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레나 허기타이 지음, 한국여성과총 옮김 《내가 만난 여성 과학자들》

[한국대학신문 신지원 기자] 이 책은 온갖 장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뚜렷한 성취를 보여준 여성 과학자들의 육성을 솔직하게 담아놓은 책이다. 각 여성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 연구에 대한 열정, 과학자로서의 소명, 발견의 기쁨 등을 여과 없이 담았을 뿐 아니라,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시대적 분위기, 학계의 공공연한 성차별, 일과 가정 사이에서의 불균형 등 여성 과학자들이 직면했던 문제도 솔직하게 풀어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 막달레나 허기타이(헝가리 화학자)는 약 15년 동안 4대 대륙 18개국의 유명한 여성 과학자 100여 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해하기 쉽게 여성 과학자들을 크게 세 부류로 구분지어서 소개한다.

첫 번째 그룹은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리타 콘포스와 존 콘포스와 같이 남편과 아내가 공동 연구를 진행한 ‘과학자 부부’들이다. 이들 과학자 부부는 서로를 보완함으로써 뛰어난 연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커플들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과학자 부부들이 공동 연구를 선택했던 것은, 성차별로 인해 당시 여성 과학자들이 단독으로 연구를 진행하기 어려웠던 탓이 크다. 여성을 얕보던 시대적 환경 때문에, 여성 과학자들은 남편의 연구소에서 급여도 없이, 공식 직함도 없이 연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친족등용금지법’이 있어서, 남편이 과학자인 여성 과학자들은 대학에서 직장을 구하는 데 번번이 어려움을 겪었다. 설령 자리를 구한다고 해도 비정규직이었고, 그마저도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남편과 공동 연구를 진행한 여성 과학자들은 “남편 덕분에 성공했다”는 의심을 받는 등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가령 스탠퍼드 대학교의 교수인 패멀라 맷슨(생태학자)은 “그 여자가 해온 일은 남편이 다 해준 거야”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고, 남편 칼 코리와 공동 연구를 진행했던 거티 코리(생화학자)는 자신의 보고서가 록펠러 재단의 누군가에 의해 “코리 부부”가 “코리 박사”로 “그들”이 “그”로 수정되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두 번째 그룹은 마리아 괴퍼트 메이어(물리학자), 거트루드 B. 엘리언(화학자, 약리학자), 로절린 얠로(의학물리학) 같은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자신의 분야에서 확고한 족적을 남긴 여성 과학자들이다. 노벨상을 받을 만했지만 수상자 명단에서 빠진 조슬린 벨 버넬(천문학자), 선천성 기형을 유발하는 탈리도마이드의 위험으로부터 신생아 수천 명을 구한 프랜시스 올덤 캘시(약리학자), 인공위성 추진기(히드라진 추진기)를 개발한 이본느 브릴(우주항공공학자) 등 연구 업적이 뛰어난 여성 과학자들 다수를 소개한다. 저자는 여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인도, 터키의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도 추가했는데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그 외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도 살짝 엿볼 수 있다.

세 번째 그룹은 대학 총장이나 대규모 연구기관의 책임자 등 고위직에 오른 여성 과학자들이다. 저자는 프린스턴 대학교 최초의 여성 총장이었던 셜리 틸먼(분자생물학자), 찰스 왕세자의 뒤를 이어 여성 최초로 ‘수학 및 응용수학 연구원’ 원장이 되었던 캐슬린 올러렌쇼(수학자), 스웨덴 왕립과학원 회장을 맡았던 케르스틴 프레드가(천문학자) 등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수장을 맡은 여성 과학자들과 그들의 활동을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계에서 고위직을 맡은 여성 과학자는 여전히 그 수가 턱없이 적지만, 최근 들어 점점 여성 과학자들의 고위직 진출이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는 여성이 고위직 진출을 막았던 ‘유리 천장’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여성 과학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이들 여성 과학자들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남성 과학자보다 낮은 급여로 좁은 실험실에서 일했고, 번번이 승진에서 누락됐으며, 아예 정규직 채용에서 배제되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는 이렇게 고백하기도 했다. “나는 일을 제일 많이 했고 논문도 주로 내가 썼지만, 항상 남자 연구원 이름이 제1저자로 올라갔어요.” 핵화학자 달렌 호프먼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미 약속된 일자리였는데도 채용되지 못하는 장벽에 부딪혔다. “인사과에 전화를 했더니 이렇게 말하던데요. ‘미안하지만 우리는 그 부서에 여성을 채용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노골적인 성차별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이 책에서 저자는 특히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여성 과학자들의 난관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는데, 이는 그만큼 ‘직장 대 가정’ 문제가 많은 여성 과학자들을 괴롭히는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성 화학자인 저자 또한 ‘직장 대 가정’이라는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에는 연구 경력이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성 과학자들 중 상당수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밀드러드 드레셀하우스(물리학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8시에 직장에 도착하려면 그 전에 모든 것을 다 해내야 하는데, 정말 힘든 일이었어요.” 이본느 브릴(우주항공공학자)의 처지도 마찬가지. “하루 24시간 동안 집에서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도전 그 자체였어요.”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것. 더군다나 남편이 가정 일을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기거나 사정상 보모를 고용하기 힘든 경우는 과학자로서의 경력을 유지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밀드러드 콘의 남편은 아내가 도와달라고 할 때마다 “사람을 써”라고 말하면서 전혀 도와주지 않았고, 에바 클라인의 남편은 집안일을 하찮게 여겨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내가 ‘가정주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에바를 더욱 힘들게 했다.

아마도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뽑자면 다음과 같은 질문일 것이다. “인간은 지적인 호기심을 가진 존재다. 그런데 이 같은 지적 모험이 왜 남성 과학자들에 비해 여성 과학자들에게는 더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는가?” 어찌 보면 이 책은 이러한 질문을 붙들고 있는 저자가 여성 과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엮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여성 과학자들을 위대한 인물로 이상화하기보다는 그녀들에게 한계로 작용했던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묘사하는 데 더 공을 들인다.

이 책은 각각의 여성 과학자들이 만났던 온갖 장벽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 온갖 장벽을 허물고자 노력했던 투쟁의 기록이다. 그러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저자가 희망하는 것은 “여성이라서 더 힘든 현실”이 바뀌는 것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면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글을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앞서 언급한 목적(롤 모델 제시)에 다소나마 이바지하기 위하여 이 책을 바친다.” 이 책은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해나무 / 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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