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인천재능대학교 학생상담센터 상담사

이선영 인천재능대학교 학생상담센터 상담사 (사진=허지은 기자)
이선영 인천재능대학교 학생상담센터 상담사 (사진=허지은 기자)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대학의 구성원을 세어 보면 학생과 총장, 교원, 직원으로 나눠볼 수 있다. 쉽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직원 중에는 학생들의 학교 적응과 진로 발달을 돕고 정신 건강을 살피는 역할을 하는 상담사들도 있다. 학생들에게 대학은 사회에 나가기 전 마지막 관문이기에 상담사들은 학생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최후의 조력자다. 우울증을 앓는 20대 청년의 비율이 점차 느는 상황에서, 이들의 몫은 더 중요해진다.

전문대학에서는 상담사의 역할이 한층 절실하다. 소득분위가 낮은 재학생이 일반대학보다 많고, 경제 상황은 심리 상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살예방의 날’이었던 9월 10일을 한 주 앞두고 있었던 9월 첫째 주 어느 날, 인천재능대학교 학생상담센터를 찾은 것은 전문대학 상담사들의 하루를 지켜보며 그들의 역할과 노력, 고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인천재능대학교 학생상담센터는 2018년 전국대학교학생상담센터협의회로부터 전문대학 중 유일하게 우수상담기관으로 선정됐다. 인천재능대학교 학생상담센터는 2017년 3월부터 2018년 2월까지 1220명에게 2378시간의 상담을, 4133명에게 4328건의 심리검사를 실시했다. 이는 중도탈락 방지로도 이어졌다. 학생상담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의 학적유지율이 비참여학생에 비해 17%나 더 높게 나타났다.

오후 중 상담이 몰릴 것을 고려해 오전 일찍 학생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인천재능대학교 학생상담센터는 이선영 상담사 외에 2명의 외래 상담사와 행정 업무를 보조하는 조교 한 명이 근무하고 있다. 센터를 찾은 이 날은 외래상담사 한 명은 송도캠퍼스에 있고, 다른 한 명은 휴무인 상태였다.

인천재능대학교 학생상담센터 입구에 설치된 심리검사 설명판. 아래는 심리검사를 홍보하기 위한 물품들.
인천재능대학교 학생상담센터 입구에 설치된 심리검사 설명판. 아래는 심리검사를 홍보하기 위한 물품들.

센터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팻말들이었다. 학생들이 편하게 심리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6명 정도가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이 상담사와 마주 앉자, 센터 조교가 마치 카페 직원처럼 메뉴판을 내밀며 음료 주문을 받았다. 여러 커피 메뉴부터 매실차, 홍차, 녹차, 각종 차와 주스까지 메뉴도 카페만큼 다양했다.

“학생들이 카페처럼 편히 있을 수 있도록 하려고 신경을 썼어요. 문턱을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죠. 헤어 세팅기도 빌려주고 있어요. 학생상담센터를 편하게 들어올 수 있는 곳으로 느끼게 하려고요. 상담이나 검사를 받고 싶어도 상담센터에 오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있거든요. 몰라서 못 오는 학생들도 있고요. 그래서 일 년에 두 번 정도 ‘찾아가는 심리검사’를 하기도 해요. 본교 캠퍼스에서는 3일간, 송도캠퍼스에서도 하루 동안 진행합니다. 하다보면 정신건강상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런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상담으로 연결하죠.”

이런 홍보 덕분인지, 수업이 한창 진행될 시간이 지나자 4명의 학생이 단체로 센터를 찾아왔다. 이들은 심리검사를 받고 갔다. 학생들이 언제 올지 모르니 마음 놓고 점심을 먹기도 쉽지 않았다.

“상담 스케줄이 없는 시간이더라도 여유가 있지는 않아요. 학과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주시거나, 갑자기 학생들이 센터를 찾는 경우도 많거든요. 심리검사를 하고 싶다거나, 당일 상담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센터를 비우지 않으려고 해요. 누구라도 꼭 지키려고 하죠. 수업이 없는 점심시간에 오는 경우도 많아요.”

학생들이 심리검사 답안을 작성하고 나니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이 상담사는 학생들과 검사 결과를 해석하기 위한 상담 시간을 잡고 난 뒤에야 점심시간을 맞았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흔히 직장인들이 식사 후 갖는 티타임 없이 그는 업무로 복귀했다.

학과별 심리검사 계획이 적혀 있다.
학과별 심리검사 계획이 적혀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시 수업 시간이 돼 센터 주변이 다시 한산해졌다. 그러나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이번에는 전화벨이 울렸다. 학과별 집단상담 일정을 조율하는 전화부터 이 상담사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는 학과 교수들의 전화 등 여러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은 학기 초라 학과별 집단상담 일정을 잡고 있어요. 학과별로 아이들의 특성이 조금씩 달라서 집단상담을 따로 하고 있죠. 먼저 학과장과 회의를 통해 학년별로 아이들의 특성이 어떤지, 어떤 상담이나 프로그램이 필요한지 의견을 나눠요. 그리고 일정을 잡죠.”

