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기하와벡터 미적분 중 택 1…탐구, 과탐 선택 필요
서울대 ‘기존 체제’ 유지…과탐 서로 다른 과목, Ⅱ과목 필수 응시
7차 교육과정부터 이어진 계열 통합 실패…수능 체제 무시 불가

주요대학들이 일제히 2022학년 수능에서 '이과'를 구분하기로 함에 따라 당초 정부가 2015 개정 교육과정 발표와 함게 제시했던 '문이과 통합'은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정시박람회에서의 상담 모습. (사진=한국대학신문DB)
주요대학들이 일제히 2022학년 수능에서 '이과'를 구분하기로 함에 따라 당초 정부가 2015 개정 교육과정 발표와 함께 제시했던 '문이과 통합'은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정시박람회에서의 상담 모습.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목표로 알려진 ‘문이과 통합’이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다. 2022학년 수능 선택과목을 놓고 주요대학을 비롯한 대학들이 수학과 탐구에서 자연계열 선택과목을 지정, 사실상 고교에서부터 계열을 구분토록 했기 때문이다. 대입에 종속되는 경향이 강한 중등교육의 현실상 대학들이 수능에서 선택과목을 지정하면, 고교에서는 앞서 계열을 구분해 대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만, 교육계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정부의 정책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보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통합’이 아닌 ‘불분과’로 교육과정의 취지를 바라본다면 개정교육과정이 취지를 잃은 것은 아니라고 보는 의견도 존재한다. 자연계열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대학들이 선택과목을 지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문과·이과 구분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21개 대학, 2022학년 수능 지정과목 발표, ‘이과’ 구분에 방점 = 교육부는 4월 30일 2021학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발표하며, 서울권 주요대학 등 20개 대학의 2022학년 대입 수능 선택과목 지정 현황을 함께 공개했다. 2022학년 대입전형 시행계획은 내년 4월말까지만 발표하면 되는 것이지만, 현 고1 학생들에게 빠른 정보 전달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사전 공개’를 추진한 것이다. 앞서 교육부는 올해 3월말 열린 전국 입학관련처장협의회 정기총회를 통해 대입전형 시행계획 발표 시 학내 의견을 모아 2022학년 대입 관련 변경사항을 발표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교육부가 대학들에 사전 공개를 요청한 것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현장에서 풀어내는 방식과 연관이 깊다. 현재 고교에서는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고1은 공통과목 체제, 고2부터는 선택과목 체제를 적용하고 있다. 늦어도 올해가 끝날 때까지는 대학들의 선택이 전부 공개돼야 학생들이 2학년 진학 시 교과목을 고르는 것이 가능해진다. 

2022학년 수능은 국어와 수학, 탐구, 제2외국어/한문에서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준다. 국어는 화법과작문, 언어와매체 중 1개를 선택해야 하며, 수학은 확률과통계, 미적분, 기하 중 1개를 택하는 구조다. 일반계 기준 탐구영역은 사회 9과목과 과학 8과목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2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같은 날 2021학년 대입전형 주요사항과 더불어 2022학년 대입전형 예고사항을 발표한 서울대까지 총 21개 대학의 선택은 크게 수학과 과학에서 ‘이과’ 구분을 했는지에서 차이가 났다. 

수학의 경우 주요대학의 선택이 일치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서울대를 비롯해 경희대·고려대·연세대·서강대·성균관대·연세대·이화여대·중앙대, 여기에 서울과기대까지 총 9개 대학이 기하와 미적분 가운데 1개를 선택하도록 하며, 확률과통계를 선택할 시 자연계열에 지원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나머지 대학들은 어떤 과목을 선택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탐구의 경우 사탐과 과탐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주요대학들은 자연계열 수험생의 경우 과탐을 선택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서울대는 물론이고 경희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연세대·이화여대·중앙대 등 주요대학과 인천대·한양대(ERICA)까지 총 10개 대학이 자연계 수험생에게 과탐 2과목 선택을 요구했다. 서울대는 현행 대입과 마찬가지로 과탐 2과목은 서로 다른 과목으로 구성돼야 하며, Ⅱ과목을 1개 이상 필수 응시할 것도 제시한 상태다. 이외 11개 대학은 사탐과 과탐의 선택을 수험생들의 몫으로 돌렸다. 

