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내 30% 영어강의…세계인 양성

오는 2005년 개교 1백주년을 맞는 고려대가 신임 어윤대 총장(58)을 새 사령탑으로 ‘민족고대’에서 ‘세계의 대학’으로 업그레이드를 선언하고 나섰다. 어 총장은 “고려대를 오는 2010년까지 세계 1백대 대학으로 진입시키겠다”면서 전면적인 시스템 개혁을 주창하고, 국제화와 대학원 및 서창캠퍼스 육성 방안 등을 제시했다. 오랜 지기인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어윤대(魚允大) 총장의 이름을 풀어 ‘글로벌 화된 큰 물고기’라고 지칭한데서 알 수 있듯 ‘국제적 감각을 갖춘 CEO’로 불리는 어 총장이 펼칠 개혁 청사진을 들어봤다. <편집자> 새 건물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스템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는 어 총장은 전통적인 하드웨어 개념에서 탈피한 소프트웨어 개혁이 중요하다고 포문을 열었다. 국제대학의 반열에 올라서려면 개혁의 목표를 국제적 기준에 맞춰 외국 대학과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 어 총장이 첫 번째로 내세운 것은 ‘국제화’이다. “세계 1백대 대학이라면 외국에서 교수와 학생이 와야 하는데 교육자체가 영어로 안 된다면 국제적인 대학이 될 수 없습니다. 삼성전자에서 만든 제품이 한국에서만 팔리면 세계적 기업이 안 되죠. 임기동안 영어 강의 프로그램을 강화해 고려대 강의중 30% 이상은 영어로 진행되도록 할 겁니다.” 국제화만큼은 확실하게 하겠다는 어 총장은 ‘캠퍼스 영어 공용화’ 시행을 위해 우선 이번 2학기 교수 충원에서 ‘영어(외국어)로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이란 자격조건을 신설했다. “개혁은 항상 변화에 대한 거부를 동반하기에 구성원의 반발을 줄이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이번에 새로 오시는 교수들부터 외국어 강의가 가능한 분을 선발하려고 합니다. 1년에 60명씩 뽑으면 4년이면 2백40명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교수들도 거부감이 없죠. 학과 특성상 영어가 필요 없는 국문학과 등 예외는 인정하면서 외국어 강의문화를 정착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국제화와 더불어 어 총장은 21세기 지식사회를 견인할 ‘지식’을 창출하는 대학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자연과학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인문교육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캠퍼스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 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지고, 교양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어 총장은 학생들이 일정 수준의 고전을 독파해야 졸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지난 21일 열린 전체교수세미나에서 “총장이 결재하던 많은 부분들을 각 단과대학 학장에게 위양하겠다”며 학교운영의 분권화를 역설한 어 총장은 각 단과대학별로 연구업적이나 우수학생 유치 등 목표를 설정하도록 주문했다. 경영학의 ‘목표관리제(Management By Objectives)’를 대학운영에 도입한 그는 학장들에게 ‘권한과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계획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서창캠퍼스의 경우 서울에서 통학하는 학생이 30% 이상에 이르는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마음은 서울에 있고 몸만 학교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어학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는 리빙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는 것. 무엇보다도 국제금융센터 초대소장과 한국금융학회장을 지냈고 현재 공적자금관리위원과 한국경영학회장 등을 맡고 있는 그의 이력이 말해 주듯 대학 안팎에서는 기금 모금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어 총장은 “세계 1백대 대학으로 가려면 투자가 많아져야 한다. 미국은 개인들의 기부가 80%에 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5% 정도로, 결국은 기업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면서 “지금은 기업이 IMF 때보다 어려운 상황이어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재원 확보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돈을 받을 때는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동문에게는 발전된 학교를 보여주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비전을 보여줘야 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요구하는 인재를 배출할 때 기부를 하게 되죠. 기업이 원하는 프로그램, 저는 ‘수요 만족형 교육’이란 말을 쓰는데, 기업의 요구를 찾아 고객만족 교과목을 만들려고 합니다.” 대학 발전을 위해 재임기간중 3천억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어 총장은 발전기금 목표를 묻는 질문에 “금액을 얘기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면서 한발 물러선다. 다만 “주식이 빠질 때는 상대적으로 주가가 적게 빠지는 게 잘하는 것이고 주식이 오를 때는 더 많이 올라야 한다”는 표현으로 자신감을 피력했다. 국제 경쟁력을 갖춘 대학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한 어 총장은 기여입학제 도입에 대해서도 찬성 의사를 분명해 했다. “외국의 1백대 대학은 1년 예산이 3조원에 이릅니다. 국내 대학과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서는 기여입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은 학생선발 때 졸업생 자녀에게 특혜를 주는 유산(Legacy)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대학교육만은 기회균등이 돼야 한다는 인식이 높고 제도운영의 투명성 문제로 기여입학에 대한 반대가 많아 제도가 정착되는데는 굉장히 힘들 거라고 봅니다. 다른 대학과 공조해 제도의 필요성과 투명한 장치를 만드는데 힘을 모으려고 합니다.” 이번 학기에 9명의 여교수를 채용해 화제가 된 고려대는 남녀차별·학교 차별없이 우수 교수를 임용하는데 적극 나설 작정이다. 경영대학의 경우 처음으로 여교수 2명을 채용했는데, 여기에는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국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어 총장의 ‘여성인재 활용론’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어 총장은 남성보다 여성이 유전인자가 더 좋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라면서 현실적으로도 고려대생 중 30% 가량이 여학생인 만큼 학생지도를 위해서도 여교수 채용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격식을 따지지 않는 스타일로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그는 총장 취임 한달이 채 안돼 체력이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토로할 정도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내고 있다. “지난 1백년간 고려대를 대표해온 ‘민족'이라는 타이틀을 이젠 ‘세계’로 바꾸고 싶습니다. 고려대 출신이 국내 기업뿐 아니라 제너럴모터스나 소니 등 어디를 가든 좋은 평판을 받는, 세계에 공헌하는 대학을 만드는 게 꿈 입니다.” 대담=이정환 편집국장, 정리=조양희 기자, 사진=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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