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여의고 양복점 경영…기술 배우겠다 다짐 뒤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정밀기계과 졸업
‘재계 6위 대기업’ 대한전선 입사 뒤 기술력으로 ‘전문대 차별’ 이겨내
1985년 창업 뒤 ‘세계 최초’ 기술 보유…기술 개발에 매진하려 직원 교육에도 열성

하광운 레이몰드 대표이사가 회사를 배경으로 서 있다.
하광운 레이몰드 대표이사가 회사를 배경으로 서 있다.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상고 1학년 재학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기술을 배우라는 작은아버지 권유에 따라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정밀기계과에 진학했습니다. 취업 후 학력이 아닌 능력으로 승부하겠다는 각오로 기술 습득에 노력한 결과, 신(新) 모델 개발 시 핵심부서에 발탁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대기업으로 이직했지만, 학연‧지연 문화를 극복하지 못해 퇴사하고, 회사를 창업해 직원들과 함께 기술 개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광운 ㈜레이몰드 대표이사는 45년간 금형설계 분야에 종사해 온 기능인이다. 남들보다 늦게 기술계에 입문했지만 기술력만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기술 개발에 매진한 기술인이다.

그는 학연이나 지연, 혈연의 도움 없이 오직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독자적인 기술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친환경적인 기술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 기업을 코스닥에 상장시키는 등 기술인과 경영인으로서 성과를 이뤘다.

■소년가장의 시련, 성장제가 되다 = 하광운 대표는 강원도 고성군에서 2남 4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양복점을 경영하던 아버지의 일손을 거들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읍내의 조그만 가게였지만 재봉 일과 잡일 등을 도우며 아버지에게 보탬이 된 효자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 때, 하 대표는 아버지를 여읜다.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소년가장이 된 그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양복점 운영을 이어갔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승부 근성이 뛰어났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무작정 서울의 소공동을 찾아가 재단을 배우며 양복점 사장으로서의 자질을 갖춰나갔다.

소년 가장으로서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기 때문에 학업에만 집중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낮에는 공부 하고, 밤에 잠을 쫓아가며 일을 했기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하 대표는 “갑작스러운 시련이었지만 오히려 간절함과 목표가 있다면, 그리고 죽을 각오로 노력한다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양복점 사장, 기술에 도전하다 = 하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기계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 집안에 있는 기계는 기어이 자기 손으로 분해를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특히 양복점 덕분에 재봉틀은 장난감 다루듯 다룰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재봉틀이 고장 나면 수리공 대신 하 대표를 찾아올 정도였다.

뛰어난 손재주를 가졌음에도 형편 때문에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양복점을 운영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손재주를 발휘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러다 성인이 된 뒤, 평생의 진로를 고민해야 할 무렵 작은아버지로부터 기술을 배울 것을 권유받았다. 기계를 잘 다뤘던 특성을 살려, 하 대표는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정밀기계과로 진학했다.

처음 해보는 기술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 단어 하나하나가 생소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시간을 쪼개 KS규격집과 기계공학 관련 서적을 소설책 읽듯이 읽어나갔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았다. 수 십 번 반복해서 읽었다. 당시 3시간이 넘게 잠을 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그 결과 상고 출신의 양복점 사장은 상위권의 성적으로 정밀기계과를 졸업하게 된다.

■능력중심사회의 시작은 나부터 = 우수한 성적 덕분에 하 대표는 대한전선 금형설계팀에 학교의 추천을 받아 입사하게 된다. 당시 대한전선이라고 하면 가전 사업에 있어서 삼성전자, 금성전자 등과 경쟁하는 대기업이었다. 재계 6위권을 지키며 10대 그룹의 반열에 위치한 기업에 입사한 것이다.

하지만 알아주는 기업이라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곳에는 이른바 ‘SKY’라 불리는 명문 대학교를 졸업한 사원들이 즐비했다. 또한 학연과 지연, 혈연을 중시하는 문화가 만연했다.

전문대학 출신인 하 대표에게는 많은 차별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술력이 학연, 지연, 혈연의 벽을 뛰어넘게 해줄 수단이라 굳게 믿었다. 하 대표는 기술 연구와 개발을 위해 같은 설계를 두 번 하지 않았다. 편한 설계 방법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설계법을 접목하려 노력했다. 속도와 효율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다.

