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기 인천대 법학부 교수 (대한법학교수회장)

이번 학기 나는 전공과목 3강좌를 맡고 있는데 19학번 신입생을 전공필수과목인 ‘형법총론’ 시간에 처음 만나게 됐다. 첫 강의를 과목 안내 형식으로 진행한 날 밀레니엄 세대인 2000년대 출생 제자들을 만나 기쁜 마음이 매우 컸지만 나는 첫인사로 ‘사과의 말’을 전했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소중한 제자들에게 “공정하고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는 정의로운 나라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아직도 어린 신입생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 진심 어린 사과에 잔잔한 감동을 그 눈빛으로 전해 줬다.

올해는 내가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가르침의 길에 나선지 만 30년이 되는 해이다. 이번 학기가 61번째 맞이하는 학기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나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제자들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가르쳤는가’ 또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 논문이 얼마나 사법개혁에 반영됐는가, 또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위해 공익활동과 봉사를 얼마나 했는가를 되새겨 본다. 참으로 법학교수로서 이 사회에 법 이념의 실현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법학을 가르치는 자로서 법을 준수했는지 자문자답해 본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조국 사태’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있다. 현 정부는 ‘최순실 사태’로 인한 국정농단 사건에 분노한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탄생했다. 헌정사에서 현직 대통령이 탄핵돼 임기를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들어선 현 정부는 ‘적폐청산’과 ‘공정사회’를 2대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과연 국민들이 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먼저 지난 정권의 적폐를 청산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현 정권에서 발생한 ‘새로운 형태의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모든 정권에 ‘권력형 비리’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곧 청와대와 정부 여당에 대해 검찰권을 엄정하게 행사해 달라고 지시했다. 검찰총장은 이를 받들고 ‘조국 사태’에 관해서도 지난 정권의 ‘최순실·정유라 사태’와 동일한 잣대로 수사 개시를 결정하고 특수부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적절하게 실행되고 있는 검찰수사가 자신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과거 적폐청산 수사를 잘했다고 인정해 임명한 검찰총장과 특수부 검사들에게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검찰의 개혁을 방해하고 검찰수사를 방해하는 처사이다. 과거 정권에서 현 정권으로 변경됐음에도 검찰은 일관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격려하고 칭찬해야 할 일이다. 검찰은 이미 개혁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정부의 ‘정유라 사태’를 거울삼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 말을 듣고 큰 기대에 부풀었던 국민들은 지금 그 약속을 믿지 않게 됐다. 가장 큰 문제는 인사문제다. ‘인사는 만사다’라는 격언은 인사가 전부일만큼 제일 중요하다는 뜻이다. 현 정권의 고위공직자 인사, 특히 국무위원인 장관 인사가 국민들 눈높이에서 볼 때 매우 부적절하다고 본다. 현 정권과 궤도를 같이하는 과거 진보정권의 예를 들어 보자. 김대중 정부는 이른바 DJP 연합 정권이면서도 영호남 출신을 망라한 탕평인사를 실행해 국정목표로 삼은 국민대통합의 정신을 실천했었다. 또 노무현 정부도 인사에 관해 늘 국민의 뜻을 살피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곧 두 정부 모두 예외 없이 국민의 여론을 존중해 불법이 아니더라도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결정한 인사를 여러 번 철회했던 것이다.

처음 ‘조국 사태’를 접하고 말문이 막히고 같은 전공의 법학교수로서 자괴감이 들었다. 여기서 나는 이 사태의 주인공들을 검찰수사가 종결돼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정죄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법 앞에 모두 평등하기에 범죄로 인정된다면 처벌을 면할 수 없다. 여기서 나는 이 사태를 교훈 삼아 미래지향적으로 구체적인 조치와 효과적인 대책을 실시할 것을 권고하고자 한다. 국민들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진행중인 검찰 수사와 추후 법원 재판을 통해 명확히 규명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관계와 정황증거에 의하면 중대한 범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 사태는 크게 ‘사립학교법인의 비리’ ‘사모펀드를 통한 불법 재산증식’ 또 ‘대학교수의 부정입학 비리 의혹’으로 요약될 수 있다. 결국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전국의 사립학교법인은 이 사태와 유사한 방법으로 법인을 운영했는가를 자체 감사해야 할 것이다. 또 이 사태에 즈음해 감사원과 교육부는 특별감사를 실행해야 한다. 법인 이사회의 이사와 임직원 구성원에 가족 등 친인척이 포함됐는가를 살펴 보고 이사회의 운영과 재무회계 감사를 실시해 사학비리의 싹을 도려내야 한다. 또 이 사태와 관련된 많은 대학(원)들에 대해서도 공사립을 불문하고 대대적인 감사를 예외없이 실시해야 한다.

다음 전국의 대학교수들은 이 사태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내 자식들에게 부당한 방법으로 ‘부와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을 실제로 시도했는가 또 그 결과를 불법으로 얻었는가를 묻고 답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시도와 결과 달성이 가능하도록 만든 ‘대학입시 수시전형’과 ‘학생생활기록부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특혜가 없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전통적인 공개경쟁시험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실제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2013-2019학년도 서울 주요 8개 대학 등록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8년간 6만 명이 넘는 인원이 무시험 전형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서류 심사와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불공정한 것이며, 객관적 성적을 도출하는 시험이 필수적이다. 전국의 모든 대학(원)은 지난 10년간 그 제출된 서류의 진정성 여부와 사실관계 일치 여부를 검증하는 절차를 실시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 교육부는 특히 대학교수의 자녀 입학실태를 신속하게 전수조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부는 지금 의대교수의 자녀들이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활용한 의학논문 저자 등록의 불법성에 관한 조사를 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말고 2005년도 이후 (치)의(법)학교수 자녀의 (치)의(법)학전문대학원 입학 실태와 2009년도 이후 법(의·치의)학교수 자녀의 법(의·치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실태를 감사해야 한다. 그 제출된 서류의 진정성 여부와 사실관계 일치 여부를 검증하는 절차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지금 ‘조국 사태’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지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에 분노한 국민들이 또다시 광화문에 빼곡하게 모여 “공정하고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는 정의로운 나라”를 외치고 있다. 학생들은 우리들에게 진정 떳떳한 교수인가 물어보고 있다. 과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는가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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