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선 서강대 대우교수(입법학, 법정책학)

대통령제에 대한 애착이 큰 미국처럼 전직대통령예우법을 둔 나라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정신이 고도화된 나라일수록, 온갖 경제적 혜택과 특혜적 신분을 보장하면서 왕족 명문가 수준으로 떠받들어주는 방식이기보다는, 경호와 장례에 대한 필요성을 담은 정도에 그친다. 오히려 전직대통령이 좀 더 생산적이고 사회공헌적인 활동을 하는 경우에 이를 지원하는 내용에 더 관심을 둔다.  

법률 차원에서는 일단 그렇다 치더라도, 한 나라 공동체의 지성이자 철학의 정수인 ‘헌법’에까지 전직대통령을 떠받들어야 한다고 못 박아 둔 나라는 매우 드물다. 대한민국처럼 헌법에다가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나라로는 최근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진행하기도 했던 ‘칠레’가 눈에 띈다. 

칠레공화국 헌법은 제30조에서 ‘전체 임기를 채운 대통령은 퇴임 즉시 자동으로 전직대통령 예우를 받는다.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는 제61조제2문단‧제3문단‧제4문단 및 제62조를 적용한다. 대통령직이 궐위 됨에 따라 대통령직에 올랐거나 탄핵 심판에서 탄핵 결정이 내려진 경우 전직대통령 예우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전직대통령이 공금으로 보수가 지급되는 공직을 맡는 경우, 해당 기간 동안 전직대통령의 사법적 특권은 그대로 유지하되 수당이 지급되지 아니한다. 단, 고등, 중등 및 특수교육의 교육직 및 이와 유사한 성격의 직무 또는 위임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고 해 이것저것 산만하게 규정하고 있다.  

특유의 낭만정신과 더불어 사회적 역동성이 맞물려 흐르는 프랑스의 헌법에서도 눈길을 끄는 규정이 하나 있다. 프랑스 헌법 제7장 헌법위원회 제56조는 전직대통령이 헌법위원회라는 기구의 9인 위원 외에 당연직 종신회원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사, 제도 연혁, 순수 사법기관만으로 볼 수 없는 헌법위원회의 변형적 기구 성격 등을 두루 참작해야겠지만, 프랑스 헌법은 대통령으로서의 소임은 끝났지만, 전직대통령으로 하여금 헌법정신의 수호자라는 공적 역할을 새로 부여하고 있다. 이조차도 여러 가지로 정무적 의도가 반영된 예우 방식일 수 있겠다. 하지만 아무런 공적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온갖 특권과 특혜 속에서 만수무강 생활을 영위하시라 설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전직대통령 예우 규정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한편, 외국 헌법들 속에서 전직대통령 예우 규정과 대조되면서, 오히려 눈에 팍팍 들어오는 규정들이 있다. 특권 폐지, 특수계급 타파 정신을 담은 규정들이 그것이다. 

멕시코는 헌법 제12조에서 ‘귀족 칭호 또는 특권 및 세습적 영예는 인정되지 아니하고, 다른 나라에서 부여된 귀족 칭호 또는 특권 및 세습적 영예도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헌법 제16조도 ‘아르헨티나는 혈통에도 적용이나 출생에 따른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도 제11조2항에서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저 특수계급 불인정 규정이 양반-노비제 형태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직업적 신분이나 경제력 차이에서 오는 실질적 특수계급 창설 효과에도 결부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미 기득권의 중심이나 주변부에라도 편입돼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조차 힘들고 버겁기 때문에.  

국민행복지수 TOP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덴마크 헌법을 보면 한 사회의 철학이 어디까지 도달해 있는가,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보는 것 같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덴마크 헌법 제83조는 ‘귀족 신분, 관직, 계급에 부속된 모든 법률적 특권은 폐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직대통령이 소박하게 농부로 돌아가고, 사서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회는 정말이지 불경한 상상일 뿐인가. 전직대통령이 외교 촉진자로 벤처사업가로 지식사업가 등으로 나서면서, 탐욕과 감투놀이에 눈먼 한국 사회에 ‘묵직한 울림’ 전해주는 진짜 어른이었으면 하는 생각은 정녕 불온한 바람일 뿐일런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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