수학과 탐구 외 다른 영역에서 선택과목을 지정한 경우는 없었다. 국어의 경우 계열을 구분하거나 선택과목을 지정한 사례가 존재하지 않았다. 영어나 한국사는 애당초 공통과목으로만 구성돼 있어 과목 지정이 무의미했다. 선택과목으로만 구성돼있는 제2외국어/한문의 경우에도 별도 지정이 이뤄진 사례가 없었다.  

21개 대학 가운데 ‘문과’를 별도 구분한 곳은 서울과기대가 유일했다. 서울과기대는 인문계 수험생들은 수학 선택 시 확률과통계를 선택하도록 했다. 자연계열 수험생은 기하와 미적분 중 하나, 인문계열 수험생은 확률과통계를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다른 대학들은 인문계열의 경우 자연계열 수험생이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반면, 서울과기대는 ‘교차 지원’을 할 수 없도록 대입전형을 설계한 셈이었다.  

대학들은 개정 교육과정의 정책목표가 ‘통합’에 찍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보기 위해서는 선택과목 지정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한 대학 입학팀장은 “문이과를 굳이 나누지 않겠다는 것이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지만, 수능에서 선택과목이 제시된 이상 수험생들에게 명확한 방침을 안내할 필요가 컸다. 이공계·자연계에서 공부하려는 학생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는 것은 좋지 못한 방향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대학들의 선택은 ‘교육부의 의중’을 십분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앞서 교육부는 입학처장들에게 제시한 사례를 통해 자연계열에서 확률과통계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송근현 대입정책과장은 “자율적으로 학생들을 두면 자연계에서 상대적으로 쉬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거나, 사탐만 선택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자연계나 이공계 진학 희망 학생이 확률과 틍계를 듣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기하나 미적분 가운데 하나는 듣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무위’로 돌아간 문이과 통합 놓고 평가 엇갈려…통합 실패, 처음 아니야 = 이처럼 대학들이 선택과목을 지정하면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정책목표로 제시됐던 문이과 통합은 무위로 돌아갔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자연계열 수험생도 사회탐구를 선택해 공부할 수 있고, 수학에서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 개정교육과정의 취지였는데, 수능 지정과목의 등장으로 이러한 선택권이 사실상 원천 봉쇄됐다는 것이다. 

물론 ‘문이과 통합’이 무위로 돌아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 2015 개정 교육과정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2005학년 대입을 치른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된 7차 교육과정부터 이미 문과와 이과의 경계는 사라져 있는 상태였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처음 대입에서 문과와 이과가 구분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 실시된 경성제대 예과 시험부터다. 해방 이후에도 문과, 이과 구분은 지속됐다. 예비고사-본고사 체제 당시 예비고사는 공통과목 체제였지만, 대학별 본고사는 계열 구분이 있었다. 이후 학력고사 시절도 마찬가지다. 학력고사는 계열별로 실시되는 시험이었다. 수능 역시 실시 첫 해를 제외하면 계열 구분이 존재했다”며 “2005학년 실시된 선택형 수능부터는 모든 영역을 수험생이 선택 응시할 수 있기에 형식적으로 문이과 구분이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대학에서 수능 반영 시 인문계는 수리나형과 사탐, 자연계는 수리가형과 과탐을 지정했기에 사실상 구분이 계속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계열 구분이 생긴 것을 놓고 교육계의 평은 엇갈린다. 정부가 치중한 ‘통합’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평가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선택형 수능이 존재하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고교교육과 대학교육의 연속성을 고려했을 때 자연계에서의 과목 지정이 옳은 방향이라는 의견도 있다. 

