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울산과학대학교 학술정보운영팀장

어떤 책이 수십 년간 이용한 흔적이 없다면 그것을 도서관에 보존할 가치가 있을까. 대학도서관이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는 책을 보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한 갈래는 장서 보유량 때문이다. 대학의 역사적 상징성을 확보하기 위해 폐기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학도서관 평가 요소인 재학생당 기본 도서 수를 맞추기 위해 폐기를 미루게 된다. 남은 하나는 도서관 나름의 폐기 일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 테다.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이유에서든 폐기를 미룰 수는 있지만 결국 언젠가는 폐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공간의 한계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학도서관은 증가한 책 수에 따른 공간 확보가 어려워지자 도서 반감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오랜 기간 이용 흔적이 없는 도서를 폐기할 수 있도록 1970년대부터 ‘도서폐기 기준’도 만들었다. 폐기는 장서의 유용성과 공간의 활용성을 높이는 수단이다. 이용할 수 없는 훼손(낙서·파손·오손) 도서나 여러 권을 보유한 책은 공간확보를 위해 한 권만 남기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 폐기에 대한 부담이 없다. 문제는 반감기에 들어선 불용도서다. 이들은 폐기하고 나면 보유 장서량과 자산가치까지 감소하므로 법적 장치가 있어도 주저하게 된다. 대학도서관 평가 지표에 장서의 충족 요건만 있고 유용성 평가를 위한 폐기지표가 없는 것도 망설임의 이유가 된다.

얼마 전, U 대학도서관은 장서보관 공간이 부족해 평가에 필요한 장서 수를 고려한 후 3만여 권을 폐기했다. 폐기로 볼 수 없는 국내 도서는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 대부분 영구보존하고 있으니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두 기관이 선별 수집에서 빠뜨린 국내 도서나 특정 외국 도서가 유일하게 U 대학도서관에 있었다면 그 책은 폐기에 신중해야 한다.

‘지식은 반감기가 있어 언젠가는 유효기간이 만료된다. 학문별 반감기는 물리학 13년, 종교·경제학·수학 9년, 심리 및 역사는 7년이다. 도서의 반감기를 알면 도서관은 장서가 쓸모없이 서가의 자리나 차지하는 모습으로 전락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를 알 수 있고, 이에 따라 책의 보존 기간을 판단할 수 있다.’ 하버드 대학 정량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이 쓴 《지식의 반감기》 중에 ‘도서관에서 쫓겨나는 책들’에 수록한 내용이다.

도서의 폐기는 현재의 도서관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책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새로운 공간 할애를 위해 필요(必要)한 조치이지만 후대가 학문을 고증할 때 지식을 단절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악(惡)이 될 수 있다. 자칫 폐기한 도서를 다시 이용하느라 예산을 낭비할 수도 있다. 도서 폐기는 책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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