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배상기 교수
배상기 교수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들은 내신성적 등급에 따라 당당함의 정도가 다르다. 자신이 노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대평가로 나타난 성적의 등급이 자신의 전체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등급으로 오해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적이 좋지 못하더라도 다른 역량은 훌륭할 수가 있다.

지난 6일 열린 ‘2020학년도 전문대학 수시 입학 정보 박람회’에서 한 여학생 A양을 만났다. 그 여학생은 어머니와 함께 와서 상담교사와 상담을 했다. 그 여학생의 꿈은 패션 분야에서 일을 하거나, 유통 혹은 방송 등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에 관련된 학과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것이다.

A양은 상담교사에게 자신의 성적표를 보여 주었다. 그녀는 너무도 당당했다. 그래서 상담교사는 A양의 성적이 매우 좋은 줄 알았는데, 전체 내신성적은 평균 6.4등급이었다. 자신은 공부를 안했기 때문에 지금 이 성적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그에 맞는 전문대학에 진학해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하고 싶다고 했다. 그 어머니도 아이가 공부를 못한 것이 안타깝고 아쉽기는 했지만, 공부를 제외하고는 관계도 좋고 성격도 좋아 앞으로 딸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필자도 A양의 성적을 확인했고, 그녀의 꿈을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그런 A양을 칭찬해 줬다. A양은 지금까지 공부하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자신의 앞길을 위해서, 자신이 선택한 삶을 위해서 노력해 성공하고 싶다고 했다. 그 표정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고, 현재의 자신에 대해 매우 당당해 보였다.

필자는 A양과 같은 학생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비록 공부는 잘하지 못해도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의 성적이 좀 좋지 않다고 해서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다. 현재의 자신이 가진 상황에서 당당할 필요가 있다.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이민규 박사의 저서 《하루 1%》라는 책 첫 장은 자기규정 효과 (self-definition effect)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기규정 효과란 ‘자신에 대한 믿음이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고, 나아가 운명까지 결정하게 되는 것(이민규, 하루 1%, 22쪽)’을 심리학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새롭게 규정해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자기규정이 자신의 태도와 자신이 하는 행동 전반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가 자신을 현재와 다르게 규정하면, 우리는 현재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우리가 자기규정을 바꾸면 결과적으로 우리의 인생이 새롭게 규정한 대로 바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학적 용어나 이론을 대입하면 A양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A양은 내신성적 6.4등급의 여학생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해 성공자의 길에 들어서는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상에 그친 것이 아니라 전문대학 입학 정보 박람회에 와서 상담하며 구체적으로 그 길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A양은 여러 상담교사에게 다가가서 여러 가지를 질문도 하면서 자기가 필요한 모든 정보를 자세히 알고자 노력했다. 이런 모습은 필자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필자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포함해서 한국의 모든 청소년이 이런 태도를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도 가졌다. 이민규 박사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외부가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다. 우리의 견해 중 가장 중요한 견해는 자신에 대한 견해이고, 평가 중 가장 중요한 평가는 자신에 대한 평가다. 어떤 사람도 생각 이상으로 높은 곳에 오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면 우리 자신을 더 높은 곳에 데려다 놓아야 한다. (이민규, 하루 1%, 28쪽)”

우리는 자녀들에게, 그리고 학생들에게 자신에 대해 당당해지라고 가르치자. 그런 태도는 청소년 자신을 현재보다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성적으로 청소년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지 말자.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당당하도록 돕자. A양이 박람회에 와서 당당히 자신의 앞길을 상담한 것처럼 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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