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희 본지 논설위원/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사람들은 현재 주어진 상황이 본인들의 노력과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회사에서 담당하는 업무를 주어진 시간 내에 특정 수준 이상으로 처리하지 못할 때, 시험이 코앞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이해하고 외워야 할 강의 노트가 산더미일 때, 강의 준비와 논문 및 원고 작성 그리고 행정업무가 같은 날에 몰릴 때, 회사원, 학생, 그리고 교수는 스트레스를 겪는다.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요인들로 스트레스를 겪으며,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상당히 강력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즉 새로운 기술이 개발돼 도입될 때, 비자발적으로 특정 기술을 수용 및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기술의 수용에 어려움을 겪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련의 스트레스를 일컬어 일반적으로 ‘테크노스트레스(Technostress)’라고 한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우선, 기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부족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됐을 때 이를 배우고 활용하는 데 드는 노력과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들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한 이미 사용하는 있는 기존의 기술이나 장치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비자발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에 더해,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규범적 가치에 있어서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특정 기술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비자발성은 그러한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여기서 주변인들의 시선은 테크노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주위에서 특정 기술의 도입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일 때 소위 사회적 영향(Social Influence)이 발생하며, 해당 기술을 수용하기 어려울 때 당사자는 가중된 테크노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 주변의 시선은 때로는 가족이나 동료와 같이 가깝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불특정 타자일 수 있다. 이는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존재 자체가 부담이 되고 결국 스트레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최근 겪은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얼마 전 금융회사에 일이 있어서 고객센터를 방문했고,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초디지털화’된 환경을 접하게 됐다. 금융업무를 위해 창구에 앉아서 상담원과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담원은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종이에 적혀 있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고객센터에 비치돼 있는 데스크톱을 이용해 전자서명을 진행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그런데 절차를 따르던 중 추가 진행을 위한 문자를 기다리기 위해 데스크톱에서 벗어나 있던 몇 분 사이에 그만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온라인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고, 스크린 글자를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 노령의 방문객으로 인해 이용 대기 고객들이 밀리게 됐다. 똑같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스마트폰 서비스는 ‘안드로이드’만 지원됐기에 앞 고객이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개인 정보를 다루는 일이라서 섣불리 옆에서 도와줄 수도 없어 곤란해 하고 있었고, 한참 후에 창구에 있던 상담원이 노령의 고객을 도와주고 나서야 내 차례가 돼, 1분 만에 모든 일을 마쳤다. 처음엔 시간을 허비하게 된 것만 생각하면서 앞 고객의 전자 뱅킹에 대한 미숙함을 원망했지만, 곧 시스템 자체에 대한 원망과 비판으로 이어졌다. 누구를 위한 시스템일까? 공인인증서를 활용해 보지 않았으면? 공인인증서를 USB에 담아오지 않았는데, 스마트폰에 인증서가 담겨 있지 않다면? 스마트폰이 없다면? 등 다양한 의문이 들면서, ‘타악....탁..탁......타악.....타악’ 키보드 한 번 보고 종이 안내문 한 번 보고 한참이나 스크린과 씨름하면서 뒷사람 눈치까지 봤어야 했을 앞선 고객의 지친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본다.

기술이 발달하고 일상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침투되면서 이러한 경험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소외계층으로 알려진 저소득층이나 노령층은 새로운 미디어에 접근 혹은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환경은 이미 이러한 기술에 기반한 시스템과 서비스들로 가득하다. 여기에 주변인들의 시선까지 더해져 사회적 소외계층은 수많은 테크노스트레스의 인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기술 기반의 시스템과 서비스 도입을 막는 것이 시대에 역행하기에 이를 막기 어렵다면,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 인자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할 시점일 것이다. 누군가 기술로 인한 벽에 부딪쳐 뒤를 돌아봤을 때, 웃어주지는 못하더라도 화난 표정은 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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