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희 전남도립대학교 교수(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 대학지자체상생발전위원장)

한강희 교수
한강희 교수

살다보면 ‘진부한 듯, 진부 아닌, 진부 같은 레토릭’ 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5월을 두고 붙여지는 표현이 딱 그렇다. 5월은 ‘계절의 여왕’으로, ‘가정의 달’이다. 며칠 전까지 땅바닥에 납죽 엎드린 냉이, 민들레, 엉겅퀴, 개망초 류의 로제트 식물들도 한 달 사이 일제히 고개를 치켜세우고 있다. 영산홍의 만개가 끝물로 치달을 무렵이면 봄의 막차를 탄 대추나무에도 파릇하게 물이 올라 잎새를 틔우리라.

5월은 유달리 사람살이와 관련된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여기에는 세상에 태어나 내 삶의 여정을 마감할 때까지 유기적으로 관계를 이뤄 도움을 주고받으며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라는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 청명무구한 5월의 싱그러운 하늘 아래 영장류로 사는 것에 대한 보람과 유포리아(euphoria)에 대해 옷깃을 여미라는 함의 또한 담고 있으리라.

사람이 여타 생물체에 비해 ‘만물의 영장’이라 불린 연유는 짐작건대 인간 고유의 고도 이성인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 5월의 캘린더 속에는 인간 삶의 관계 속의 성장을 독려하기 위한 기념일이 다수 포함돼 있다. 1일은 근로자의 날, 5일은 어린이 날, 8일은 어버이 날, 10일은 유권자의 날, 12일은 석가탄신일, 15일은 스승의 날이며, 18일은 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이며, 20일은 성년의 날이자 세계인의 날이며,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모든 사람은 유년과 아동기를 거쳐 청소년에 이르며, 성년 단계에는 부부라는 ‘이성지합(二姓之合)’을 만들어 둥우리를 틀면 어버이로 거듭난다. 한편 성년이 되는 과정에서는 제도적 기제인 교육의 장 속에 삶을 지탱하는 부대조건인 학습과 훈련을 지도하는 스승이 자리한다. 이 과정에서 ‘나’를 넘어 다른 것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차이와 다양성’을 습득하게 된다.

각설하고, 5월과 연관된 몇몇 기념일만이라도 해당 당사자들과의 관계를 의식하고, 마음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삶에 접근하는 한 표상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숙한 인격체’로 거듭나는 행위라 하겠다. 인간 삶은 관계 속에서만 영속할 수 있고, 그 가치를 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려와 감사’는 어디서 기원하고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당연히 소통과 공감으로부터 비롯되고 용서와 화해로 귀결될 때 완결된 구조의 스토리보드가 구현되는 것이다. 언필칭 불가에서는 속세를 고해(苦海)로 규정한다. 모름지기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사랑에 대한 갈구가 해소되고 무명(無明)이라는 답답한 갑갑증에서 벗어나는 방편은 배려와 감사하는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그 마음에 다다르는 길은 도처에 널려 있다. 저만치 비켜서 있는 것도,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실천 또한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모든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비집고 나와 구체적인 매뉴얼로 작성될 때 실현되듯이 감사와 배려는 한 장의 이메일(혹은 각종 SNS 채널)로 부쳐질 때 빛을 발한다. 표현하지 않는 것은 결코 배려와 감사가 아니다. 운전 중에 사람을 먼저 보내고 차가 나중에 가는 것도, 지하철 임산부석(pink zone)을 그대로 비워두는 것도 좋은 사례다. 당연히 정치인들의 이판사판식 강파른 언어는 국민의 심중을 헤아린 순화된 표현으로 바뀌어야 한다.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방문한 바 있는 데, 공사 중인 도로에 접근하기까지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 500m부터 50m에 이르기까지 표지판이 대여섯 개 세워져 있었다. 굽이굽이 난코스임에도 불구하고 20~30m 전방에 달랑 표지판 한 개 정도 있는 위험천만한 우리의 상황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이른바 ‘로드 킬’을 최소화하고자 그들은 국립공원 주변에 목책 경계선을 조밀하게 설치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사정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빈틈이 많아 지리산 국립공원 주변 도로에서 연간 수백 마리의 동물들이 애꿎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언제나 존재의 근원인 고독을 근간으로 결핍되고, 허기지고, 소외된 경계에 선 피조물이다. 한편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파에 짓눌려 무시로 흔들리는 측은한 존재다. 어쩌면 고독은 가장 아름다운 곳에, 가장 풍요로운 곳에, 가장 높은 곳에 은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위 권력자, 재벌 총수, 인기 연예인이 서둘러 생을 마감하거나, 세계 10대 도시사람들이 자살률 상위권역에 포진하고 있다는 통계지표는 이를 방증한다.

그렇기에 ‘배려와 감사’는 인간 삶의 염원에 생기를 불어넣는 풀무질이 될 수 있다. 며칠 후면 만천하(滿天下)인 삼천대천세계에 자비라는 이름으로 감로의 법비를 내리신 ‘부처님 오신 날’을 맞는다. 배려와 감사가 소통과 공감으로, 그리고 용서와 화해로 이어지길 희원하며,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합장하나니. ‘옴마니 반메훔 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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