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열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역대 정부는 다양한 직업교육 관련 정책을 내놓고 시행해왔다. 그러나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경제적‧법제도적 차별이나 낮은 인식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직업교육제도와 정책이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에 본지는 ‘직업교육법제 정비방안’에 대한 10회에 걸친 연재를 통해 현행 직업교육 관련법을 검토‧분석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우리나라 직업교육법제의 정비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번 연재가 고등직업교육을 위한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균등하게 직업교육을 받을 권리’를 실현하는 사회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토대가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① 역대 정부별 직업교육 관련 정책
② 해외 직업교육 현황(Ⅰ) - 유럽형
③ 해외 직업교육 현황(Ⅱ) - 미국형
④ 해외 직업교육 현황(Ⅲ) – 동아시아형
⑤ 해외 직업교육 관련법 현황(Ⅰ) - 미국형
⑥ 해외 직업교육 관련법 현황(Ⅱ) - 유럽형
⑦ 해외 직업교육 관련법 현황(Ⅲ) – 동아시아형
⑧ 우리나라 직업교육 현황 및 개선방안
⑨ 현행 직업교육 관련법 정비방안
⑩ 전문가 좌담회

박동열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박동열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저출산 고령화, 국제 인력 교류 확대 등으로 인해 일자리의 양적·질적 변화가 예상되고, ‘직업(job)’에서 ‘일(work)’로 사회 가치가 변화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전 생애에 걸쳐 누구나 희망하는 학습이 가능한 직업교육 체제’로의 개편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대학들이 단순히 노동시장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전통적인 직업교육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희망하는 ‘일’을 통하여‘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일-학습-삶’이 연계된 직업교육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대내외적인 직업교육의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중장기적인 직업교육 정책 수립 및 모니터링 체계가 미흡하며,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간의 유기적인 협력 체계도 미흡한 실정이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5년마다 직업교육훈련 기본계획을 수립해 추진하도록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부처별 정책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운영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직업교육 정책의 중장기적인 일관성 부족, 과거 정책에 대한 평가 미흡, 모니터링 및 중장기적 성과 평가 체계 미흡 등 다양한 정책 주체들이 참여하는‘직업교육 정책 의사소통 플랫폼’구축 또한 미흡한 실정이다.

둘째, 지역 내 직업교육 참여 여건이 성숙되지 못하고, 유연하지 못한 직업교육 체제로 인해 직업교육 이수 기회 격차(TVET Divide)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 내 일자리 감소 등으로 인한 지역 대학 운영의 어려움은 지역 경제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활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학이 ‘단순히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의 개념’에서 벗어나 ‘학습과 일자리 그리고 삶의 가치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대학 역할과 공간 개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셋째, 대학들은 ‘실패를 통해 학습하고 정답을 찾아가는 직업교육’이 아닌 ‘실패하지 않도록 정답을 알려주는 직업교육’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실패=학습’이 아닌 오직 ‘정답=성공’으로 인식되고 있어, 학생들이 실패하지 않도록 정답만을 알려주거나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하도록 지원하는 직업교육이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학교 내에서 학생 수준과 기업 요구 직무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편성 및 운영하거나, 수업 시간과 평가 시간만으로 구성된 학습시간(nominal learning hour) 패러다임으로 인해 학생들이 자기주도적 학습 기회를 얻을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

넷째, 직업교육을 통해 사회 계층 이동의 제도화를 강조한 ‘능력중심사회 구현’을 직업교육 비전과 가치로 제시했지만, 미래를 대비한 새로운 직업교육 비전과 가치로의 전환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능력중심사회는 ‘학력이나 학벌 등의 특정한 요소로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개인의 능력을 인정함과 동시에 모든 구성원에게 공정하게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능력중심의 고용과 인사 관행 등이 이루어져 개인이 가진 능력을 차별 없이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능력중심사회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미래 사회는 ‘일’을 통한 개인의 인간다운 삶이 강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가지 비전과 가치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편, 우리나라 직업교육 역사를 목표에 따라 구분하면, 직업교육 1.0의 목표는 국가에서 요구하는 산업 인력을 제공하는 시대를 말하고, 직업교육 2.0에서는 학생의 기초 소양과 전문 능력 향상을 위한 평생직업교육이 강조됐으며, 직업교육 3.0에서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기반한 역량 중심 기업 맞춤형 평생직업교육 정책을 강조해 왔다. 미래의 직업교육 4.0에서는 ‘일’을 통한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지원하기 위한 유연한 개인 맞춤형 평생직업교육이 강조될 것이다.

과연 미래 직업교육 혁신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직업교육 패러다임 전환, 지역교육공동체, 유연성, 통합성 등으로 제시할 수 있다.