문이과 통합이란 말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견도 있다. 일찍이 교육계에서는 2015 개정교육과정을 ‘문이과 통합’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시선을 드러낸 바 있다. 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던 당시 “새 교육과정의 취지는 문과와 이과를 나누지 않는 데 있다. ‘통합’이란 말을 쓰면서 오해가 생기는데, ‘불분과’란 말로 표현해 보면 교육과정의 의도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는 융합형 인재를 만드는 것과 거리가 멀다. 문과와 이과를 굳이 나누지 않겠다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이과 불분과는 문이과 폐지에 보다 가까운 개념으로 두 계열을 유사하게 만드는 통합과 달리 계열 구분을 없애 학생들의 선택권을 극대화하는 것에 집중하는 차이가 있다. 

긍·부정 시선을 제외하고 보면, 이번 선택과목 지정으로 인해 현재 수능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쏠림 현상’은 2022학년에도 여전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탐의 경우 Ⅱ과목을 1개 이상 응시하도록 규정한 서울대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Ⅰ과목을 2개 선택해 수능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현재도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들은 주로 Ⅰ과목 위주로 과탐을 선택하고 있는데, 이 구도가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학습 난도가 높아 기피 대상으로 전락한 물리 과목을 회피하는 경향 역시 고스란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수험생의 선택은?…수준 따라 엇갈릴 선택과목 = 교육부가 현황을 취합해 공개한 20개 대학과 서울대를 제외하면 아직 전체 대학들의 선택은 오리무중이다. 서울권 주요대학 중에서도 한양대와 서울시립대가 2022학년 수능 선택과목을 명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학도 결과적으로는 나머지 주요대학과 같은 선택과목 체제를 따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이번에 선택과목을 특정한 대학들 가운데 8개 대학이 서울권 주요대학에 속한다. 서울시립대·한양대 등이 아직 방침을 밝히지 않았지만, 유사한 방향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다. 이들 대학도 수험생들이 입시를 준비하는 데 있어 혼란을 막으려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영덕 대성학력평가연구소장도 “자연계열 수험생에게 수학에서는 기하나 미적분 중 하나, 탐구에서는 과탐 2과목을 선택하도록 한 대학이 많다. 지방거점국립대 등도 비슷한 선택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여타 주요대학이나 지방거점국립대가 같은 방침을 택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대입구조상 주요대학의 선택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입은 선호도 높은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을 얼마나 끌어오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우수 자원을 선발하는 것이 대입의 본질이라는 점에서다. 주요대학의 선택과 다른 방침을 택하는 경우 해당 자원들을 끌어들이기란 요원해진다. 

이 경우 자연계열 수험생들의 과목 선택은 ‘수준’에 따라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먼저 최상위권은 물론이고, 상위권 내지 중상위권 수험생들의 경우 주요대학이 제시한 대로 수학에서는 확률과통계를 배제하고, 탐구는 과탐 2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특히 대다수 상위권 학생들은 기하와벡터보다는 상대적으로 학습하기 쉬운 미적분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인문계 수험생들이나 자연계열에서 중위권 이하 수험생들은 수학에서 확률과통계를 선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대학 외 대학들이 수학에서 별도 지정과목을 두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쉬운 과목을 선택해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어려운 과목을 선택해 좋지 않은 성적을 받는 것에 비해 현명한 결정이 될 수 있다. 

수험생들은 향후 대학들의 세부 내용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어디까지나 이번에 공개된 것은 수학과 탐구 지정과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과목 선택에 따른 가산점이나 특정 과목 선택에 따른 보상 등 세부내용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별도 과목을 지정하지 않더라도 특정 과목에 가산점을 주는 경우 실제로는 과목 지정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에 차후 세부 대학들이 발표할 세부 안을 꼭 살펴야만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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