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동의과학대학교 교수

역대 정부는 다양한 직업교육 관련 정책을 내놓고 시행해왔다. 그러나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경제적‧법제도적 차별이나 낮은 인식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직업교육제도와 정책이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에 본지는 ‘직업교육법제 정비방안’에 대한 10회에 걸친 연재를 통해 현행 직업교육 관련법을 검토‧분석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우리나라 직업교육법제의 정비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번 연재가 고등직업교육을 위한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균등하게 직업교육을 받을 권리’를 실현하는 사회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토대가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① 역대 정부별 직업교육 관련 정책
② 해외 직업교육 현황(Ⅰ) - 유럽형
③ 해외 직업교육 현황(Ⅱ) - 미국형
④ 해외 직업교육 현황(Ⅲ) – 동아시아형
⑤ 해외 직업교육 관련법 현황(Ⅰ) - 미국형
⑥ 해외 직업교육 관련법 현황(Ⅱ) - 유럽형
⑦ 해외 직업교육 관련법 현황(Ⅲ) – 동아시아형
⑧ 우리나라 직업교육 현황 및 개선방안
⑨ 현행 직업교육 관련법 정비방안
⑩ 전문가 좌담회

이병규 동의과학대학교 교수
이병규 동의과학대학교 교수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은 모두 대륙법계(大陸法系)에 속하는 국가들로 비슷한 법체계와 법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대만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초기 법제도를 형성하는 데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 영향은 현행 우리 법체계에 산재해 있으며, 여기서 다루는 직업교육 관련법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동아시아형 고등교육시스템(단선형의 변형, 초․중․고 12년+대학 2․4년, 국공립․사립 병존)을 가진 일본도 역사적으로 일반교육에 비해 직업교육이 경시돼 왔으며, 이는 교육의 영역에서 ‘직업’이 소외된 것에서 기인하는 바가 있다. 일본은 전후(戰後) 헌법에서 ‘학문’과 ‘직업’이 분리되고, 교육기본법에서 교육의 목적으로 근로나 직업과 같은 것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다. 또한 고도 경제 성장 속에서 일반교육을 지향하면서 교육 영역에서 직업교육이 명확한 위치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본에는 직업교육의 개념과 내용 등을 체계적으로 규정한 단행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 헌법상 교육의 권리, 직업의 자유 등의 헌법 이념에 기초하는 교육기본법(제2조 2호: “직업 및 생활과의 관련을 중시하고, 근로를 중시하는 태도를 배양하는 것”)과 이에 따른 학교교육법, 산업교육진흥법 등에 교육기관의 직업교육 실시 근거가 간접적으로 표현돼 있다. 또한 직업능력개발촉진법의 경우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 내용상 학교교육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직업교육과는 구별된다. 일본도 우리와 같이 직업교육에 대한 법적 정의가 없는 채로 ‘커리어교육’ ‘산업교육’ ‘직업능력’ 등의 용어가 법률상·강학상 혼재돼 사용되고 있다.

개별법의 내용에 의할 때 우리나라의 산학협력법, 근로자직업능력 개발법은 일본의 산업교육진흥법과 직업능력개발 촉진법과 유사한 조문 구조와 내용을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1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국민이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통해 직업에 대한 소양과 능력을 계발하기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ㆍ실시하여야 한다”)가 일본의 교육기본법에 비해 직업교육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있는 점이나, ‘직업교육’과 ‘직업훈련’의 연계‧통합을 목적으로 제정한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은 일본과 다른 특징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도 직업능력개발촉진법 제3조의 2가 “직업훈련은 학교교육법에 의한 학교교육과의 중복을 피하며 이와 밀접한 관련 하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학교 영역의 직업교육과 사회 영역의 직업훈련의 위치를 구분하고 있는 점은 특징적이다.

일본은 이러한 직업교육 관련법 하에서 이른바 일본형 인재양성, 즉 학교교육을 마친 청년을 기업 내에서 교육하고 직업능력을 키우는 시스템을 유지해 왔으나, 최근 기업 내 교육 기능이 약해지면서 신규 졸업자를 양성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아졌다. 그 때문에 기업은 즉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즉전력(卽戰力)을 가진 인재를 요구하게 됐다. 따라서 학교교육 단계에서 직업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논의가 많아지면서 고등학교나 대학과 같은 사회인을 배출하는 교육기관은 기업의 인재양성 방식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학교교육에서 실천성 높은 직업교육을 실시한다는 계획 하에 그 구체적 방안으로 ①전문직대학 제도화, ②문부과학대신이 인정하는 실천적 교육프로그램, ③슈퍼프로페셔널하이스쿨 지정, ④인턴십 추진 등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제도적 뒷받침으로 전문직대학 제도화를 위한 학교교육법 일부 개정, 지역대학의 진흥 및 청년 고용기회 창출에 의한 청년 수학 및 취업 촉진에 관한 법률 등을 마련했다.

