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국 경희사이버대 관광레저항공경영학과 교수

티톱섬에서 바라 본 하롱베이.
티톱섬에서 바라 본 하롱베이.

김찬삼 교수께서는 가보지 못했던 베트남을 필자는 최근에 가장 많이 다니고 있다. 사람이 좋아서, 가볼 관광지가 많아서, 대학교류로, 의료관광 네트워크 구축 등으로 수많은 인연이 연결돼 있다. 온갖 얘깃거리가 풍성한 이 나라를 한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어 3부로 나누어 연재한다.

어떤 국가나 지역을 여행하고자 할 때 그곳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가 관광지 선택에 가장 큰 영향요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인에게 베트남은 가장 많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국가다. 월남, 월맹, 베트콩, 호찌민, 베트남전쟁, 맹호부대 이것이 초반부의 이미지라면 근자에 와서는 하롱베이, 하노이, 호찌민, 무이네, 가성비 좋은 관광지, 그리고 베트남 신부, 베트남 유학생 등으로 점차 주요 관광지와 베트남 사람에 대한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이렇든 베트남은 현재 한국과 교류 및 관광분야에서 급격히 성장하는 국가다. 삼성전자가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25% 차지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이고 중국을 대체할 동남아 현지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관광의 관점에서 베트남은 남북의 길이가 1650km(해안선으로는 3444km)로 높고 험한 산지, 해안, 열대계절풍에 의한 밀림, 수천년의 굴곡진 역사에 의해 점철된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어서 다양한 볼거리, 체험거리가 있는 최적의 관광지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이 선호하는 지역은 북부의 하노이(HaNoi)와 하롱베이, 사파 지역과 중부의 다낭(Da Nang), 후에(Hue), 호이안, 퐁냐케방 지역, 그리고 남부의 호찌민(Ho Chi Minh), 무이네, 달랏과 야짱, 푸꿕 섬의 세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쟁으로 점철된 1000년의 역사

먼저 베트남의 처절한 역사를 알아야 그들의 생각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의 진나라부터 청나라까지 4차례에 걸쳐 1000여 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은 힘없는 남월(南越)이라는 나라는 그 이름마저도 국호를 사용할 수 없어 월남(越南)이란 나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과 끊임없이 항전해 응우옌 왕조(1558~1777년, 1802~1945년, HUE가 왕도)로 독립을 찾았지만 19세기 서양제국주의의 팽창으로 프랑스식민지 시기(1884~1945년) 이후 짧은 일제 침략(1940~1945년, 프랑스와 이중 식민지배), 프랑스와의 독립전쟁시기(1945-1954년)를 거쳐 북부 베트남의 호찌민을 중심으로 미국과의 독립전쟁(1954-1973년)에서 수많은 희생과 전쟁유산을 남긴 대가로 1975년 세계최강의 미국을 물리치고 자부심 강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일됐다.

베트남과 한국과의 관계는 고려 때 베트남 리(Ly) 왕조의 이용상이 망명 귀화해 화산(花山) 이씨의 시조가 됐고 베트남전쟁 기간에 한국은 의료지원단과 건설단을 비롯해 전투부대인 맹호부대, 청룡부대, 백마부대 등을 파병했다. 수많은 사상자와 고엽제 후유증, 그리고 비록 대리전쟁이었지만 가해자라는 어쩔 수 없는 은원(恩怨)의 관계로 시작해 과거는 잊고 새로운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신남방정책의 교두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땀콕의 지형
땀콕의 지형

◇베트남 국민기질과 다종교

베트남의 국민성은 남북으로 긴 국토와 높고 험한 지형, 밀림으로 가로막힌 탓에 지역성이 다채롭다. 특히 기후가 그 지역성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데, 오랫동안 지역의 자연환경에 적응돼 살아오면서 인간은 기후에 따라 성격도 변화된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냉철하고 철학적 성격의 독일인과 음악과 예술이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차지하는 남프랑스와 이탈리아로, 그 어떤 지역이든 그곳 사람과 얘기하고 전통음식을 먹어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인정과 풍습으로 표출된다. 베트남에서도 호찌민의 ‘자유분방’함과 하오이의 ‘차분함’은 기후가 지역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베트남인들에 대해 비상한 손재주, 근면성,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의 성장 저력은 고난의 역사가 낳은 부지런하고 강인한 민족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인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내부에서 세력 갈등을 겪다가도 외세 민족의 공격으로 위기의식이 느껴지면 내부 갈등자 간에 강력한 협력이 이뤄진다.

