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웅의 글 이야기] 이름들
[권혁웅의 글 이야기]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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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한양여자대학교 교수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모세를 부르자 모세가 질문했다. “내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서 ‘하나님이 나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들이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가 뭐라고 답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대답했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I AM WHO I AM)다. 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스스로 존재하는 자(I AM)가 나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라고 하여라.” 《출애굽기》의 시작을 알리는 유명한 장면이다.

이름을 묻는 인간에게 신은 ‘나는 나다, 나는 스스로 있다’고 대답한다. 히브리어 원문에 나오는 에흐예(EHEYEH)도 ‘존재하다(있다)’라는 뜻이다. 이 동어반복은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자기 자신 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증명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신은 다른 모든 것의 있음(有)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이지만, 그 자신의 존재를 다른 것에 기대어 증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신은 모든 것이자 무(無)다. 스스로 있으나 다른 것과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하나님의 답변을 이렇게 해석한다. “내 이름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이름 없는 존재가 너를 보냈다고 그들에게 말하라.” 그에 따르면 “오직 우상만 이름을 가진다. 그것은 사물이기 때문이다.”(프롬,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38~39쪽) 결국 신은 이름이 없는 이름이다. 반면 우상은 사물이 된, 다시 말해 형상을 가진 존재다. 우리는 우상이 ‘여기에 있다’ 혹은 ‘저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 각자의 이름도 일종의 우상이다. 각각의 이름으로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출현한 각각의 인물을 지칭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우상은 그 자신의 신적인 위력 덕분에 우상이 된 것이 아니다.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이들의 믿음 덕분에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 이름도 그렇다. 이름을 고유명사라고 하지만 한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과 자질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이름을 타인에게서 받았다. 성과 이름은, 그 뜻이 자손과 자식을 통해 구현되기를 바라는 조상과 부모의 소망을 대리하는 것일 뿐이다. 내 이름을 한자로 적으면 권혁웅(權赫雄)이다. 영어로 적으면 ‘powerful brilliant hero’쯤 될까? 처음 한자의 뜻을 알았을 때 씨족(성)과 가문(돌림자)과 부모의 소망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이름은 일종의 명령문이다.

한편 별명은 공격적인 희화화의 의도를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고유명사와 대조된다. 고유명사나 우상이 다른 사람의 소망과 숭배를 대신하는 이름이라면, 별명은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을 대신하는 이름이다. 비아냥대기, 과장하기, 딱지 붙이기, 증오하기…… 별명 붙이기가 정치의 으뜸가는 기술이 된 것은 이 때문인데, 그렇다고는 해도 최근의 별명 붙이기는 해도 너무 했다. 급기야 자식을 잃은 어버이를 두고 ‘징하게 해처먹는다’느니 나라의 대표자를 일러 ‘달창’이니 하는 말까지 나왔다. 정치의 일베화(약자 혐오의 정치), 정치의 아베화(제국주의를 재소환하는 정치)는 ‘타락한 이름 붙이기’에서 먼저 시작된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함부로 하는 이들은 자신을 신의 자리에 놓는다. ‘달창’이 ‘달빛 창문’인 줄 알았다고 변명해도 모두가 속을 거라고 생각하는 전지적 시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신(알라)처럼 모든 것과 무 사이에 있는 이름은 너무 멀고, 고유명사처럼 타인의 소망을 대신하는 이름은 너무 타율적이며, 별명처럼 타인의 공격성에서 나온 이름은 너무 공격적이다. 어떤 이름을 선택해야 할까? 저 세 갈래 길 사이로 샛길이 하나 나 있다. 본래는 타인의 명명이었으나, 삶의 실천을 통해서 자기 이름을 진정한 고유명사로 삼은 이들이 걸어간 길이다. ‘세종’이, ‘이순신’이, ‘김구’가 그런 길을 걸어갔다. 그 길은 그들로 인해서 대로가 됐다. 세종로와 충무로, 백범로가 없다고 해도 우리는 그 이름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의 삶이 그들의 이름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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