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이 인터뷰를 위해 지난 10일 한국대학신문 사옥을 방문했다. (사진=한명섭 기자)
황보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이 인터뷰를 위해 지난 10일 한국대학신문 사옥을 방문했다. (사진=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해가 서녘을 향해 저물어가고 있을 무렵인 오후 5시. 인터뷰를 위해 지난 10일 서울시 금천구 한국대학신문 사옥을 찾은 남자가 있다.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처럼, 40년간 헌신했던 교육계 생활을 조금씩 정리하며, 8월 2일 퇴임을 앞둔 황보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이다. 그는 평생을 그래왔듯 이날도 깨끗한 정장에 단추도 깔끔하게 잠근 신사의 모습으로 있었다. 비가 내린 탓에 제법 큰 우산도 손에 쥔 채….

남들보다 훨씬 빠른 스무 살 공직생활 시작, 교육부 최초 프랑스 유학파 등 황보은 사무총장의 지금을 수식할 수 있는 말들은 많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역경을 힘들게 이겨낸 인물이다. 그는 울릉도 8남매 가운데 일곱째로 태어났다. 여섯째까지는 육지인 안동으로 학교를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일곱째에게 “네 학비를 위해 팔 밭이 안 남았다”고 했다.

한창 공부해야 할 어린 나이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업에 취직해서라도 꿈을 이루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대구에 있는 회사에 들어갔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일신학원에서 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했다. 바로 이어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 역시 합격 소식이 전해졌다.

울릉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첫 발령지가 ‘울릉’이 될 뻔 했지만, 그는 섬 근무는 안 된다고 했다. 야간대학에라도 진학해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도 육지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경상북도 영양교육청을 발령지로 받은 그는 한국방송통신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교육부 괴짜’ 혹은 ‘악바리’라고 불리는 황보은 사무총장의 인생 궤적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대학 교직원 사이에서, 협의회 내에서, 과거 교육부 후배들에게서도 ‘치열한 행정가’이자 동시에 ‘학구파 상사’로 통한다. 한 지인은 “언제나 황보은 사무총장은 ‘국가가, (결국 이것도 다 세금이니) 국민이 나를 키웠다. 이런 내가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생각만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 사무총장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가 ‘일 하나는 집념있게 하는 인물’이라고 평한다. 트레이드 마크다. 전근 전날까지 결재를 모두 다 하고 부서를 옮겼다는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다. 이렇듯 철저한 습관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공직을 하다보니까, 몸에 스며들었다. 국가에서 유학을 보내줘서 프랑스도 다녀왔고, 혜택을 많이 입었다. 국가에 무언가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나. 국민의 세금으로 평생을 살고, 자녀 교육도 시켰는데 내가 맡은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 교육부를 떠나 전문대교협에 올 당시를 기억하는지.
“대학 사무국장을 하고 있을 때, 전문대교협 사무총장과 관련해 교육부에서 연락이 왔다. 보통은 정년이 4년 정도 남았을 무렵에 제의가 들어오는데 너무 이르다고 하는 후배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슨 일을 하느냐, 어떤 일을 하느냐, 가치 있고 보람있는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전문대학정책과장을 하면서 세계적 수준의 전문대학(WCC)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국가의 책임이 지금보다 훨씬 커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직업교육과 전문대를 위해서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 측면에서 전문대정책과장을 6개월밖에 못했다는 점은 너무도 아쉬웠다. 내가 전문대정책과장 6개월 하면서 다 못했던 일을, 전문대교협에서 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문대는 항상 소외됐었으니까, 교육부에서도…. 이런 부분에서 이곳 역시 공직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 전문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깊은 사무총장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교육부에서 국장을 해보는 것이 꿈인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를 접고 나오게 된 가장 큰 배경은 전문대에 대한 어떤 잠재된 애정이랄까. 개인적으로 나의 어려운 어린 시절 돈이 없어 학업을 포기했던 것이 나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 솔직한 첫 출발이다. 2003년 프랑스 유학을 갔을 때 나의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됐다. 진보적인 프랑스 사회를 보면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함께 사는’ 시스템을 경험했다. 또 직업교육과의 인연의 싹이 튼 것도 이 때다. 전문직업인에 대해 확실한 인식을 가지게 됐다. 프랑스는 어떤 일(직업)을 하든지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는 나라였다. 당시 유명한 제빵사가 세상을 떠나게 됐는데, 국가적으로 애도하는 성명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것이 선진국이구나. 국가 사회체제와 국민들의 성공에 대한 다양한 생각, 그리고 공부 외에도 다양한 성공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 사회도 제대로 가려면 가지지 못한 자에게도 교육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2008년 한국장학재단 설립에 대한 실무책임을 맡게 됐다. 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명박정부 초기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하는 상황에서 장학재단법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고했다.”