미래 직업교육 4.0에서 추구해야 할 직업교육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면, 첫째, ‘빠르게 적응하는 숙련 인력’ 양성이 아니라 ‘일과 삶을 이해하는 전략적 덕후’ 양성을 위한 직업교육 목표로 전환하고, 둘째, ‘실패하지 않도록 정답을 알려주는 교수학습방법’에서 ‘실패를 통해 학습하고 정답을 찾아가는 교수학습방법’으로 전환해야 하며, 셋째, ‘학교, 기업 중심의 직업교육 정책’에서 ‘학생, 교사(수), 근로자 중심의 맞춤형 직업교육정책’으로 전환하고, 넷째, ‘전통 산업시대의 일방적이고 경직된 직업교육체제’에서 ‘융합산업시대의 협력적이고 유연한 직업교육체제’로 전환하며, 다섯째, ‘지식과 숙련 중심 직업교육’에서 ‘역량과 성과 중심의 직업교육’으로 전환하고, 여섯째, ‘학령인구 중심 직업교육기관’에서 ‘학령인구를 포함한 성인, 근로자, 지역주민 등 지역교육공동체의 거점 기관’으로 전환하며, 일곱째, ‘학습 장소만의 직업교육 공간’에서 ‘학습-일-삶의 장소’로서 전환하고, 여덟째, ‘학교 교육과정 중심 직업교육’에서 ‘학교 교육과정과 체계화된 학교 밖 학습경험을 인정하는 직업교육’으로 전환하며, 아홉째, ‘국내 인정 자격 중심 직업교육’에서 ‘국내 및 국외 상호인정 자격 중심의 직업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 사업 중심 모니터링 및 성과 평가 체계’에서 ‘평생 직업교육 정책 의사소통 플랫폼으로서 모니터링 및 성과 평가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

22일 국회에서 열린 평생직업교육 내실화를 위한 지자체와 전문대학의 상생협력 방안 토론회. 한국대학신문DB
22일 국회에서 열린 평생직업교육 내실화를 위한 지자체와 전문대학의 상생협력 방안 토론회. 한국대학신문DB

이를 위해 평생 직업교육훈련 정책 의사소통 플랫폼 구축의 법제화가 필요하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제시된 5년 주기의 직업교육훈련 기본계획 수립 일환으로 범부처적인 평생직업교육 마스터플랜 정책이 수립됐다. 그러나 평생 직업교육훈련 정책의 범위가 명확하게 구명되지 않고, 지속적인 정책 정보 관리의 부재와 함께 부처별 산재돼 있는 정책의 통합적 관리 운영을 위한 거버넌스도 명확하게 제시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비해 평생 직업교육훈련 정책들의 통합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모니터링, 중장기적인 성과 평가 등 통합적인 정책 관리 시스템의 구축 요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개별적 정책, 단기성과 중심, 분절적인 모니터링 등 정책 관리 패러다임의 혁신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둘째, 전 생애 동안 누구나 언제든지 희망하는 직업교육 이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직업교육 지역바우처’의 확대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 미래 사회에서는 직업교육 기회 불평등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면, 직업교육에 관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중등 및 고등 직업교육을 선택하거나 참여하는 것을 기피하고, 중소기업 근로자와 자영업자 등의 능력 향상훈련 참여 기회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전직 희망자들이 전직 대비 직업교육훈련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거나 중·고령자들이 ‘일’을 통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직업교육 기회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

셋째, 지역 대학을 거점으로 한 지역교육공동체 구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지역 격차(지역 소멸), 공동체 해체, 계층 격차 등을 해소하기 위한 과제로 지역공동체성 회복을 목표로 하는 마을공동체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며, 학교와 지역사회 간의 교류 협력과 개방, 자원 활용, 교육적 네트워크 구축 및 역할 분담과 공조체제 구축을 위한 ‘마을교육공동체’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은 초·중등교육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우수한 지역 인재 양성 및 활용 체계를 구축하려고 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마을교육공동체’ 개념을 지역 소재의 특성화고, 지역 기업, 지자체, 그리고 지역대학(community college) 등을 포함한 ‘지역교육공동체’ 개념으로 확대해야 있다. 지역 경제 개발과 지역 활력 제고를 위한 ‘지역교육공동체’ 운영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지역 고등학교 졸업생의 괜찮은 일자리를 발굴함과 동시에 지역 대학으로의 후학습 경로를 구축, 우수한 지역 인재의 지역 안착 유도와 함께 지속적인 직업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 내 우수 전문대학을 ‘거점 지역 대학’ 유형으로 선정·지원해, 지역주민을 포함한 지역 내 고졸 근로자의 후학습 경로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

결국, 미래 변화를 선도하기 위한 직업교육 혁신은 노동시장에서 필요한 인재 양성이라는 직업교육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과 일에 관한 교육적 가치를 공유하고, 직업교육이 당면한 ‘교육적·사회적 이슈’의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전 생애 직업교육의 책임을 개인에서 ‘국가, 지역사회, 기업, 대학, 학생’의 공동 책임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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