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通] 대학도서관의 ‘공간’으로서의 의미
[대학通] 대학도서관의 ‘공간’으로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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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수서정리팀 부장
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수서정리팀 부장
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수서정리팀 부장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시험기간이면 도서관 앞에 열람석을 차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길게 늘어선 학생들의 줄을 볼 수 있었다. 뽀얀 새벽안개 속에서 도서관이 열릴 때까지 잔뜩 웅크린 채 책을 보고 있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풍경이 돼 버렸다. 정보이용 방법의 변화와 함께 대학 곳곳에 휴게실과 학습실을 겸비한 공간이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줄까지 서 가며 도서관을 이용해야 할 이유가 줄어든 탓도 있을 것이다.

2000년대 초 부터 불기 시작한 대학도서관의 신축과 리모델링 붐도 이런 변화된 상황에 대한 대응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도서관을 신축하기 위해 어떤 대학은 600억원이 또 어떤 대학은 300억원이 들었다는 소문이 대학가에 돌기 시작했고, 예산 문제로 신축이 어려운 대학들은 적게는 몇 십억에서 많게는 몇 백억원을 들여 리모델링이나 증축을 단행했다. 전국적으로 1조원 가까운 금액이 대학도서관 신축과 리모델링에 투입됐다고 하는 걸 보면 대학도서관 신축과 리모델링이 시류이자 유행인 것은 사실이다.

사실 이와 같은 도서관 공간의 변화는 시대적 변화와 새로운 세대의 요구에 기반한다고 하지만 도서관 이용자 수의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그런 탓에 도서관 공간이 점점 북카페나 대형서점 매장과 유사해지고, 학생들이 선호하는 각종 편의시설과 휴게시설이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영화감상실, 휴게실, 세미나실을 비롯해 두 명이 같이 앉아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커플 공간을 제공하는 대학도서관도 있다.

점점 더 화려하고 호화로워지는 대학도서관들을 보고 있노라면 몇 가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첫째, 대학도서관은 어떤 의미를 주는 공간이어야 할까? 이용되지 않는 도서관은 죽은 도서관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이용자의 수를 늘리기 위한 공간의 변화보다 도서관을 방문하는 이들이 지식과 학습의 중요성을 느끼고 사유와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각종 자료와 정보를 바탕으로 창의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겉의 화려함보다 전통과 역사가 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것이 오히려 쾌적하고 화려한 공간이 넘치는 세상에서 대학도서관을 차별화하고, 복잡한 세상으로부터 치유와 휴식을 원하는 이용자를 오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학도서관은 교문 밖에서 접할 수 있는 북카페나 대형서점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 세상에 가볼만한 도서관을 소개한 책을 보면 수백 년 이상 된 도서관들이 첨단화를 지향하는 도서관들보다 더 많이 소개되고 있다. 이 도서관들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의미한 도서관일까?

둘째, 시대의 변화와 유행에 따라 대학도서관 공간을 변화시켜야 할까? 도서관이 대중의 변화상만을 추구한다면 도서관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공간을 변화시켜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자의 패턴과 선호도를 감안해 발 빠르게 변화돼 갈 대형서점이나 북카페를 비롯한 각종 상업시설을 추월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용의 활성화를 위해 도서관 공간도 이용자의 요구와 시대적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도서관의 자료나 서비스가 아닌 공간만을 향유하는 이들을 위한 변화는 도서관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쾌적함과 편리함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도서관에서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1990년대 국내 대학도서관 공간에 도입된 Information Commons 개념이 두 단계를 더 거쳐 Makerspace 개념으로 진화하는데 불과 30여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대학도서관 공간을 시대의 변화에 맞추겠다는 발상은 욕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현재와 같은 공간의 개선이 역할의 최선을 지향하고 있는가? 도서관은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 말은 사서가 이용자의 동선 속에 있어야 하고, 이용자와 활발히 접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의 도서관 공간은 이용자가 원한다는 이유로 다양화되고 목적에 따라 분리됨에 따라 오히려 관리를 위한 인원이 더 필요해졌다. 그러나 한정된 사서 인력이 필수 업무에 투입될 수밖에 없어 이용자와의 접점이 필요한 자리는 근로학생이나 비전문인력으로 대체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공간의 개선은 오히려 사서와 이용자의 접점을 축소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사서가 이용자들로부터 분리되고 배제된 도서관은 이미 도서관이 아니다.

이용자를 도서관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만큼이나 도서관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도 중요하지 않을까? 전국의 모든 대학도서관이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 똑같이 닮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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