- 전문대교협에 처음 와보니 어떻던가.
“교육부에 있을 때는 더욱 가깝게 들여다 보지 못했던 ‘전문대 학생과 교수들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제도’가 너무 많았다. 그런데 전문대 구성원들도 너무도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돼버린 탓에 감각이 무디어진 부분들도 많더라. 이제까지 그래왔으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뭐’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내 입장에서는 외국의 전문대와 직업교육을 보고 왔으니 이것이 차별이라고 생각하는데, 국내 인식은 너무도 달랐다.”

황보은 전문대교협 사무총장 (사진=한명섭 기자)
황보은 전문대교협 사무총장 (사진=한명섭 기자)

- 전문대교협에 있으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차별제도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했다. 전문대 학생과 교수에 대한 차별제도가 하나씩 해소돼 갈 때마다 보람을 느껴왔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전문대 학생에 대한 ‘우수장학금 신설’이다. 일반대 학생을 위한 제도로는 4가지 정도가 있는데 왜 전문대에는 없는가. 전문대에는 우수 학생이 없겠는가. 우수 학생이 없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엄연히 국내 고등교육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전문대를 위한 제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은 법이 정한 차별이라는 생각으로 줄기차게 신설을 주장했다. 2018년도 교육부 예산에 반영됐지만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이를 모두 삭감했다. 당시 국회에서도 여야 갈등의 골이 깊어졌을 시점이라 무산됐다. 하지만 올해 초, 작년 속기록을 들고 이기우 전문대교협 회장과 함께 설득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 역시 의원이었던 당시에 이에 대한 사정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역시 ‘전문대 우수장학금 신설’ 필요성에 힘을 보탰다. 2020년도 예산에는 반영될 것으로 생각한다. 기재부에서도 아주 긍정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 정말 많은 차별해소, 개선노력을 해왔다. 또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장학숙’에 전문대 학생들은 입사 자체를 못하도록 한 차별도 있다.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서 현재 많은 지자체 장학숙들이 전문대 학생들에 대한 문을 열고 있다.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전문대 학생들이 들어가고 안 가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준다는 것’으로 사회 인식을 바꾸고 있다. 또한 ‘올해의 스승상’도 마찬가지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특수학교까지 스승을 대상으로 상을 수여하고 있는데, 한동안 전문대만 쏙 빼놨었다. 교육부에서 전문대는 투명인간인 존재인 것인가. 〈고등교육법〉 상에서 명백한 교육기관인데 말이다. 직업기술을 가르쳐 사회에 직업인력을 내보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전문대 교수들을 국가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그래서 지난 2017년부터 매년 한 명씩 전문대 교수들도 ‘올해의 스승상’ 평가에 포함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부분에서부터 국가가 우리 전문대를 인정하도록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러한 부분들이 기억에 남는다.”

- 전문대교협 사무총장이 가져야 할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무총장은 전체 전문대학 총장의 대리인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사무총장은 이들 위에서 군림할 수도 있는 위치다. 그런데 정책학에서는 ‘주인-대리인 관계’ 이론이 있다. 이는 ‘국민과 국회의원의 관계’ ‘의뢰인과 변호사와의 관계’ ‘주주와 경영자와의 관계’ ‘고용주와 노동자와의 관계’ 등에서 나타난다. 주인의 이익과 관련된 업무를 대리인의 재량으로 처리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에 대한 이론이다. 이때 대리인은 주인의 뜻에 충실해야 한다. 주인의 뜻을 이행하려고 해야 한다. 내 뜻대로 하는 것은 배신이다.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전문대 총장들이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위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리인으로서 이를 충실하게 따르기 위해 일했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현장’에 관한 것이다. 현장 입장에서, 현장의 요구를 생각하자. 나는 이들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꿔 말한다면 나는 전문대의 심부름꾼이다. 이러한 생각을 기본적으로 명심해야 한다.”

