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훈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획처 선임행정원

얼마 전 KAIST 직원들이 공저한 《행정도 과학이다》와 《교직원 K의 이중생활》이 출간돼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KAIST 행정의 변화와 혁신을 담은 《행정도 과학이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첫째, 철저한 준비를 거쳤다. 40명이 넘는 직원들이 인사제도, 역량강화, 업무환경, 조직문화의 4개 분과로 이루어진 ‘행정 선진화 추진위원회’에서 1년간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집필한 총 9개 챕터로 이루어진 탄탄한 ‘보고서’다.

둘째, 대학행정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VUCA 등으로 표현되는 맹렬한 환경변화 속에서 행정도 교육이나 연구만큼 대학발전의 핵심 축이자 원동력이 되는 전문적인 영역이고, 따라서 행정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하며, 행정을 수행하는 직원 스스로도 주인의식과 자존감을 높여야 함을 장쾌하게 논증하고 있다.

셋째, 실무적으로는 물론이고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풍부한 실증사례와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 규범, 진단, 처방을 균형감 있게 배치했고, 대학행정에 초점을 맞춘 이론을 정립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중범위적(middle-range)’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과 개념을 위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대학행정의 기능과 역할 변화 부분이다. 저자들은 ‘집행·관리’의 비중을 줄이고 ‘기획·사업’과 ‘휴먼·서비스’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KAIST의 핵심가치인 ‘3C(Creativity, Challenge, Caring)’를 떠올려봐도 ‘기획·사업’은 솔루션을 제시하는 창의(Creativity)와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도전(Challenge)의 구현이고, ‘휴먼·서비스’는 고객을 감동시키는 배려(Caring)의 실천인 데 비해 ‘집행·관리’는 딱히 상응하는 것이 없다. 그만큼 바람직한 가치와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리라. ‘집행·관리’는 시스템으로 대체해 나가고 해당 인력은 ‘기획·사업’과 ‘휴먼·서비스’에 재배치하는 운용의 묘가 필요할 것 같다.

다음으로 이 책의 핵심키워드이기도 한 ‘자기 진화형 행정생태계’가 눈에 띈다. ‘자기 진화형 행정생태계’란 변화되는 환경에 스스로 적응하고 자기혁신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며 미래를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행정을 의미하는데, 행정학의 ‘자기 조직적 거버넌스’ 개념과 맥락이 통한다. ‘자기 조직적 거버넌스’에 의도한 ‘설계’와 의도하지 않은 ‘창발’이 병존하듯이, ‘자기 진화형 행정생태계’도 기존에 설계된 것들을 십분 활용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창발을 통해 대학이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하며 발전해 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이 창안한 ‘분수이론’도 흥미롭다. 마치 분수가 뿜어졌다가 다시 분수대로 모이듯이 직원이 본부와 접점조직을 순환하며 다양한 관점과 역량을 함양하게 함으로써 개인과 조직의 성과가 조화롭게 향상되도록 돕는 HRD 개념으로 대학조직의 특성을 잘 반영했다. 유사한 구조의 다른 조직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개정판(후속작)을 염두에 두고 몇 가지 제안도 드리고자 한다.

먼저 역량강화를 다룰 때 교무, 입학, 연구관리 등 ‘중분류’ 수준 정도에서 KAIST의 역량(전문성)모델과 측정지표를 제시해 준다면 ‘주요 독자들’에게 좋은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또한 국내 타 대학에서 추진했던 또는 추진하고 있는 구체적인 혁신사례도 발굴해 소개한다면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연세대 에서 추진했던 미들 업 다운(middle up down) 방식의 행정혁신은 KAIST의 행정혁신과 ‘케미’가 잘 맞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이 제시한 고등교육행정학회(대학행정학회)의 출범이 가시화돼 대학기관연구(IR)와 같은 중요한 활동들이 우리 대학사회에서도 원활히 이뤄지기를 바란다.

언필칭 혁신을 부르짖지만 혁신은 쉽지 않다. Rogers의 혁신확산이론에 따르면 혁신은 수용, 실행, 제도화의 단계를 거쳐서야 비로소 자리 잡는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앞장서서 추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할 것임을 믿고 혁신적인 정책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추진하는 정책혁신가(policy entrepreneur)를 필요로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이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는 정책혁신가다.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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