베트남의 종교는 참 다양한데 그것은 오랜 외세와 식민기간을 거쳐 유연하게 대처해온 민족성과도 밀접하다고 할 수 있다. 유교, 도교, 불교가 오랫동안 베트남화해 집과 가게에 이들 신을 모시는 생활 종교로 형성되고 베트남인들의 삶과 동화됐다. 프랑스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가톨릭이 전파됐고 이후 유입된 개신교는 현재 약 150만명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베트남은 융합종교가 형성돼 있는데 중국인의 민간신앙과 베트남인들의 고대 정령신앙과 불교 3개의 종교가 합해져 ‘베트남 불교’라고 불리는 땀짜오가 있고, 유교ㆍ불교ㆍ도교ㆍ기독교의 교리를 종합한 까오다이교, 불교 교리를 단순화해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호아하오교 등 온갖 신들이 잘 공존하는 곳이다. 단, 베트남은 여타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선교의 자유는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베트남 북부의 관광자원

하노이(Hanoi)

현 베트남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의 수도인 하노이는 통일 후 1976년부터 정치적 중심지로 하내(河內) 즉 홍강과 또릭강이 자유곡류(自由曲流)해 삼각주(三角洲)로 형성된 ‘강 안 마을’이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10℃로 떨어져 동남아 날씨치고는 추워서 비교적 4계절이 뚜렷한 지역이다. 범람원(汎濫原) 평야 위에 건설된 도시이기에 서호와 호안끼엠 호수 등과 같이 산재한 100여 개의 호수가 시민들의 주요 휴식처와 관광지가 되고 있다. 하노이는 천년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에 걸맞게 유서 깊은 사찰, 식민지풍 교회나 건물, 좁고 아기자기한 골목, 그리고 포장마차와 가게들이 몰려 있는 거리풍경이 운치가 있는 곳이다. 최근의 핫 플레이스는 호안끼엠 호수 인근의 맥주거리로 전 세계 관광객들과 하노이 젊은이들의 해방구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호찌민 영묘.
호찌민 영묘.

호찌민 영묘(Ho Chi Minh’s Mausoleum)

한국의 동작동 국립묘지와 같은 곳으로,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 가지 과업을 이룬 위대한 지도자 ‘호 아저씨’가 1969년 사망 후 방부처리해 영구보존된 묘소이다. 호찌민이 자신을 위한 어떠한 기념비도 세우지 말고 시신은 화장한 후에 재를 3등분해 북부, 중부, 남부에 뿌리라 했던 유언을 후대 권력자들이 호찌민을 중심으로 한 유훈정치에 활용하기 위해 건설한 영묘이다. 1975년 세워진 이 묘는 다낭에서 운반해온 대리석으로 밑단을 깔고 다시 20개의 주홍색 대리석 기둥을 세운 뒤 그 가운데에 시신을 안치해 유해를 모신 방과 호찌민의 독립과 통일을 위한 투쟁을 기록한 박물관으로 구분돼 있다.

호찌민박물관(Ho Chi Minh’s Museum)

호찌민의 묘 입구에 있으며 매우 현대식 건물로 주위의 사원과 구별된다. 1990년 5월 19일 호지민 탄생100년이 되는 날에 개관했다. 호찌민 생가 모형, 애용품, 편지, 혁명과 관련된 것이 전시되고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로 안내한다.

수상인형극.
수상인형극.

수상인형극(Water Puppet Show)

무아 로이 누옥(Mua Roi Nuoc)이라고 한다. 그 기원은 홍강(Red River) 삼각주의 농민들의 삶을 추수한 후 농한기 무논에서 펼쳐진 인형극으로 승화한 것이다. 탕롱극단(Thang Long puppet troupe)이 하노이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물을 채운 무대위의 꼭두각시 인형들의 연극은 긴 대나무 막대와 수면 아래 숨겨진 끈으로 조종한다. 베트남 전통음악이 배경음악으로 연주되고, 우리나라의 판소리처럼 북베트남에 기원을 둔 전통오페라 체오(Cheo) 가수가 꼭두각시의 얘기를 하는 행동에 맞춰서 노래한다. 주제는 시골생활에서 작물을 수확하고, 고기를 잡는 얘기들, 온갖 축제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돼 베트남의 전통예술을 느낄 수 있는 볼거리이다.

호안키엠 호수.
호안키엠 호수.

