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현장에서 교육의 논리가 너무 많이 훼손되고 파괴됐다는 걸 느낍니다. 시장논리에 치우쳐 당연한 일이지만, 놓치고 지나쳐온 교육과 연구의 전당으로서 대학의 기능을 복원하려고 합니다.” 홍기삼 동국대 총장(63).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로 외길을 걸어온 그가 대학 경영자로 변신했다. 시쳇말로 ‘반죽이 좋은’, ‘명철보신(明哲保身)’하는 타입도 아니었기에 어떻게 총장을 하겠느냐는 말도 들었다며 자신을 낮춘 홍 총장은 대학운영 청사진을 차분하지만 명쾌하게 밝혔다.

확장주의가 아닌 내실주의를 지향하는 그는 ‘교육의 논리’를 회복하는 것이 총장으로서 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시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완강하고 가지고 있습니다. 보편적 가치를 창출하고, 그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인격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는 곳이지, 물질적 이익만을 창출하는 경영공간이 아닙니다. 물론 경영적 지원 없이 교육인프라가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다만 과도한 실용주의와 경영마인드라는 이름으로 시장논리에 편승해 개혁을 하다보니 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고 공동체 정신보다는 젊은 세대들의 단자화를 촉진하게 됐다고 봅니다.” 단적으로 학부제나 수시모집 제도가 몰고 온 교육의 질 저하를 지적한다. 수시모집으로 고교 교육이 2년으로 줄어들면서 학교교육이 입시용으로 전락하고, 대학에 오면 36학점만 취득하면 학위를 주다보니 학력 저하만 불러왔다는 것이다. “수시선발로 기초가 부실한 학생들을 뽑아 대학에서도 스치고 지나가게 만드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고 지적한 홍 총장은 학과 중심제로 전환을 추진하고 제대로 된 졸업생을 배출하기 위해 졸업하기 까다로운 대학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오는 2006년 개교 1백주년을 맞는 동국대를 ‘생태학의 총 본산’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홍 총장은 ‘불교생태학’을 주창, 국내외에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무기체, 유기체를 막론하고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불교적 세계관과 생태학이 추구하는 철학적 기반은 서로 일치합니다. 파괴된 생명과 환경을 어떻게 치유해 나갈 것인지, 불교와 생태학을 접목시킨 ‘불교생태학’ 프로그램을 개발해 세계인에게 새로운 학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미 기반이 갖춰져 있는 정보통신과 의학 등 첨단분야는 계속 발전시키고, 동국대의 특성인 한국학, 불교학 등 인문학은 시장성과 상관없이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국제교류를 해보면 한국적 특성을 가진 인문학, 불교, 한의학에 외국대학이 큰 관심을 보입니다. 구호성 ‘세계화’가 아닌 세계인들이 우리와 교류를 맺고 싶어하는 한국적 특성이 강한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난 1월 신축 중앙도서관을 개관한 동국대는 공간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일산 부지에 기숙사, 연구실, 강의동을 짓는 것을 필두로 시설확충과 복지 개선에 많은 투자를 할 방침이다. 무엇보다도 선진 의료장비를 갖춘 일산 불교병원을 내년 상반기 개원하기 위해 막바지 작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며, 개교 1백주년 기념사업으로 출판사업과 국제학술회의 준비 등에 팔을 걷어붙일 작정이다. 홍 총장은 학생들에게도 변화를 주문했다.

대학마다 홍역을 앓고 있는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는 ‘대화’는 하지만 ‘협상’은 없다고 학생들에게 선언했다. 교육자로서 떳떳한 스승이 되고, 예산집행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학생들이 학교를 못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으로 삭막한 방식보다는 철저하게 사람냄새가 나는 인간적인 경영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전임 총장이 등록금 인상률을 10%로 정해 놓았는데 제가 경주학생들에게 8%를 얘기했어요. 2%를 돌려주겠다고 하니깐 학생들이 발전기금으로 내놓겠다고 하더군요.”

교육정책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충고를 잊지 않았다. “교육당국이 정책을 자주 바꾸는 것도 문제지만 정책을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는 교육주체들의 극성도 곤란하다고 봅니다. 예외를 들어서 보편을 설명하는 방법은 없죠. 소수의 오류를 가지고 교단 전체를 욕되게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함부로 논의돼서는 안 됩니다. 스승은 지식전달자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니깐요.” 한달 남짓 총장직을 수행해보니 학문에 몰두하고, 제자들과 같이 고민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지 깨달게 됐다는 홍 총장. 불쑥불쑥 모티브가 떠오를 때면 얼른 머리를 흔들어 쫓아낸다며 문학에 대한 갈증을 감추지 못한 그는 교육과 연구가 투철한 대학, 생태학의 총 본산인 동국대를 만든 후 4년 뒤 서재로 돌아가 실컷 읽고 쓰겠다고 말했다. 대담=이정환 편집국장, 정리=조양희 기자, 사진=한명섭 기자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