연구자가 아니라, 제자에게 잘 보이고 규정대로 연구비를 처리하고 연구보고서를 깔끔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닌가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재의 왜곡된 스승의 모습은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관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세태에 이르렀고 제도적인 개선을 통한 교수의 권위회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구자들의 양심과 책임하에 보다 포괄적으로 연구비를 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연구 결과의 질과 내용의 우수성으로 과제의 성취도를 평가 받을 수 있는 투명하고 공정한 연구평가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해당 연구원들과 대학원생들의 인건비 지급이 보다 현실화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제도 개선 등을 통해 많은 연구자들이 제자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연구 및 교육환경이 형성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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