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歷史④] 대학의 이념
[대학의 歷史④] 대학의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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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형찬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대학사의 권위자인 래시달(H. Rashdall)에 따르면 12세기부터 400년 동안에 유럽에 설립된 대학은 79개다. 래시달은 이들 대학을 4개의 유형으로 나눴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대학이 14개, 로마 황제의 특허장에 의해 설립된 대학이 5개, 로마 교황의 교서에 의해 설립된 대학이 54개, 국왕의 인가에 의해 설립된 대학이 6개다. 

이들 중세 대학의 정신적 특징은 길드 사회의 영향을 받은 ‘독립과 자치’다. 중세 대학은 신학, 법학, 의학이 학문의 주류를 이뤘다. 래시달은 ‘중세 대학의 영예는 학문을 신성시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중세 대학의 이념은 ‘학문을 통한 진리 탐구’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대학의 고유 정신인 대학의 자율성, 학문의 자유, 연구의 자유는 바로 중세 대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국의 대학 이념을 살펴보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은 12세기와 13세기에 각각 설립됐다. 옥스퍼드대학은 파리대학에서 외국 학생을 추방한 사건과 영국 국왕이 자국 학생들의 파리 유학 거절 사건을 계기로 설립됐다. 케임브리지대학은 옥스더드대학의 자체 분규로 학교를 나온 교수들에 의해 설립됐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옥스브리지)는 파리대학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옥스브리지는 성직자 양성이 주된 사명이었기 때문에 19세기 초까지 과학적 학문을 경시하고 고전적 지식위주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옥스브리지의 이념은 독창적인 학문연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지식에 의한 고도의 교양적 지식인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 대학의 성격을 ‘교육하는 대학’(teaching university)이라 할 수 있다.

독일 대학의 이념은 1809년에 설립된 베를린대학에서 시작한다. 베를린대학은 근대대학의 원형으로 학문의 자유(교육의 자유, 연구의 자유)를 드높인 대학으로 세계 여러 대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베를린대학의 이념을 이야기하려면 베를린대학을 창설한 알렉산더 폰 훔볼트를 빼놓을 수 없다. 훔볼트는 대학을 ‘교수와 학생이 함께 탐구해 진리를 발견해내는 곳’이라 했다. 이로 인해 대학의 정체성은 ‘지식을 교육하는 곳’에서 ‘무한한 진리를 탐구하는 곳’으로 크게 바뀌었다. 훔볼트는 대학의 이념을 간단히 줄여서 ‘고독(Einsamkeit)과 자유(Freiheit)’라고 했다. 베를린대학의 초대총장은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로 유명한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였고, 2대 총장은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였다. 피히테는 ‘대학의 목적은 지식을 단순히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계발하여 학문을 창조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독일 대학의 이념은 ‘학문의 자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계발해 학문을 창조하고 학문하는 방법을 배워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카를 야스퍼스 역시 베를린대학의 이념을 그대로 계승했다.

미국 최초의 대학은 1636년에 설립된 하버드대학이다. 하버드대학의 이념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이념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래서 하버드대학의 교육목표는 ‘학식 있는 목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9세기 초부터 실용적인 대학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미국 대학의 이념이 새롭게 정립되었다. 1862년에 만들어진 토지증여법(Morrill Act)과 베를린대학을 모델로 삼은 존스 홉킨스 대학원 중심 대학의 설립이 그 계기가 되었다. 토지증여법은 'Land-grant College Act'라고도 하는데 농민들의 요청에 의해 정부가 토지를 대학 설립 기금으로 무상 증여하는 법이었다. 농민들은 광활한 신대륙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학문중심의 대학보다는 실용적인 농과대학이나 공과대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주립대학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 대학은 교육, 연구, 사회봉사라는 새로운 대학 이념을 만들었다. 교육은 영국 대학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연구는 독일 대학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사회봉사는 미국 대학이 새롭게 창조한 대학이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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