- 일반대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전문대교협 역시 수도권과 지방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이에 대한 복잡함이 더해질 것이라 본다.
“내가 전문대교협 사무총장으로 있을 때까지는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언급한 어려움이 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대교협 역시 지방과 수도권 간 잠재된 갈등이 있다. 언젠가는 드러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지방과 수도권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도(道) 단위와 시(市) 단위가 다를 수도 있다. 전문대교협 사무총장은 지혜로운 조정자가 돼야 한다. 일단 양쪽의 이야기가 모두 일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또한 약자의 입장에서 진솔하게 대화로 풀어 나가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우리 전문대학 사회 전체가 나아갈 방향을 놓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큰 틀에서 전문대학이라는 숲을 만들기 위해 서로 어떤 면에서 양보를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가진 자가 더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도시가, 여건이 더 좋은 곳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방이나 도 단위의 어려운 지역 사정을 더욱 헤야려야 한다. 이때 사무총장은 특히 지혜로운 태도가 필요하다. 가식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양쪽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더 큰 전문대라는 숲을 만들자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고등교육법〉 상 전문대학의 명칭을 ‘평생직업교육대학’으로 변경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런데 현재는 주춤하다. 이에 대한 이유는.
“아무리 좋은 일도 주인의 뜻에 맞아야 한다. 이 역시 ‘주인-대리인 관계’ 이론을 빌려서, 대명제에 순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평생직업교육대학’으로 나아가는 방향은 맞다고 본다. 하지만 대학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다르고, 특히 평생직업교육대학이 여전히 조금 생소한 개념인 것도 맞다. 평생직업교육에 대한 국민적 인식 문제, 위상 등 합의가 아직 도출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전문대학 구성원 역시 여기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덜 됐다. 40~50년간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대학 교육을 지향했는데 역할‧기능을 바꾸려 한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하고, 사회적 여건 역시 성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학에서 동의할 때까지 더 숙성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 ‘진정한 직업교육 시스템 완비’는 사무총장이 중점적으로 관심 가졌던 부분 가운데 하나다. 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직업교육진흥법 제정’ 노력이 들어있다. 이것이 왜 필요한지, 직접 설명한다면.
“학생이 많은 태평성대 시대에는 어떤 대학이든 생존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이었던, 고등교육 진학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지난 20~30년 동안 전문대는 일반대와 유사한 형태의 교육여건으로도 국민들의 고등교육 수요를 충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량생산의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일반교양인 수준의 인력을 양성해,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곧 다가올 미래에는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일반대와 경쟁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일반대학에 대한 분명한 차별화가 필요하다. 또 고등직업교육기관이라면서 일반대가 흉내낼 수 없는 분명한 시스템을 갖춰야 할 필요도 있다. 이는 선진국의 사례를 내가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배운 데에서 나온 생각이다. 미래사회에 생존 가능한 전문직업인 양성을 위해서 체제의 완비가 필요하다.”

- 퇴임을 앞두고 있다.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공직 40년 가운데 전문대교협 사무총장직이 가장 의미있고 보람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던 순간이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현장과 이사회에서 전폭적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문대교협 직원들의 도움에도 정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모든 것들 덕분에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대학 총장님, 이사회, 전문대교협 구성원 등 모두에게 감사하다. 한마디로 나에게는 도전과 행운의 시기였다.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전문대 학생과 현장의 변화에 맞춰 함께 걸어갈 생각이다. 내가 해왔던 일 중에 마무리 못한 것도 있으니까. 현장에서 좀 더 이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황보은 사무총장(왼쪽)과 최용섭 본지 발행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황보은 사무총장(왼쪽)과 최용섭 본지 발행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황보은 사무총장은…
한국방송통신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연세대 교육행정학 석사, 프랑스 파리8대학 박사준비과정 수료, 광운대 행정학 박사를 취득했다. 교육부 인문사회연구과장과 학술인문과장을 역임하고, 교육부 전문대학정책과장과 인사과장으로 있었다. 한밭대와 한국체육대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지난 2015년 전문대교협 사무총장으로 임명됐다.

<대담=최용섭 발행인 / 사진=한명섭 부국장 / 정리=김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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