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수 본지 논설위원/한양대에리카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박기수 한양대에리카 교수
박기수 한양대에리카 교수

디즈니의 여름이 경이롭다. ‘토이스토리 Ⅳ’에서 ‘알라딘’과 ‘라이온킹’까지 올 여름 극장가를 거침없이 장악해나가는 디즈니의 광폭행보는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09년 마블을 40억 달러에 인수한 이후, 지난 10년간 디즈니가 구축해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의 성과는 모두가 놀라움이었기 때문이다. 28억 달러를 벌어들여 역대 흥행 1위에 오른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물론 총 22편에 이르는 ‘어벤져스’ 시리즈를 구성하는 솔로 무비까지, 그동안 디즈니가 압도해 온 것은 단지 흥행 성적이 아니라 차별적인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였다. 디즈니는 마블이 보유한 5000개의 캐릭터와 그것들이 지닌 세계관을 확보하고,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를 탄력적으로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야기의 생산방식과 향유방식은 물론 즐김의 대상과 과정까지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시도였다. 개개 작품의 독립성은 유지하면서 동시에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의 구축에 기여하게 하고, 솔로 무비 간의 아주 느슨한 관계에서 출발하지만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 구현 과정을 통해 상호연관성 내지 밀도를 높이는 이러한 전략은 향유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체험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디즈니의 이번 여름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동안 그들이 구사해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외에 새로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애니메이션으로서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확보했던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토이스토리 Ⅳ’로 돌아오며 스토리월드를 확장한다. 앤디의 장난감에서 장난감으로서 스스로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우디와 친구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선명하게 부각된 보까지, 프랜차이즈가 지속되면서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세계로서 확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토이스토리 Ⅳ’보다 더 주목을 끄는 것은 ‘알라딘’과 ‘라이온 킹’이다. 1990년대 초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부흥을 이끌었던 작품들을 지금 이곳에서 소환해 실사 영화로 바꾼 이 작품들에서는 디즈니의 새로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92년 ‘알라딘’은 애니메이션으로 크게 성공한 이후 OST, 홈비디오 애니메이션 형태로 제작된 ‘알라딘Ⅱ’와 ‘알라딘Ⅲ’, 디즈니랜드에서 팬서비스 형태로 제공됐던 간이 뮤지컬, 완성도에서 호평을 받았던 게임, 아이스쇼, 지니쇼라고도 불리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등을 통해 매체와 장르를 가로지르며 ‘알라딘’의 스토리월드를 구축해왔다. 근 30년의 시간 동안 향유자와 시장이 원하는 최적화된 방식의 즐길 거리로 확장해온 ‘알라딘’은 영화를 통해 현재성을 강화했다. 자유와 진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가치를 구현했던 애니메이션을 토대로 자스민 공주의 주체적인 자기 각성과 세계를 향한 적극적인 대응, 시녀인 달리아가 사랑을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모습을 통해 ‘지금 이곳’이 요구한 ‘알라딘’을 구현했다. 물론 자스민 공주와 달리아의 선택이 선언적인 수준을 넘지 못했고, 서사 전개의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백인, 기독교도, 중산층, 남성’의 이익을 대변해왔던 그동안의 디즈니적 시각을 알고 있는 향유자라면 이 정도의 변화만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중요한 것은 향유자의 관점에서 접속하고, 참여하고, 체험할만한 가치를 만들고 있느냐다. 

이런 맥락에서 ‘라이온 킹’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아쉽다. ‘라이온 킹’이 ‘덤보’ ‘미녀와 야수’ ‘알라딘’을 이어서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전환하며, 비동기식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구사하며 새로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를 구현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라이온 킹’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당시 최고의 스코어를 기록했고 홈비디오 애니메이션 형태로 ‘라이온 킹Ⅱ’와 ‘라이온 킹Ⅲ’를 발표했고, 게임도 함께 출시됐고, 뮤지컬로 만들어 새로운 즐길 거리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비동기식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성공적인 모델이 될 수 있었다. 전작의 화려한 후광효과와 성공적인 스코어에도 불구하고 영화 ‘라이온 킹’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아쉽다. 그것은 애니메이션의 미덕을 영화에서 전혀 살리지 못했고,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로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지금 이곳으로 소환해야 할 주제의 공감이 떨어졌고, 구현 기술이 스토리텔링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함으로써 매력적인 차별화 요소를 전면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디즈니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는 변별되는 새로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 구현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간 경계나 콘텐츠의 국적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시점에 거대 자본과 풍부한 노하우를 지닌 디즈니의 새로운 스토리텔링 전략은 두렵지 않을 수 없다. 경쟁을 원한다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 구축의 핵심 동력인 향유자의 참여와 체험 그리고 즐거움의 창출 과정에 대한 실천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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