호안키엠 호수 (환검호 還劒湖, Hoan Kiem Laked)

호찌민에서 가장 번잡한 도로 한가운데의 작은 호수로 북쪽에는 시장이 있고, 남쪽은 프랑스풍의 이름다운 레스토랑과 건물들이 밀집돼 있다. 15세기 호족의 청년이었던 레 로이(le Loi)가 호수의 거북이에게서 받은 검으로 중국 명나라 군대의 침략을 물리친 후 레 타이 투 왕이 돼 다시 거대한 황금 거북에게 검을 돌려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다시 되돌려준 칼의 호수’로 유명한 곳이다. 호수에서는 아직도 살아 있는 거대한 거북들을 볼 수 있다. 호숫가에 18세기 설립된 옥썬(Ngoc Son)사당이 빨간색의 다리로 연결돼 야경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으며 약 2m나 되는 황금거북 박제가 전시돼 연일 관광객이 가장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하롱베이(Ha long Bay)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110㎞를 가면 베트남이 가랑 자랑하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하롱베이 국립공원(Halong Bay National Park)이 있다. 총면적 1553㎢, 1969개의 작은 섬과 석회암 기둥, 그리고 동굴들로 구성돼 하롱(Halong, 下龍) ‘용(龍)이 바다로 내려와 머문 만(Bay, 灣)이 있다. 탑상 카르스트지형으로 고생대의 바닷속 산호초 군락이 퇴적 되어 융기한 후 석회암층의 절리를 따라 용식(溶蝕)작용에 의해 이러한 장엄한 경관이 형성된 곳이다. 특히 옛 소련 우주비행사였던 티톱(Titov)이 호찌민과의 친분으로 이곳을 방문하여 그의 이름을 붙여준 티톱 섬에서 본 하롱베이의 바다와 어우러진 경관은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절경이다. 그런데 이곳의 백사장이 인공이라는 것에 더욱더 놀라는 곳이기도 하다.

조그만 삼판배를 전통모자 농을 쓰고 노 젓는 강인한 베트남 여인
조그만 삼판배를 전통모자 농을 쓰고 노 젓는 강인한 베트남 여인

땀 꼭 (Tam Coc)

하노이 남쪽 95㎞의 닌빈주에 속하는 땀꼭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된 짱 안 경관(Trang An Landscape Complex)의 구역 중 짱안-땀꼭-빅동 풍치지구의 일부지역으로 육지의 하롱베이라 불린다. 이 지역도 석회암 카르스트 경관으로 사오캐 강(Sao Khe River)을 따라 좌우로 깎아지른 절벽, 동굴과 함께 어우러진 논농사 지대를 전통모자 농을 쓰고 조그만 삼판배를 노 젓는 강인한 베트남 여인의 모습은 가장 ’베트남적인 경관‘으로 삼을 만하다.

사파(Sa Pa)와 판시판(Fansipan) 산, 박하! 베트남에서 눈이 내리는 곳!

판시판 산 정상으로 오르는 케이블 카와 다락논.
판시판 산 정상으로 오르는 케이블 카와 다락논.

사파는 베트남 북부의 라오까이성의 서남부에 있으며 해발 1650m에 위치하고 있으며 베트남에서 해발고도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이다. 베트남의 오지였던 이곳이 각광을 받은 이유는 기온은 연중 서늘하여 1922년 프랑스인들에 의해 피서지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특수한 기후조건하에서 변화무쌍한 안개와 유럽식 건축물이 어우러져 있는 고산도시의 매력과 흐멍족과 같은 소수민족들이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놓은 산지경작문화경관을 느끼면서 트레킹해 보는 것이 일생일대 최고의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과잉관광)의 물결이 이곳에 몰려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가봐야 할 곳이고, 그 폐해를 신속히 막아야 할 곳이기도 하다. 판시판 산은 해발 3134m로 베트남의 최고봉이며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높아 ‘지붕’으로 불리고 있다. 다양한 지형, 삼림, 폭포 등 빼어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는 이 산을 오르려면 1박 2일 동안 자기 발로 등산해야만 그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데 다행히 2016년 케이블카가 개통돼 20분이면 3000m 고지에 내려서 한 100m만 걸어 올라가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게 됐다. 단, 기압이 낮아 호흡이 곤란하므로 심장이 약한 사람은 케이블카로의 등반도 삼가해야 한다. 특히 겨울철의 여행은 엄청난 안개와 추운 날씨로 가끔 눈을 맞는 행운까지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박하, 오지 소수민족 주말시장.
박하, 오지 소수민족 주말시장.

여행 일정을 늘려서라도 하루일정 거리에 있는 박하(Bac Ha)의 주말에만 열리는 토요시장은 꼭 가봐야 한다. 고산 오지 소수민족의 독특한 의상, 토속음식과 직접 재배한 신비한 약초와 농산물, 그리고 토요 주말장터에서만 볼 수 있는 그들만의 풍습을 볼 수 있다. 언제 또다시 가볼지 모르고, 다시 갔을 때는 그들의 모습이 변해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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