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수 본지 논설위원/한양대에리카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박기수 한양대에리카 교수
박기수 한양대에리카 교수

이청준은 자신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 서문에서 이 소설이 읽히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라고 말했다. 1976년 출간된 이 작품이 아직도 스테디셀러로 읽히고 있는 것은 작가의 우려처럼 아직 우리가 ‘우리들의 천국’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까닭이다. 일방적인 정부주도의 개발독재를 중의적으로 비판했던 이 작품에서 작가는 천국을 누가, 왜,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종합적인 성찰을 요구했다. 분명한 것은 천국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으려면 그것이 당신들의 것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가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되었다. 둘째의 말로는 학교에서 출신 학교나 전형 등을 서로 묻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그 의도를 미뤄 짐작할 수는 있었다. 출신 학교를 물으면 사는 지역이나 일반고인지 특목고인지 드러나게 될 것이고, 수시·정시 비율의 불필요한 논란을 부르고 싶지 않아서였으리라. 하지만 곧 이 두 개의 질문이 왜 문제가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둘째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자기네 과 동기들 대부분이 특목고 출신이었단다. 둘째네 학교는 고집스레 정시 전형 비율을 20% 미만으로 설정하고 있으니 학생부교과전형이나 학생부종합전형으로 특수 특목고 출신들을 선발하려 한다는 주장이 입시학원가에서는 정설처럼 떠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자율성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교육을 통해 스스로의 위상을 정립해 가야 하는 것이 대학이라면 학생선발권은 가장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덕목이다. 4차 산업 운운하며 미래교육과 교육 혁신을 이야기하는 ‘지금 이곳’에서 학생 선발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둘째네 학교의 독자적인 행보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주목해야할 의미 있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정부는 국가장학금이나 재정지원사업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대학의 자율적인 행보를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은 학생 선발, 재정, 교육과정 및 학사운영 등에서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대부분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대학의 재정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등록금 동결을 압박하고, 등록금을 대체할 수 있는 재정 확보 방안은 차단한 채 글로벌 경쟁력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까? 천문학적인 자체 펀드를 운영하는 미국의 주요 대학들과 세계 대학 순위를 비교하면서 그들의 선진 모델을 우리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식민지 지식인의 인정투쟁이거나 일방적인 폭력에 가깝다.

위기가 일상화된 대학의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수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령인구 감소나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요구되는 교육혁명의 더딘 진전, 에듀테크의 눈부신 발전에도 강의실 기반 강의 중심 교육의 한계 등은 이미 충분한 문제 제기를 통해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급변하는 교육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각종 대학 규제나 재정지원을 볼모로 한 정부 주도의 대학교육에 있다. 생존을 담보로 요구하는 모든 사업의 한계는 분명하다. 자생력의 필수요소인 자율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학이 차별화된 교육 목표, 내용, 방식을 가지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지원사업의 천편일률적인 선발 기준과 일방적인 운영지침, 경직된 사업비 집행 규정의 불합리성은 대학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차별화되지 않은 교육,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은 교육의 끝은 자명하다. 

우리 사회 전반의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교육 분야의 변화가 더딘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것과 이해관계로 상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은 개인이나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어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사적인 이해관계로 파악하려 하고, 대학을 교육소비자를 일방적으로 수탈하는 ‘갑’의 전형으로 인식시킴으로써 미래를 열어갈 주체가 아니라 부조리를 개선해야할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대학에서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대학의 차별성을 훼손시켜서는 곤란하다. 재정난을 겪는 대학에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지원을 확대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대학의 자율성을 통제하고 겁박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차별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당신들의 대학을 넘어서 우리들의 대학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