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희 유한대학교 사업통합관리본부 팀장

정원희 유한대학교 사업통합관리본부 팀장
정원희 유한대학교 사업통합관리본부 팀장

이번 대학통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 부모님 세대를 글쓴이로 생각하며, 그 당시 상황으로 글을 써 보았으니 그 시대를 생각하며 읽기 바란다.

조간신문을 보다 말고 문득 20여 년 전 대학졸업반 시절 모회사에 취직시험을 보던 일이 떠올랐다. 근 6개월을 끌던 취직시험에 낙방하고 몹시도 실망하던 나를 위로해 주시던,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어머님의 모습을 생각한다. 당신도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더욱이 아버지께서 그 회사는 '족벌회사'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어머님은 아버님과 당신을 몹시도 원망하며 하마터면 부부싸움까지 할 뻔했다.

몇 달 전에 국민학교 4학년인 딸이 주산을 배운다고 해 집 근처에 있는 주산학원에 등록을 하려고 새벽 5시에 나가 줄을 선 적이 있었다. 작년에도 지원자가 많아 등록을 못 했고 올해도 매달 등록날이면 새벽에 나가 줄을 섰어도 결원이 몇 명 되지 않아 등록대기자 번호만 받고 돌아왔다. 어떤 부모들은 등록 전날 밤부터 침구를 준비해 밤을 지샜다. 그래도 정원제인 주산반에 등록하는 경우는 한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무더운 8월에 우리 딸을 등록시켰다. 그렇다고 전날 밤부터 줄을 선 것도 아니고, 새벽에 나간 것도 아니었다. 나와 함께 새벽에 운동을 하는 회원 중 한 사람을 통해 아주 손쉽게 등록을 했던 것이다. 집사람과 딸은 대학입시에 합격한 것보다 더 좋아했다.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소위 연줄을 통해 등록을 했는데도 누구 하나 항의나 분개는커녕 연줄로 손쉽게 등록을 해 얼마나 좋으냐고 축하(?)해 주고 다음에 자기 아이들의 등록을 부탁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한 설문조사기관에서 1988명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83.2%의 응답자가 출세의 조건으로 ‘연줄 및 배경’을 꼽았다고 한다. 물론 취직이나 승진의 기준이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혈연, 학연, 지연 등의 연줄(또는 빽 : Back ground)에 따라 좌우된다는 뜻이리라. 과거 우리 조상들의 일부도 좋은 줄을 찾아서 뇌물을 바쳤고 일제강점기에서도 친일의 앞잡이가 됐으며 현재의 많은 사람들도 좀 더 든든하고 굵직한 줄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직장마다 향우회, 산악회, 테니스회 등 줄을 얽기에 바쁘고 행여 줄이 끊어질세라 천금 같은 시간을 쪼개어 각종 모임에 나가는 것이 현대인의 생활이 아닐는지. 부유층이나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그 줄은 더욱 견고하고 이를 더 견고히 하기 위해 결혼을 정략적으로 성사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음을 우리는 보아 왔다. 대부분의 외판원은 각종 연줄을 따라 영업을 하고 그 줄 때문에 때로는 필요치 않은 물건을 사야 할 때도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연줄에 의한 사회는 때로는 폐쇄적인 소집단을 형성하고 그 소집단의 일원이 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줄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그래서 폐쇄적인 소집단의 일원이 되면 소집단만을 위해 행동하며 이 행동은 자칫 이기주의적이며 다른 집단과의 파당경쟁으로 번져 사회는 더욱 혼란에 빠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제 몇 달 후면 사회로 진출해야 하는 그대들은 어떤 줄을 따라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줄이 아니라 독자적 능력만으로 경쟁하는 참다운 사회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힘을 길러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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