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명지전문대학 교수

필리핀에는 많은 쓰레기 마을이 있다. 자국의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쓰레기가 모인 쓰레기 마을도 있고 외국에서 쓰레기를 들여 와 재처리를 하는 쓰레기 마을이 있다. 어떤 형태이든 쓰레기가 쌓인 곳은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합하다. 이런 쓰레기 마을은 악취와 배수 문제라는 공통점이 존재하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거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레기가 쌓인 곳 주변에는 쓰레기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그곳에 쓰레기 마을을 이룬다. 마닐라에도 쓰레기 마을이 몇 군데 있다. 쓰레기 마을로 유명한 톤도, 바공실랑 등 외부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필리핀 쓰레기 마을이 다른 곳에 비해 더 열악한 이유 중 하나는 ‘우기’가 있는 기후적인 특징 때문이다. 우기에 내리는 비는 쓰레기를 썩게 하고 그 침출수를 흘려 보내는데, 쓰레기 마을에는 대체적으로 배수 시설이 부족해 냄새가 많이 난다. 물론 악취와 함께 전염병도 많다.

2019년 여름에 방문한 필리핀 쓰레기 마을에서도 여느 다른 쓰레기 마을과 다르지 않게 열악하고 좁은 주거환경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쓰레기 마을에서는 외지인이 들어가면 경계의 눈초리와 함께 외지인은 범죄의 대상이 된다.

방문 첫날 잔뜩 긴장을 하고 쓰레기 마을에 들어갔는데 주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외지인을 맞이한다. 경계의 눈초리도 없고 오히려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한다. 예상치 못한 일에 방문팀은 의아해 했다. 좁은 미로 같은 길을 지나야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길을 잃은 사람을 찾아 주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한국인은 낯설지 않은 사람처럼 대해졌다. 케이팝(k-pop)을 같이 부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말이 조금 다른 한국의 어느 동네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무엇이 이렇게 사람들을 변하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 마을의 모습이었다. 이곳을 변화시킨 것은 10여 년 전 그 마을에 들어간 한 한국인 선교사 부부였다고 한다.

원래 이곳 사람들은 삶에 지쳐 술과 도박으로 살아가기 일쑤였다. 그 선교사 부부는 한국의 지인들에게 후원을 받아 작은 쪽방을 개조하고 나무 집을 벽돌집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렇게 삶의 환경이 개선되면서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도 변화가 찾아 왔단다. 아이들이 집을 좋아하고, 좋아진 집을 보고 웃고, 아이들의 웃음에 아빠들도 집에 자주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삶의 환경의 일부가 개선된 것이 가정을 변화시키고 마을을 변화시킨 것이다.

마을에는 아직도 나무집, 양철로 지은 쪽방촌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점차 벽돌집이 늘어나고 있다. 한 집에 여러 가정이 거주하는 형태에서 한 집에 한 가정이 거주하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집이 변하는 것 만큼 가정도 안정화되고 변하는 것이다.

집을 지어 주는 일은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좋은 선물일 수 있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 주는 일은 행복을 공유하는 것과 같다. 집을 지어 주며 행복을 공유하는 것은 나에게 준 것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NGO 단체와 종교기관에서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집을 지어 주는 일에 대학들이 동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십시일반 작은 정성을 모으고 젊은 힘을 보태면 충분히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대학을 중심으로 집 지어 주기 운동을 벌이는 것은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는 좋은 운동이 될 것 같아 제안해 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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