덕분에 설계 기술은 눈에 띄게 향상돼 갔다. 신 모델을 개발할 때마다 핵심 부서에 발탁돼 실력을 발휘하는 등 오로지 능력 하나로 신임과 인정을 받게 됐다. 부조리에 좌절하거나 맞서 싸우기보다 기술로 최고가 돼 스스로 인정 받겠다는 집념과 승부 근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광운 대표
하광운 대표

■정직과 성실로 이룬 ‘세계 최초’ 타이틀 = 하 대표는 이후 더 큰 기업의 기술과 문화를 접하기 위해 LG전자로 이직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약 100페이지 분량의 설계 교본을 만들어 신입사원들을 교육하기도 하고, 제품 설계자로서 제품의 특장점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 포인트를 영업사원들에게 알려줘 매출을 증대시시키도 했다. 설계 실력과 경험을 유감 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하 대표는 “이때 대기업의 경영문화를 접하며 기업가로서의 소양을 키울 수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도 학벌주의와 혈연, 지연 관계에 의한 갈등은 지속됐다. 하 대표는 능력 위주의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결심을 한다. 1985년 현대전주금형을 창업하게 된다. 서울 가리봉동의 10평 남짓한 작업장에서 직원 3명과 함께 기술을 개발했고, 국내 최초로 금형전주코어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하 대표의 사업은 승승장구의 연속이었다. ‘ER-MOLD’ 기술을 개발했다. 전열을 이용해 300도까지 금형표면을 균일하게 가열하고, 30초 정도에 15도로 냉각시키는 초고온 금형 온도 제어 기술이다.

계속해서 이번에는 세계 최초로 ‘무인쇄 도광판(Printless LGP)’을 개발한다. 도광판(light guide plate)을 만드는 금형 자체에 반사각을 성형하는 기술로, 패턴인쇄 공정을 생략한 신기술이었다. 이어 이를 활용한 ‘LCD-BLU(Black-Light Unit)’ 등 뛰어난 고유기술을 만들게 됐다.

무인쇄 도광판과 LCD-BLU의 양산으로 기업 규모가 커지자, 2001년에는 ㈜레이젠을 코스닥시장에 상장(2016년 경영권 매각)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난 2010년 ㈜레이젠 금형사업부에서 분할 설립된 ㈜레이몰드를 통해 금형, 사출사업을 하며 직원 수 50여 명에 연매출 86억원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정직’과 ‘성실’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기에 가능한 결과다.

■‘세계 최고’의 꿈을 설계해 나가다 = 기술 개발과 성공으로 하 대표는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인력과 기술이 유출되는 일들이 하 대표를 힘들게 했다. 그럴수록 그는 직원들의 능력 개발과 직장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도입했다.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한 것도 그 일환이다. 진심을 다해 직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체계를 잡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회사에 대한 애정도 높아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술 개발에 매진할 계획이다.

젊은 시절부터 다짐했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겸비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 금형산업 발전에 공헌하길 희망하고 있다.

[TIP] 레이몰드, 직원 체계적 교육 위해 유한대학교와 협력

레이몰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고숙련 전문인력으로 직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유한대학교와 함께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한다. 레이몰드 직원들은 현재 고숙련일학습병행(P-TECH) 신규 학습근로자로 입학해, 적극적으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고 있는 고숙련일학습병행(P-TECH)은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를 졸업한 학습근로자가 기업에 계속 재직하면서 전문대학에서 이론을 공부하고, 경력도 쌓으면서 고숙련의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선진국형 제도다. 참여 학생은 기업과 대학을 오가며 현장실무능력과 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지난 40회 학위수여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바 있는 유한대학교는 정부의 청년고용 정책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대학 가운데 한 곳이다.

■하광운 대표이사는…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정밀기계과를 졸업했다. 1974년 대한전선에 입사해 금형설계팀으로 재직했다. 1980년 LG전자 오디오사업부 제품설계팀을 거쳐, 1985년 현대전주금형을 설립했다. 2010년 레이몰드 주식회사를 세웠다. 지난 2011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