본지는 작년 10월 열린 프레지던트 서밋 2018 도쿄 콘퍼런스를 통해 일본의 전문학교와 산업시설 등을 방문했다. 전문대학 총장단이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의 디자이너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학교인 HAL도쿄의 교내 주요 시설을 견학하는 모습(사진=한국대학신문 DB)
본지는 작년 10월 열린 프레지던트 서밋 2018 도쿄 콘퍼런스를 통해 일본의 전문학교와 산업시설 등을 방문했다. 전문대학 총장단이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의 디자이너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학교인 HAL도쿄의 교내 주요 시설을 견학하는 모습(사진=한국대학신문 DB)

그 중 전문직대학의 제도화는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2017년 학교교육법 개정(제83조의 2,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업을 담당하기 위한 실천적이고 응용적인 능력을 전개시키는 것을 목적”)을 통해 새로운 고등교육기관으로 전문직대학(專門職大學)을 제도화했다. 일본이 당면한 사회경제 및 고등교육 상황, 즉 직업 성쇠 주기의 단기화 및 예측곤란화, 취업 구조의 변화, 생산연령인구의 감소, 고등교육 진학률 상승에 따른 대학의 기능별 분화 필요성, 산업계 등의 수요와 미스매치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유형의 대학을 만든 것이다. 이에 지난해 문부과학성 인가를 받은 세 개의 학교(국제패션전문직대학, 고치재활전문직대학, 야마자키동물간호전문직단기대학)가 금년 4월에 개교했다.

야마자키동물간호전문직단기대학 신교육제도의 특색
야마자키동물간호전문직단기대학 신교육제도의 특색

일본은 다양한 고등교육기관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유형의 고등직업교육기관을 만든 것은 학교교육의 영역에서 직업교육을 본격화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는 초․중고와 대학으로 이어지는 교육 단계별로 ‘커리어교육’과 ‘직업교육’을 연계 운영하는 최근 일본의 교육정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기존 산학협력법,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이나 근로자직업능력 개발법과 별개로 새로운 직업교육에 관한 단행법을 마련하고자 하면 대만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대만은 2015년 직업교육에 관한 기본법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기술․직업교육법을 제정했다. 총 4장 26개조로 구성돼 있는 기술․직업교육법은 직업교육에 관한 기본법으로서, 이를 통해 직업교육에 대한 ‘공공성’과 ‘국가적 책무성’을 명확히 했다.

특히 ‘진로탐색교육’에서 ‘직업준비교육’ ‘평생직업교육’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별 직업교육의 내용을 규정하고, 직업교육기관과 대상을 명확히 함으로써 직업교육 선택자의 직업교육을 통한 성장경로를 제시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나 일본, 대만의 경우는 역사적으로 일반교육에 비해 직업교육이 경시돼 온 것은 사실이며, 또한 비슷한 사법제도와 법체계를 가졌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가 고등직업교육의 혁신을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지난 수십 년간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완전히 달라져서 즉전력을 가진 인력 양성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 단기대학, 전문학교 등 다양한 고등교육기관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학교교육법 개정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대학을 설립해 대학의 기능 다양화를 시도한 점과 대만의 경우 기존의 직업훈련법 등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기술․직업교육법을 제정해 직업교육의 국가 책무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고, 생애주기별․교육단계별 직업교육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규정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두 나라의 특징들은 직업교육 관련법 정비나 고등직업교육 기관의 역할 변화나 정체성 문제의 논의에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부언하자면, 외국의 법제에 대한 수용 논의는 무비판적이 아니라 주체적이어야 하며, 여기서 다루는 일본이나 대만의 직업교육 관련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컨대, 독일이 어떻고 미국이 어떻고 일본이 어떻기 때문에 우리도 어떠해야 한다는 식의 결론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필요한 직업교육과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로서 어떤 법제도가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외국의 직업교육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면 이제는 “우리 직업교육은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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