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락 전주비전대학교 홍보과장

우리는 습관처럼 자주 '이해한다'는 말을 쓴다. '이해(理解)'라는 글자는 ‘구별해 깨닫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해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신상품이나 한정판 판매점 앞에서 몇 시간이고 길게 줄서기 같은 ‘오타쿠 문화’가 일반 대중에게 퍼지고 있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음식을 먹거나 커피를 마셨다는 내용이 담긴 인증 샷을 SNS에 올리는 것은 일상이 됐다. 줄 서기 자체가 '놀이'이자 '콘텐츠'가 된 셈이다.

이는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이런 문화가 퍼지는 이유를 청년들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은 한국의 견고한 사회 구조에서 찾기도 한다. 한국 젊은 세대의 팍팍한 현실과 자신을 위한 소비가 주는 작은 위안으로 자리 잡은 ‘소확행’도 같은 요인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이러한 몸부림을 이해하고 있는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얼마 전 31세 청년 엄창환씨가 대통령과 만나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번 정부에서도 청년 정책은 달라진 게 없다”는 말을 하다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정부 전담 채널이 없어 답답한 마음이 밀려왔고, 함께 고생한 동료들이 떠올라 눈물이 나왔다”고 이후에 설명했다. 그는 그날 울음 때문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러한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 2018년 9월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그의 글을 요약하면, 지금 이 나라 어른들은 청년들이 취업만 하면 사회의 일원이 돼, 가정을 꾸리고 돈을 벌어 ‘정상적 삶’을 영위하게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청년들에 대한 대책은 일자리 늘리기로 귀결하고 있는데,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인식이라는 주장이었다. 그의 주장을 읽다보면 틀린 말이 아님을 인정하게 된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지금의 50대 이상이 가졌던 ‘평생직장’ 개념은 20여 년 전 외환위기 때 사라졌다. 안정적인 일자리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으로 하나둘 대체될 것이다. 급여를 기반으로 집을 준비할 수 있는 이가 극히 소수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엄창환씨의 주장처럼 한국 사회는 교육과정을 마친 청년에게 일자리로의 이행만을 권유한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일자리’를 구하면, ‘좋은 미래’를 맞이할 것처럼 말한다. 대학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없고, 정부 정책은 공무원 늘리기와 정규직 전환 독려가 전부다.

그러나 청년들이 세상의 변화에 준비가 미흡한 교육을 받은 이유로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겪는 감정적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청년세대에 이기적인 세대, ‘N포세대’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나이 든 세대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청년들의 문화가 이해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이해하는 ‘척’하지만 말고 젊은 세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알면 낯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원로들이 공경 받으면서 막강한 힘을 휘둘렀던 시대는 지났다. 역사적으로 지혜는 늘 아래로 흘러갔다. 하지만 이제는 지혜가 양방향으로 흐르는 때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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