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희전남도립대학교 교수(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 대학지자체상생발전위원장)

한강희 교수
한강희 교수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유사 이래 우리 민족과 국가를 끊임없이 괴롭힌‘왜구(倭寇)’와의 경계를 결연히 하며 양국 간 분쟁의 시금석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 영토의 동쪽 끝자락 독도. 그렇게 염원하던 독도가 3·1운동 1백주년을 맞아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지난 3월 1일 오후 3시께였다. 최근 몇 년 간 날씨 탓으로 유독 3·1절에 방문객을 맞이하지 못했다가 7년 만에 문을 연 것이다.

울릉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만난 2시간 거리의 독도는 일의대수(一衣帶水)로 지칭되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의 오욕 또는 울분으로 점철된 역사적 팩트를 새삼스레 일깨우려는 듯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모습으로 시퍼렇게 나타났다. 방문객들은 선착장에 하선해 동도와 서도를 바라보며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다.

일본과의 역사전쟁이 경제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우리 헌법이 계승하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에 양국관계가 한민족의 삶과 비전을 위협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은 양국 간 시각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문제로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소송, 독도 영유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양국 간 복잡다단한 문제에 기인 바 크지만 이번 아베 정부가 취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는 문제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아베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한국 측에 경제적 겁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즉 국제 간 협력을 근간으로 한 무역거래 패러다임을 위협하는 행위는 역사문제에 경제문제까지 덧씌우는 것이어서 교각살우(矯角殺牛)와 다를 바 없다.

한일 간 역사 및 경제 분쟁은 관련국들과의 국제적 역학 관계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중차대한 현안으로 간주된다. 이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 방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정부를 위시한 공공 부문의 공식적 채널을 통한 거시적 협상 노력과 시민사회를 위시한 민간 부문의 지속가능한 대응이다. 우선 국민의 삶과 국가의 비전을 담보하는 경제적 이해관계는 미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상을 통해서만 실질적인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산업구조 업그레이드, 무역거래선 다각화, 동북아 신협력 체제의 모색도 요청된다. 경제문제는 현실적으로, 역사문제는 미래지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이른바 개화기로 지칭되는 구한말의 풍경과 저간의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일각의 인식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근대사는 서구적인 의미의 근대로의 이입(移入)을 준비하기 위한 몸부림을 과도기, 전환기, 이행기라는 이름으로 규정하지 않았던가. 특히 이 시기를 제국주의 세력과 결연히 구분하기 위한 민족주체적인 입장에서 애국계몽기라고도 지칭하고 있다. 구한말의 국가적 아젠다는 자강불식(自彊不息)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광복절 축사에서 주장한 ‘어느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는 국민이 대망하는 바다. 좀더 구체적으로 필요한 덕목은 경제적 ‘자강’이다. 국민정서 역시 저간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타개해 나가길 애타게 바라고 있다.

민간 부문에선 대일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국제적으로 인류사적 보편성에 호소하는 지속적인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 수탈, 침탈로 얼룩진 제국주의 적 잔혹상을 그들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죄하는 그날까지 국제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개싸움은 우리가 할 테니 정부는 정공법으로 나가라’는 네티즌들의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지 않은가.

3·1운동 1백주년, 광복 74주년인 2019년. 우리는 한 때 거대담론이었던 민족주의라는 주류 서사가 지엽말단적 아류로 밀려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민족과 국가라는 성채(城砦)가 견고하게 구축돼야 우리의 미래가 담보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야 할 때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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