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이제는 어떤 학교에 다니느냐보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느냐가 더욱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 간 연계도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에서는 어떤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가. 고등학교 현장에서 바라본 입시는 어떤 방향인가. 또한 대학과 어떤 방향의 연계를 필요로 하는가. 본지가 이 궁금증에 대해 고등학교 교장을 만나 직접 들어 본다.<편집자 주>

서울특별시 관악구에 위치한 미림여자고등학교(교장 주석훈)는 1979년 ‘인재대본 육영보국(人材大本 育英報國)’의 기치 아래 개교해 올해로 개교 40주년을 맞았다. 글로벌 여성 리더 양성의 산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6년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한 미림여고는 이를 기점으로 모든 학교의 교육활동이 학생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교육과정부터 수업, 평가, 교육환경까지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했다. 특히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한 학교들의 일반고 전환이 사회적 이슈가 됐던 최근, 미림여고의 혁신은 일반고 전환의 성공 사례로 집중 조명되기도 했다.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미림여고의 인재상과 교육목표는.
“기존의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남의 것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지고 자기주도적으로 많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협업하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선도적으로 추구하는 ‘퍼스트 무버’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미래 인재로서의 역량을 갖춘 학생을 길러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교육활동 전반에 걸쳐 학생 주도성을 강화해, 학생 스스로 지식을 탐구하고 심화시켜 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하고 있다. 미래 사회 구성원으로서 협력하고 갈등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공동체 의식과 의사소통 역량 함양에도 노력하고 있다.”

-학생 주도적 교육 활동이란.
“교과에서는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에 따른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해 주고 있다. 모든 교과에 학생 참여형 수업 모델을 적용한 덕분에,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관심 분야를 발견하고 진로를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각종 교내행사 역시 학생 주도로 운영한다. 입학식과 졸업식, 체육대회, 동아리 활동 발표회, 전체조회, 학생자치법정, 한중학생포럼 등에서 학생회 주도로 TF 팀을 구성해 기획‧운영한다. 특히 전체조회나 학급 자치 활동은 요식적인 행사에서 벗어나 주제가 있는 학생 주도 행사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조회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외국어로 학생들이 직접 진행한다. ‘나의 생각 발표대회’ ‘미림논단’ 등의 코너를 운영한다. 학급 자치활동은 사회적 이슈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주제 토론의 시간이다. 학교 운영에 관해 실질적인 의견을 나누고 건의해 학생 스스로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는 장이 되기도 한다. 문‧예‧체 활동에서도 그렇다. 미술실 앞을 갤러리로 조성하고 원하는 학생은 누구나 상시로 작품 전시를 가능하게 해, 매해마다 미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들로 개인전을 열기도 한다. 축구, 킨볼 등 ‘토요 스포츠클럽’에도 학생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기르고 있다.”

-대학과의 연계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나.
“서울시-고등학교-대학교가 협력해 진행하는 ‘고교-대학 연계 지역인재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모의 UN동아리’에 전문가를 초빙하거나 ‘정치와 법’ 수업에 현직 변호사를 초청하고, 음악 수업에 악기 강사를 초빙해 ‘1인 1악기’ 프로그램을 하는 등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해 인근의 서울대학교 교수님들을 초청해 인문학 및 빅데이터 이해, 세계 각 지역의 이해, 생명과학전공 실험 및 유전공학 개론, 기초생화학 등 대학의 전공별 개론 수준의 특강을 제공하고 있다.”

-고교와 (전문)대학 간 연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고교-대학 연계 지역인재 육성사업을 진행할 때 효율성 차원에서 지역의 1개 대학만 연계해 대학의 인적자원을 활용하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각 분야마다 전문가가 다양한 대학에 분산돼 분포할 수 있으며 시간적인 여건이 서로 맞지 않아 강사 섭외가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예산의 사용 권한을 대학이 아닌 고등학교로 이관해 준다면 다양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위한 전문가를 초빙해 좀 더 수월하게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면.
“미림여고의 교육과정은 학생 선택 중심이다.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관심, 흥미에 맞춰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 수강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다. 일반교과부터 전문교과까지 학생이 자신의 관심과 학업수준에 맞춰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할 수 있도록 ‘학기 집중이수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16학년도 입학생부터 3개년간 약 70개 이상의 교과가 학생 선택에 의해 개설돼 운영되고 있다. 우리 학교 교육활동의 핵심은 학생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학습해 어느 정도의 성취를 거두었는가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교과에서 학생 참여 중심의 토론, 협력, 발표 수업 등으로 수업 방법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정기고사로 학생의 지식수준을 평가하는 결과 중심의 평가에서 학생이 지식을 알아가는 과정과 심화·확장시켜 내면화시키는 정도를 평가하는 과정 중심의 평가로 변화하고 있다. 영어과의 경우 1, 2학년 과정 영어과 수업 4시간 중 2시간을 활용해 Academic Writing반, Book-review Podcast 제작반, TED 영상토론반, 작품 감상과 스피치반 등의 테마별 활동을 학기별로 선택해 실용적이며 깊이 있는 영어교육이 진행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재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과학과의 경우 학생 참여형 과학수업 선도학교 운영을 통해 수업 방법의 개선, 학생 참여 중심의 다양한 수업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지난 8월 23일 미림여고 소공연장에서 열린 자율동아리 심포지엄 모습. (사진=미림여고 홈페이지)
지난 8월 23일 미림여고 소공연장에서 열린 자율동아리 심포지엄 모습. (사진=미림여고 홈페이지)

