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배상기 겸임교수
배상기 겸임교수

요즘은 길을 잃을 일이 거의 없다. 걷든지 차를 타든지 휴대폰으로 인터넷의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습관 때문에 내비게이션이 인도하는 길로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길과 전혀 다른 길인 경우도 많다. 최근에도 그런 경험을 했다.

보통 대학원에서 수업을 마치면 밤 9시로 좀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은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이 인도하는 대로 부천 시내 도로를 통과한 후 서울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집에 왔었다. 그 길은 약 57㎞의 거리에 외곽순환도로에서 시속 100㎞로 달려야 1시간 이내에 집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다 좀 더 안전한 운행을 하고 싶어서 다른 길을 검색했다. 부천 시내 도로와 서부간선도로, 내부순환도로를 거쳐서 집으로 오는 경로가 검색됐다.

그날은 서부간선도로와 내부순환도로를 이용해 귀가하기로 했다. 필자의 자동차는 구매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내비게이션은 자동으로 업데이트됐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서는 3가지 경로를 보여 주었다. 필자가 원하는 경로는 없었지만 가장 비슷한 경로를 선택했다. 내비게이션은 교통 상황에 따라 경로를 다르게 바꾸기도 하기에, 가다 보면 필자가 원하는 길로 안내해 줄 것이란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대학교 주차장을 빠져나와 교문을 지나면서 내 생각과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달랐다. 내 뜻대로 길을 가다 보니 내비게이션이 조용해졌다. 그러다 또 잘못 가고 있다고 야단이다. 그래도 모른 척 그대로 지나쳤다. 그랬더니 다시 조용해지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경로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서부간선도로에 진입하고자 할 때 시끄러워졌다. 내비게이션은 계속 직진, 시내를 관통해 한강을 건너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서부간선도로로 진입해 성산대교를 건너서 내부순환도로로 진입할 계획이었으므로 서부간선도로로 진입했다. 내비게이션이 난리다. 바로 간선도로에서 벗어나 시내로 빠지라는 것이다. 무시하고 운행했지만, 진출로가 나올 때마다 빠지라고 난리였다. 그것이 최적의 길이고 다른 길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길처럼 매우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런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하고 성산대교를 건넜다. 이번에는 내부순환도로로 안내해 줄 것을 기대하였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은 시내를 관통하는 도로로 안내하면서 다른 길로 진입하지 말라는 안내가 아닌 친절한 경고까지 덧붙였다.

이런 내비게이션은 우리 부모와 같다는 생각도 했다. 자녀는 성장하는 동안은 무심코 부모의 안내에 따라간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가고자 한다. 이때 부모는 그 뜻을 존중하기도 하지만, 부모가 이미 배웠던 지식과 경험, 생각에 따라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다 자녀가 가고자 하는 길을 왜곡하거나 자녀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갈등으로 인해 자녀는 자신의 길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과연 부모가 가진 정보력은 자녀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안내할 만큼 정확한 것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부모들은 공부해야 한다. 자녀를 안내하기 위한 공부를 취미나 전공처럼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직장생활이 너무 바쁘거나, 자기 일에 얽매어서 자녀의 미래를 위한 연구를 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부모들이 많다. 그분들은 내 차의 내비게이션처럼 자녀에게 안내하거나 강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자녀를 가진 부모는 스스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시대의 흐름도 매우 빠르고, 자녀들이 원하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도 부모가 모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가장 정확한 정보를 주는 내비게이션이 아니면 효용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자녀의 미래 경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안내하려고 한다면, 부모에 대한 자녀의 신뢰는 낮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과거의 경험과 지식에 한정해 자녀가 가는 길이 잘못됐다고 외치기 이전에,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공부하고, 자녀가 선택한 길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도우려는 정확한 부모 내비게이션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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