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대학원 지원사업 둘러싼 정부의 정책-컴퓨터공학과 내부 ‘속사정’
정부 지원 부족, AI 교수 찾기 ‘하늘의 별따기’… 교수 겸직 허용해야
“산업계 원하는 인재 키워달라” 요구에… AI 커리큘럼에 맞는 교수진 구성
어릴 적부터 교육체질 개선, 마중물은 ‘소프트웨어 역량‧프로그래밍 교육’

[한국대학신문 김준환·이현진 기자] 소프트뱅크 신화를 만들어낸 손정의 회장이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인공지능(AI)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 화제가 됐다. “대통령님, 제 메시지는 오로지 AI다.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며 빠르게 다가오는 AI 시대에 선제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시사했다. 

국내 대학가도 AI 바람이 거세다. 이달부터 국내 대학 최초로 AI대학원이 문을 열었다. 고려대, 성균관대, 카이스트 등 3곳이다. 정부는 이들 대학을 필두로 국내 AI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하지만 대학원 개설을 준비하는 대학들이 교원 충원에 난항을 겪으면서 대학원 출범 시기가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 이면에는 대학의 교육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정부의 정책과 AI 전문 커리큘럼을 구성하는 학과 간의 속사정이 숨어 있다. 이달 말 AI대학원 지원사업 대상으로 2개 대학을 추가 선정할 예정인 가운데 본지가 AI대학원 지원사업의 문제점과 해결책 등을 짚어봤다.

■ AI대학원 지원사업, 대학교육 현실 반영 못한다는 지적 제기돼 = 올해 초 1차 AI대학원 지원사업에 고려대, 성균관대, 카이스트 등 3곳이 선정됐다. 문제는 AI대학원 지원사업에 선정됐거나 신청한 대학들의 꺼내기 어려운 속사정이 있다는 점이다. 대학원 학위과정을 운영해야하는데 전공 교수진 구성, 관련학과 개설, 전임교원 확보(7명 이상), 학생정원 확보 등 신청자격 및 참여조건 등이 대학교육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대학 소프트웨어학과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번 정부 과제가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학과 교수들은 딴짓하지 마라’는 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한 컴퓨터공학과에서 인공지능을 하는 교수들을 따로 떼어 이쪽(AI대학원)으로 보냈을 경우 기존 학과의 교수 공백이 생기는 상황이 우려됐다. 실제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서울 소재 주요 대학 몇 곳은 AI대학원 지원사업에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 성균관대, 카이스트 등 3곳의 AI대학원은 기존에 있는 학과를 인정하지 않고 따로 떼어 독립된 과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공학과 내에서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분리돼 가르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자체를 하나의 학과로서 별도로 있을 만한 커리큘럼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 봐야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고려대, 성균관대, 카이스트 등 3곳의 AI대학원을 맡고 있는 주임교수의 전공을 보면 컴퓨터공학과를 전공으로 삼은 교수가 한 명도 없다. 세 대학의 AI주임교수는 △카이스트는 전자과 △성균관대는 로봇 △고려대는 뇌과학을 전공했다. 다만 성균관대는 AI로봇학과와 유사학과가 있어 이들 유사학과를 흡수해 발전했고, 플래그십(flagship) 학과를 만들어 인공지능 연구를 주도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고려대와 카이스트와는 차별점을 보인다. 

AI대학원 지원사업에 신청하지 않았지만 독자적으로 AI학위 과정을 추진하는 모대학 B교수는 “이 사업에 1차로 선정된 대학들을 보면 컴퓨터학과 위주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며 “인공지능만 따로 떼어 가르친다는 점은 말이 안 된다. 인공지능을 하기 위해서는 자료구조, 알고리즘, 컴퓨터랭귀지 등 컴퓨터공학에 필요한 기초와 요소들에 대해 배워야한다”고 설명했다.  

■ AI 선진국에 비해 지원 예산 턱없이 부족, 국내에서 AI 전임교원 찾기 어려워 = 정부 지원이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미국이나 중국 등에 비해 지원 금액이 너무 차이가 나는 실정이다. 유창동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한국인공지능학회장)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거의 조 단위로 투자를 하고 있다. AI대학원 지원사업 규모만 놓고 보면 10년 동안 최대 19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상황이 이러하니 기업의 참여나 후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AI를 가르칠 수 있는 전임교원을 찾는 것도 어려운 과제다. 이웃나라인 중국과 비교하면 국내 상황은 더욱 어렵다. 중국 칭화대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컴퓨터과 교수는 약 150명이고 이중 인공지능 관련 교수만 해도 약 50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에 반해 고려대, 성균관대,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전임교수는 각각 7명, 15명, 8명 수준이다. 이는 그만큼 인공지능 분야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전임교수를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이성환 고려대 AI대학원 주임교수는 “우수한 사람일수록 이미 국내외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대학에 오더라도 그만큼의 대우를 받기 원하는데 학교 교수 연봉은 한계가 있다”며 “고려대는 내년까지 1년 동안 2명을 더 충원할 계획이다, 추가 교원은 특정 전공을 정해놓지는 않고 인공지능 전 분야에서 뽑는다”고 말했다. 