학생상담센터장을 맡은 손장원 교학처장도 교수로서 학생을 지도할 때 센터의 도움을 종종 받는다. 그는 “교수도 상담 쪽에서는 비전문가다. 학생과 이야기하다 보면 전문 상담사의 역할이 필요할 때가 있어 조언도 구하고, 상담센터에 학생을 연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별한 문의나 상담이 없을 때도 센터는 바쁘다. ‘코딩’ 작업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코딩은 학생들의 심리검사 답안지를 분석 프로그램에 입력하는 작업이다. 입력된 내용을 분석하면 학생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다. 분석 결과를 상담을 통해 학생에게 전달해주고, 상황에 따라서는 추가 상담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처음 이 상담사와 마주 앉은 곳은 센터 중앙의 테이블이 아닌 이 상담사의 책상 앞이 됐다. 이야기하던 테이블은 심리검사를 하러 온 학생들에게 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상담센터는 상담실 한 곳과 중앙의 테이블, 이 상담사와 조교의 책상 등이 전부인 소박한 공간이다. 상담이 몰릴 때는 상담 공간이 부족해 회의실, 강의실을 대여하기도 한다. 그나마 학교에서 상담센터에 학교 공간을 우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시설 확충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손장원 센터장은 “분명 학생 상담을 위한 공간 확보는 필요하다. 하지만 예산은 한정적이고 학교 내에 예산이 필요한 곳은 많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그렇지만 상담 시설 확충에 대한 계획은 갖고 있다”고 현실적인 고민을 전했다.

학생상담센터 안의 상담실.
학생상담센터 안의 상담실.

이 상담사의 책상 앞에서 이야기하다 보니 책상 위에 놓인 도표에도 눈이 갔다. 관심을 보이자 이 상담사가 내용을 설명했다. 지난 3년간의 검사 종류별 참여 건수를 통계로 정리한 것이었다. ‘정신건강’ 검사에 대한 참여 그래프는 해가 지날 때마다 길어졌다.

“2017년과 2018년, 그리고 2019년 1학기 검사종류별 참여건수를 보면, 정신건강 검사 쪽으로는 점점 사례가 늘고 있어요. 사례 자체도 훨씬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상담사로서의 역량을 계속 개발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하지만 워낙 업무량이 많다 보니 업무시간 내에 그런 시간을 갖긴 힘들죠. 개인 시간을 내서 자기계발을 해요. 학교에서 1년에 한 번 연수를 보내주기는 하는데 더 많아지면 좋겠죠. 물론 이 정도도 전문대학 중에서는 나은 편이에요.”

상담센터의 운영 시간은 6시까지지만, 상담사의 하루는 끝이 나지 않는다. 저녁 늦게도 상담사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이들이 있어서다.

“사실 이론상으로는 상담자와 피상담자의 거리 유지도 필요하기에 개인 번호를 알려주지 않아야 하고, 또 저의 일상을 생각하면 퇴근 후에는 학생들의 연락을 받지 않는 것도 필요해요. 그렇지만 막상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제가 한번, 두 번이라도 문자보내고 관심 갖고 케어하는 경우에 아이들이 달라져요. 그만큼 상담자가 힘들기는 하지만, 정성을 쏟은 만큼 결과는 나타나더라고요. 저를 ‘학교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있는데, 정말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상담사로서의 일을 더 잘 해내고 싶지만 여건상 역량 개발이 쉽지 않은 상황이나 많은 업무량을 견디면서 누군가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일이 무척 숭고하게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전하자, 이 상담사의 눈이 빨개지고 목소리가 떨렸다.

“여건 자체를 100% 만족하기는 힘들죠. 상담사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직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요. 어떤 경우에는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데도 제가 자리를 지키는 건, 그걸 감당하는 건, 여기 있어야 아이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상담센터의 하루를 지켜보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상담사가 의사보다 위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제대로 살 수 있게 하는 일이 상담사의 일이라는 점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 목숨을 구하는 일까지 상담사가 하는 것도 사실이다.

“저뿐 아니라 외래 상담사도 같은 생각일 거예요. 자살 시도를 하려는 아이가 있지만 오늘 내가 근무하는 시간이나 날이 아니라고 해서 외면하지 않죠. 환경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학생들을 돌보고자 하는 게 상담사가 갖는 마음가짐이에요. 2014년 내담자가 아직도 인사를 와요.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면 그런 보람이 또 없죠.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더라도, 단 한 사람만 진심으로 자신을 믿어주고 관심 가져주면 그 아이는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저는 그런 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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