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通] 행정의 속도
[대학通] 행정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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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분업화된 관료조직에 갇혀 같은 업무를 반복하다 보면, 행정이 혼자서 끝까지 달려야 하는 마라톤 경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각자의 일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유의 전문화된 업무 영역이고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부서 또는 개인의 분업화된 업무는 조직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해당한다. 목적은 하나의 프로젝트(이하 P) 단위로 구체화되는데, P는 어느 한 부서나 개인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P는 A 부서(또는 구성원)에서 B로, B에서 C로 이어지는 협업을 통해서 원하는 목표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실전에서의 협업은 순차적인 단선 구조가 아니라 여러 부서가 복잡한 협업 관계를 형성하고 동시다발적으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진행된다. P라는 목적 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행정은 고독한 마라톤 경기가 아니라 배턴을 이어받아 달리는 릴레이 경기와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릴레이 경기는 이어받는 주자가 달려오는 주자의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배턴을 넘겨받는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다음 주자가 가만히 서 있다가 배턴을 받은 후에야 뛰기 시작한다면 꼴찌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행정에서 P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는 협업 파트너 사이의 협업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 A의 마음은 급한데 B는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처리하고, C는 아예 서류를 묵혀 두고 시간이 되는대로 처리해 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이처럼 P의 협업에 참여하는 각 파트너의 속도가 제각각이다. 결국 P에 대한 행정의 속도는 가장 느리게 가는 C의 속도를 넘어설 수 없다.

행정의 속도 차이는 목적을 공유하는 정도와 상관관계가 있다. 목적을 공유하는 정도만큼 협업 파트너 간의 속도는 빨라진다. 목적 공유 정도가 약해질수록 협업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목적을 전혀 공유하고 있지 않다면 남의 일처럼 귀찮은 존재가 될 것이다. 릴레이 경기 주자들이 열심히 뛰는 이유는 서로 뚜렷한 목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자들이 서로 최대한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배턴을 넘겨받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행정은 협업 도중에 배턴(목적)을 자주 잃어버린다. 목적 공유가 되지 않으면 협업 과정에서 행정의 속도에 대한 개념도 사라진다. 하지만 행정에서 목적을 공유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릴레이 경기에서는 하나의 배턴만이 존재하지만 행정 현장에서는 다루어야 할 P의 숫자가 많고, 어디에서 받아서 어디로 넘겨줘야 하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P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P라는 목적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협업 관계 구조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정의 속도는 부서 또는 구성원이 P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될 것인지 아니면 끌려다니는 객체가 될 것인지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한데, 상대적으로 속도가 빠른 쪽이 상황을 주도하게 된다. 상하 관계의 구성원 간에도 마찬가지다. 지위가 낮더라도 상사보다 앞서 목적을 향해서 나아간다면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게 되고, 상사는 후방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상사로부터 항상 채근을 받는 부하직원이 될 것이다. 조직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너무 뒤처진다면 조직의 성과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더러 조직에서 이탈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너무 앞서 달리면 협업 파트너들과의 속도 차이가 저항으로 작용된다. 조직의 목표는 혼자서 이룰 수 없다. 혼자만의 속도가 아니라 함께 만든 전체 속도가 중요하다. 따라서 때로는 속도가 더딘 협업 파트너를 위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협업 파트너와 서로 속도를 맞춘다는 것은 조직이 목적을 위해 한팀이 돼 간다는 좋은 신호다. 협업의 속도는 행정의 속도이고, 속도는 곧 행정의 역량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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