현재 과기정통부는 AI대학원 소속 교수의 겸직을 금지했지만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교수의 겸직도 허용해야 한다고 대학들은 말한다. 유 교수는 “해외의 경우 유수 기업에서 대학 교원을 일정 기간 영입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있다”면서 “먼 거리에서 프로젝트를 주고 결과물을 걷어가는 형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화합을 이루고 몇 년간 기업에서 근무를 하며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산업계 목소리 반영하는 커리큘럼 보완해야 = AI대학원 지원사업 평가지표가 바뀌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의 평가지표는 논문을 많이 쓰면서 스토리텔링에 강한 교수들이 넓게 포진돼 있으면 점수가 높다. 특히 이 사업에 신청하지 않은 대학에서 이 같은 지적이 다수 제기됐다. 현재 평가지표에서는 AI 관련 논문을 많이 쓰는 전임교원을 확보하는 것이 이 사업에 선정되는 데 유리하게 돼 있다. 서강대 C교수는 “현재까지의 인공지능 대학원 지원 사업의 선정 결과를 보면, 해당 사업은 인공지능 관련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커리큘럼 중심 운영을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 산업계가 요구하는 대규모 인력양성보다는 연구성과가 뛰어난 교수중심의 인공지능 융합분야별 연 30명 수준의 인력양성을 목표로 하는 중규모 인력양성 프로그램으로 적합하다”며 “AI대학원 지원 사업의 정책 목표가 융합분야별 중규모 인력양성이라면 같은 방향으로 지속운영을 하면 되지만, 컴퓨터공학 기반으로 대규모 AI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라면, 평가지표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C교수는 산업계에서 원하는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느냐를 고려해 커리큘럼을 짜야하고 이러한 커리큘럼을 잘 가르치는 사람을 전임교원으로 확보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소프트웨어중심대학사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소프트웨어중심대학사업에서는 산업계가 요구하는 커리큘럼을 공학인증 등을 통해 수요자 위주로 정하고, 사업 선정 대학 평가 시 해당 커리큘럼을 잘 운영할 수 있는 교수진의 확보와 과목 운영실적 및 적정 교육 인프라 보유 여부와 어느 정도의 인력을 교육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평가했다”면서 “AI대학원 지원 사업의 주요 목표도 인력 양성이기 때문에 인공지능 관련 산업계가 요구하는 과목 중심으로 공통과목 리스트가 있어야 하고, 평가시에도 이러한 과목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수 확보 여부와 과목 운영 실적에 대한 평가 지표 반영을 크게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근본적 변화 필요… 초중등 대상 소프트웨어 친화적 교육환경 조성 = 김민구 아주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소프트웨어(SW)중심대학사업의 연장선상에서 인공지능을 지원하고 강화해나갈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 영역은 소수 대학원 운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40여 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는 SW중심대학사업의 연장선상에서 인공지능 교육 추진을 유도해 근본적인 교육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학부교육이 먼저 바뀌어야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인공지능이 응용학문인 만큼 공대는 물론 인문‧사회계열 학생들도 인공지능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은 소프트웨어가 중심이고 이게 인공지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4차 산업혁명에 맞춰 교육 제도를 바꾸고 컴퓨터 역량을 기르는 프로그래밍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대학들도 학생들이 소프트웨어 역량과 인공지능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교육 체질로 전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AI전문인력 양성은 교육과 연구에 대한 투자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를 뒷받침하는 산업이 발전하지 않고서는 AI전문인력 양성의 선순환 생태계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AI분야 선진국인 미국과 중국 등에서 AI 교육을 잘 시킬 수 있는 것은 그 사회에서 AI분야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어 이 분야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돼 있어서다. 이는 다시 AI분야에 대한 교육과 연구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AI대학원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10월 중 정부와 산업·학계 관계자들이 모여 AI와 연계된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마련된다”며 “AI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국가 정책의 방향성과 향후 이 사업의 평가체제, 지원방식 등을 비롯해 산업계 목소리를 전반적으로 들어볼 수 있는 소통의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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