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선 안동과학대학교 교무처장

이해선 안동과학대학교 교무처장
이해선 안동과학대학교 교무처장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공영형 사립대학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막대한 예산이 드는 문제이니 경제부처에서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왜 사학에 국가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대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사학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한 몫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교육의 공영화는 선진국의 공통된 정책이다.

대학의 입학자원 감소로 인해 많은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2020년은 매우 의미 있는 해가 될 것 같다. 대학정원에 비해 입학자원의 수가 적어지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현행 입학 정원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2024년에는 약 12만4000명의 입학생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하든 한꺼번에 망하든 지방대 폐교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지난 8월 교육부가 내놓은 대학혁신지원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더 이상 대학정원 정책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대학의 자율적 판단에 맡긴다지만 재정지원의 가장 큰 지표로서 신입생과 재학생의 충원율을 보겠다 하니 지방대학의 대규모 미충원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이와 반비례해 고등교육의 수도권 집중화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역대학 특히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에 위치한 지역대학들은 교육․문화․연구 인프라 구축 자체가 시장에 의해 공급될 수 없는 일종의 공공재적 성격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지역균형이라는 국가 목표는 지역 경제 발전에서 시작되고, 지역발전에서 지역 대학이 가지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소득수준에 따라 부의 대물림과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전문대학은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계층의 자녀들이 대거 입학하고 있다. 따라서 직업교육은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계층의 아이들, 문화적으로 열악한 지역의 청년들에게 직업교육을 통한 사회적 재활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대학은 정원을 감축해서라도 살아남아서 지역사회에 필요한 기술인력을 길러내야 하고, 대학의 시설은 지역사회 주민의 문화적 기반이 돼야 하며, 학생은 지역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활력소가 돼야 한다. 대학의 폐교로 인해 지역의 직업교육 기반과 경제적·문화적 몰락을 막기 위해서는 공영형 전문대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 방안으로 전문대학을 공영형으로 지원하고 지역의 평생직업교육기관으로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다. 학령인구 부족으로 인해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학과를 폐지하고, 대학의 특성화 계열이나 학과를 중심으로 정원을 줄임으로써, 대학의 존립을 유지하고, 대학의 특성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입학정원 1000명인 대학의 경우, 대학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500명만 유지하고, 입학정원 감축분에 대해 운영비를 지원받는 방식이다. 정원 감축과 폐과로 인해 생겨나는 인적, 물적 자원은 지역사회의 평생직업교육 기능을 수행하도록 유도하면 된다. 산업기반이 있는 지역은 주로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 고용과 연계된 직업교육을 제공하고, 산업기반이 약한 지역은 고용과 복지가 연계된 평생학습을 지향할 수 있다. 성인을 위한 재취업과정을 운영하거나, 외국인 근로자의 기능 및 기술교육, 언어교육, 문화교육을 할 수도 있고, 다문화 가정의 언어교육, 직업교육, 문화교육을 담당할 수도 있다.

대학이 망하는 것이 뭐 대수인가 하는 여론도 있다. 또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이 지나치게 높다는 견해도 있다.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는 스위스의 낮은 대학진학률(1996년 16%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1960년대에 이미 27%를 넘었고, 2000년대에는 45%에 이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과 최저수준의 청년실업률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맹점이 있다. 스위스는 의무교육을 마치는 중등교육 이후에 약 80%의 학생들이 직업교육을 받고 있으며, 대학진학률은 매우 낮은 반면, 전 생애 동안의 대학교육 이수율은 70%가 넘는다. 부연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높지 않지만, 사회생활을 하다가 다시 직업교육을 받기 위해 대학교육을 받는 사람은 압도적으로 높다는 뜻이다. 사족이지만 학비는 연간 100만원도 안된다.

스위스의 높은 취업률과 경쟁력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직업교육에 대한 국민의 의식과 국가의 정책을 본받아야 할 시점이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의 큰 변화 물결을 잘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질 높은 직업교육 체제를 확보해야 하고, 정부는 전문대학이 평생직업교육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지난날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직업교육을 담당하던 단기대학과 전수학교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일본의 장기불황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음을 유념하기를 당부해 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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