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지음 박상순 옮김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

[한국대학신문 신지원 기자] 시각적인 실험시의 계보를 잇는 박상순 시인이 온전히 한글화하고 해석한 이상 시 50편 전집이 출간됐다. 이상은 한국 문학사에서 모더니즘, 다다, 초현실주의를 시도한 최초의 아방가르드 시인이다. 국문학과 논문 주제 1순위가 될 정도로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약 100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적인 감각의 원천이 되는 매력적인 시인이다. 특히 국내 최초 초현실주의 문학동인지 《삼사문학(三四文學)》에 발표한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I WED A TOY BRIDE)〉(1936)에서 이상은 ‘장난감 신부’를 통해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아폴리네르의 마네킹 모티프, 사진작가 만 레이와 한스 벨머의 인형 이미지, 그리고 화가 막스 에른스트의 ‘신부(bride)’의 상징성까지 아우르면서 “인간의 몸에서 움직이는 마네킹을 발견”하고 “체제에 구속당한 신체의 반영”을 드러내면서 현대적 성찰과 국제적 감각을 동시에 확보했다.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 해석판 이상 시전집》은 이상의 국문시 50편을 실었다. 그동안 산문으로 보았던 「산책의 가을」, 「실낙원」, 「최저낙원」 세 편을 시의 영역으로 위상을 조정했다. 처음으로 발표한 한글 시 세 편 가운데 하나인 「1933. 6. 1」에서 이상은 “무게를 재는 천칭 위의 과학자, 뻔뻔히 살아온 사람에서 벗어나 마침내 자신을 드러내겠다”는 다짐을 한다. 1933년은 이상이 총독부를 사직하고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해다. “이상의 시는 객체화든 객관화든 타자화든 간에 근대적 주체의 인식과 파기이다. 1933년 이날의 다짐은 그동안 일본어로 써서 발표한 시와의 이별일 수 있다.” 그래서 박상순 시인은 ‘이상 시전집’에서 일본어 시를 제외한다.

1부 나는 장난감 인형과 결혼한다는 박상순 시인이 한글과 옛 표현을 현대어로 옮긴 이상의 시 50편을 실었고, 2부 모형 심장과 동적 시노그래피는 박상순 시인의 이상 해석이자 시인으로서 펼친 한 편의 시론이기도 하다. 부록에서는 이상이 시를 발표할 당시 원문을 그대로 붙였다.

“문학은, 특히 시는 더 많은 다수를 향한 말이 아니라 홀로 남겨진 한 사람을 위한 소리여야 한다. 시는 한 사람이 모두이고, 모든 것이 한 사람인 역사이다. 그래서 고독한 개인으로서의 시인는 절망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절망과 실패를 안고 한국 모더니즘 시의 역사는 더 생생하게 이어질 것이다.”
―박상순, 「에필로그」,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에서

이상은 집안 형편을 고려해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건축과)에 진학해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어릴 적부터 화가를 꿈꿨기 때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입선하기도 했다. 시인으로서는 ‘구인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는데, 1934년 연작시 〈오감도〉를 신문에 연재했으나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했다. 또 박태원의 신문 연재소설에 삽화를 그렸고, 친구였던 화가 구본웅의 출판사에서 잠시 편집자로 일하면서 김기림 시집 《기상도》 등을 편집하고 표지디자인도 했다. 자신의 단편소설 〈날개〉에 삽화도 직접 그렸다. 박상순 시인도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수백 권의 책을 편집하고 디자인했다. 즉 화가로서, 북디자이너와 편집자로서, 그리고 실험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거의 동일한 경험을 공유한 해석자인 것이다. (민음사 세계 시인선 /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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