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타뚤리 지음, 양승윤, 배동선 옮김 《막스 하벨라르》

[한국대학신문 신지원 기자] 유럽 열강들이 경쟁하듯 아시아와 아프리카 땅을 점령해서 약탈하던 시절, 이 책은 나오자마자 유럽 전역을 뒤흔들었다. 지식인임을 자처하거나 사람의 양심을 논하는 유럽인이라면 앞다퉈 찾아 읽으며 진정한 정의와 인류애를 생각했다. 그 결과 식민정책을 완화할 환경이 조성됐다. 식민지 젊은이들도 이 책을 읽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 일반 대중을 일깨웠다. 아프리카 나라들 독립운동에도 불을 당기는 역할을 했다. 그야말로 세계사에서 식민시대를 마감하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그리고 100년 후, ‘공정무역’이라는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피어났다. 자신이 재배한 커피원두를 헐값에 넘기고 고리채에 시달리는 멕시코 농민들을 본 네덜란드 신부가 이 책의 정신을 실현한 주인공이다. 프란스 환 호프는 1973년 멕시코에 우시리(UCIRI)라는 커피협동조합을 만들어 ‘막스하벨라르’ 상표를 붙였고, 이로써 ‘공정무역 커피’가 탄생했다. 그 후 공정무역은 전 세계로 퍼져 현재 공정무역 상품이 1700여 종에 이르고, 공정무역 도시도 50여 곳에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이제 막 자라나는 수준이지만 점차 넓어지고 있다. 가혹한 식민역사를 겪었다는 동병상련 외에도 근본적인 화두를 찾을 수 있는 ‘고전의 힘’을 느껴볼 수 있다.

세계사 물줄기를 두 번이나 바꾼 이 책은 1860년 초판이 나온 뒤 지금까지 46가지 언어 번역본이 나왔다. 네덜란드에서는 2003년 아코문학상을 헌정했는데, 해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지난 해 가장 많이 팔린 문학작품에 수여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물타뚤리의 본명은 에두아르트 다우어스 데커르(Eduard Douwes Dekker)다. 1820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으며, 1838년 아버지의 무역선 선원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향했다. 그 다음 해부터 총독부 관리로 일하기 시작해서 서부 수마트라 나딸, 북술라웨시 머나도, 향료군도 중심지 암본을 거쳐 1856년 부지사로 이 책의 주무대인 쟈바 섬 르박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곳에서 식민정부의 묵시적인 학정과 수탈에 비분을 느끼고 자국의 식민정책을 비판하며 항의했으나, 오히려 온당치 못한 태도라는 혹독한 비난과 함께 오지 발령이 떨어지자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필명 물타뚤리로 집필한 이 책이 마지막 카드였다. 1859년 10월 한 달 동안 브뤼셀 작은 호텔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전부 모아 이듬해인 1860년에 출간했다. 조국 네덜란드에서 변변한 직업 하나 얻지 못한 채 이웃나라 벨기에와 독일을 전전하며 집필과 연설로 연명하다, 1887년 독일 인겔하임에서 일생을 마쳤다. 비록 몸은 고단하고 마음은 황폐해졌으나, 한 시대를 밝힌 영웅으로 영광스러운 삶을 살다 갔다.(시와진실/1만8000원)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