-방학 중 프로그램에는 무엇이 있나.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은 교과중심 강좌와 심화 및 전공탐색형의 비교과 강좌로 이원화했다. 방학 중에는 심화 및 전공탐색형 강좌가 다양하게 운영된다. 자신의 관심 분야와 진로에 따라 탐구주제를 정해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과학적 탐구능력 배양을 위한 실험 실습, 영문으로 보고서 쓰기 등의 강좌가 개설된다. 학기 중에 교과 공부로 비교과 강좌에 참여하지 못했던 학생들도 방학 중에는 이러한 강좌에 참여해 진로를 탐색한다. 또한 대학교수, 전문 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학생들에게 전공탐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인 ‘미래인재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방학 중에도 운영한다. 방학 중에는 시간적으로 더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강좌 수강이 끝난 후에도 관심 분야에 대한 개인별 후속 탐구 활동을 하도록 해 전공 심화 연구 경험을 하도록 한다. 겨울방학에는 본교 국제교류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일본 나라칼리지 학생 상호교환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한다. 1, 2학년 학생 중 희망자를 선정해 상호 방문과 홈스테이를 통해 한‧일 간의 교육, 문화, 사회, 경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질을 기르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 진로교육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체계적인 진로 교육 계획을 수립해 모든 학생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다수의 학생에게 진로 교육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선 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중요한 인재가 되기 위한 통합적 소양과 사회·과학적 탐구 능력을 계발하도록 돕고, 의미 있는 진로 및 전공 탐색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대학교수와 전문 연구원이 진행하는 ‘미래인재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문‧사회‧수학‧과학‧예술 전 분야의 우수한 심화 강의들을 제공하고 토론과 발표 및 개인 심화 탐구 활동을 유도해 의사소통 능력과 논리적 사고력, 자기주도적 탐구 능력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교육과정상 일주일에 한 시간씩 진로수업 시간을 배정해 진로담당 교사가 진로 및 전공 탐색 활동을 진행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진로와 직업군을 안내하면서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미래와 직업을 탐색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NIE 수업’도 진로와 연계해,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안목을 기르고 자신의 희망 진로 분야에 대해 다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기별로 전공적성검사를 실시해 학생들의 적성 여부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정보를 획득하고 있다. 특히 학생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해 방과 후에도 진로담당 교사와의 개별 진로상담 시간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연중 진행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4차 산업 진로박람회’, 1‧2학기 ‘직업 탐색의 날’ ‘대학탐방 행사’ 등을 운영해 미래 기술과 학과, 직업에 대한 다양한 정보 탐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명사 초청 특강’ 및 ‘진로 특강’을 연중 수회 실시해 직업 세계의 변화, 진로 역경 극복 사례, 청소년기 진로 결정 방법 및 직업인의 자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지역과 긴밀하게 연계’해 관악구 소재 인적 자원 및 진로직업체험 지원센터 자원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내실 있는 진로직업교육체험 활동을 실현하고 있다.”

-대학 진학 성과는.
“미림여고에 입학하면 교과 수업에서부터 교과 연계 심화 탐구 활동, 수행평가, 동아리 활동, 대학교수와 함께 하는 역량강화 수업, 외국인 학생들과의 협업을 위해 엄청난 하드 트레이닝을 한다. 그 결과 일반고 전환 후 첫 졸업생 187명 중 2019 대입에서 서울대 3명, 연세대 5명, 고려대 6명, 성균관대 11명, 이화여대 8명이 진학하며 자사고 때보다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끝으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상급학교 진학만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역량을 기르고, 고등학교 교육과정 자체를 즐기기를 바란다. 전문가인 교사를 신뢰하고 함께 배움의 과정을 공유하면서 성장하는 기회를 갖기를 기대한다. 사과 속의 씨앗은 셀 수 있지만, 씨앗 속의 사과는 셀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갖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복효근 시인의 ‘안개꽃’이라는 시로 대신하고자 한다. ‘나로 해/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 네 몫의 축복 뒤에서 /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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