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보현 강릉원주대 전자공학과 교수

왕보현 강릉원주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
왕보현 강릉원주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

리쓰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Asia Pacific University, APU)은 국제화에 성공한 대표 대학이다.

이 대학이 자리한 일본 오이타현 벳부市는 우리에게 온천으로 널리 알려진 인구 13만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다.

하지만 6000명의 재학생 중 절반에 해당하는 3000여명이 60여개국에서 모여든 해외 유학생이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 이처럼 국제화된 대학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2000년 APU 대학 설립 준비위원회가 재학생의 50%를 외국인으로 선발하겠다는 목표를 밝혔을 때만 해도 그 계획은 무조건 실패할 것이라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상상했던 비전은 기적과 같이 실현됐다. 덕분에 벳부시는 생동감 넘치는 젊은 도시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쓰나미’처럼 대학 사회를 집어삼키려는 요즘 우리나라 대학의 입장에서도 ‘국제화’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가 됐다. 대학이 처한 절박함의 근거는 최근 해외 유학생 수의 급격한 증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1년부터 8만명 수준에서 정체됐던 해외 유학생 숫자는 2015년부터 빠른 속도로 늘어나더니 2018년 말 14만2000명까지 증가했다.

지금까지 외국인 유학생 유치는 수도권의 대규모 대학을 중심으로 추진됐다. 유학생 수가 많은 대학을 살펴보면 1위부터 10위까지가 모두 수도권에 소재해 있으며, 유학생이 가장 많은 대학은 2018년 기준으로 5700여 명 수준에 이른다. 재학생 대비 외국인 유학생의 비율이 가장 높은 대학은 23% 정도다. 이들 대학의 경우 외국인 학생이 더는 희소한 존재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국제화에 소극적이었던 우리나라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의 급속한 양적 팽창에 적절하게 대응할 만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한국 학생들은 문화적 이질감 등을 이유로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팀 활동하기를 꺼려하기도 하고, 수능 경쟁 없이 비교적 쉽게 입학하는 이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편 외국인 유학생들은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 어려운 전공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해할 수 없는 따돌림으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런 경우 한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거나 심한 경우에는 반한 감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문제들이 국제화에 따른 단순한 부작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대학이 추구하는 인재상, 학생들의 세계관, 수업에서 사용하는 언어, 다양성을 포용하는 대학 문화 등 국제화로 인해 대학이 겪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과 연관돼 있다. 국제화가 진행돼 외국인 유학생 수가 어느 규모 이상이 되면 대학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이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이다.

대학의 국제화 문제가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면 개별적으로 저마다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최근 들어 지방의 사립대는 물론이고 국립대까지도 유학생 유치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대학은 정원외로 입학하는 외국인 유학생을 ‘재정 확충’의 관점에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내실 있는 국제화를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에 기초해서 국제화된 대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교육 과정의 내실화, 정주 여건 개선, 유학 후 취업 지원 등의 외국인 유학생 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 기본부터 차근차근 다져야만 선순환을 통한 지속 가능한 국제화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실을 도모하기 위해 대학 평가의 주요 지표인 ‘전임교원 확보율’과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를 산정할 때 외국인 유학생 등 정원외로 입학한 학생들도 포함되도록 해 대학이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국제화를 추진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최근 정부에서도 정부초청장학생(Global Korea Scholarship)사업 예산을 2000억원까지 대폭 늘렸다. 해외 유학생 20만명 유치를 목표로 ‘Study Korea 2020’ 사업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국제화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대학의 내실화 노력을 통해 대학별로 ‘특성화된 국제화’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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