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황희 정승이 있었더라면
[기자수첩] 황희 정승이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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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환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대학가에서 총장 선출 제도를 둘러싼 이슈들이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총장 선출 제도에 대한 구성원 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반년 넘게 총장 공백이 이어지는 대학도 있다. 해당 대학들을 취재하면서 구성원들의 얘기를 접할 수 있었다. 교수, 학생, 법인, 졸업생 등 각각의 입장을 따로따로 듣고 있자니 황희 정승의 ‘누렁소 검정소’ 일화가 떠올랐다. 황희 정승은 조선시대 깨끗한 성품으로 인해 청백리의 대명사로 꼽힌다. 

그에 얽힌 여러 일화 중 유명한 게 ‘누렁소 검정소’ 이야기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집안의 두 하인이 서로 싸우자 황희 정승은 이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었다. 두 하인은 모두 자기에겐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양 측의 주장을 들은 황희 정승은 각기 “네 말이 옳다”고 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부인이 “한 쪽이 옳으면 한 쪽은 틀린 법”이라며 따지자 “듣고 보니 부인 말도 옳소 그려”라고 했다고 한다. 

세상 일이라는 게 시시비비를 따지기 어려운 사안들이 참 많다. 이 말을 들어보면 일견 이해가 되고, 저 말을 들어보면 타당한 측면이 있는 것 같은 일이 존재한다. 대학 사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에도 이와 같이 양시론적 관점에서 봐야하는 측면들이 종종 있다. 특히 권력을 두고 집단 사이의 이해 관계자들이 부딪힐 경우 파열음이 들리고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릴 경우에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게 여간 쉽지 않다. 실제로 그랬다. 학교법인은 물론 학생회나 교수의회가 되었든 노동조합이나 동문회가 되었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때로는 집단의 논리와 언어를 우아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내놓았다. 적당히 밀당을 시도하기도 했다. 보여지는 질감은 다소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이해관계가 걸린 집단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장에서만 사안을 바라보고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총장 직선제의 도입 여부, 가능성, 장단점 등과 같은 당면 현안도 중요하겠지만 각자 진영 논리가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팩트 대결’이라는 표현도 나왔는데 어찌 보면 ‘팩트(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가 아닐까.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대학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은 무엇인가’, ‘가장 민주적인 가치와 공공성은 무엇인가’ 등등… 

황희 정승이 총장 선출 제도 갈등에 직면한 대학의 문제와 맞닥뜨린다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네 말이 옳다”고 말씀하셨던 황희 정승과 같은 사람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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