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월구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내 이름은 ‘강월구’다. 이 이름으로 이제껏 불리고 살아왔다. 여기서 ‘강’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아버지의 성(姓)이다.

나는 아버지의 성만 내 이름에 있는 것이 늘 불편했다. ‘나는 엄마와 아버지 모두의 딸인데 왜 엄마의 성은 들어가 있지 않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문제의식이 더 커지고 엄마 성을 같이 쓰고자 시도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가족의 조언과 나의 용기 부족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부모성(父母姓) 또는 모부성(母父姓)을 같이 쓰면 소위 ‘쎈 여자’로 보일 테고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이 돼서였다.

사실 요즘도 모부성을 편히 쓰지 못한다. 대학교에서 ‘성과 사랑’과 ‘한국 사회의 성문화’라는 과목을 가르치면서 이 과목들의 목적이 우리 사회의 성차별을 없애고 성적으로 평등한 의식을 높이는 것인 만큼 이번 학기부터 강의안 첫 페이지에 ‘이강월구’라고 소심하게 썼을 뿐이다. 

우리의 이름은 우리의 일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우리의 생각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부성을 따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아버지 집안의 일원이 된다. 특히 명절 때 이것을 실감할 수 있는데, 명절에 아버지 쪽 집안에 가면 그곳에선 아버지 성씨들만 한 가족이고 아버지 성과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은, 즉 여성들은 그 집안에서 주변인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부계사회, 남성중심사회라는 것을 이것만큼 잘 보여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만약 아이가 어머니 성을 따르게 돼 있었더라도 여성이 이렇게 부차적인 성(性)으로 머물렀을까? 

우리나라 민법 제781조에는 “자(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자녀의 성을 엄마 성으로 하기 위해서는 혼인신고를 할 때 혼인신고서 4번 항목에 있는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란 물음에 ‘예’라고 답을 해야 하고, 이와 별도로 부부 양쪽이 이에 동의했다는 내용의 ‘협의서’를 작성해야 한다.

아이를 낳고 출생신고 시에 하는 것도 아니고 혼인신고할 때 아이의 성을 엄마 성으로 할지 아빠 성으로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결혼할 때 이러한 불편한 과정을 거쳐 아이에게 엄마 성을 줄 부부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이렇게 아빠의 성을 기본으로 하는 부성주의가 끝없이 명맥을 잇는 것이다.

아이의 성을 아빠의 성으로 할 경우의 부작용은 적지 않다. 이혼과 재혼이 급증하고 한모부 가족, 비혼모 가족, 사실혼 가족 등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데 아버지가 없는 가족 내에서도 굳이 아버지의 성을 따라서 한 집안에 다른 성씨가 있게 되고 그로 인해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은 학교나 사회에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민법 제781조는 헌법에 규정된 ‘양성평등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반하므로 개정돼야 한다.

어느 부모든 아이에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씨 중 원하는 것을 자유로이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 또는 이름을 평생 갖고 살 사람에게 성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 방법도 고려해봄 직하다. 모부(母父)가 아이 출생신고 시에 성을 공란으로 두었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엄마나 아빠의 성 중 한 쪽을 선택하거나 또는 아예 부모의 성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엄마나 아빠가 선택한 성을 성인이 된 개인이 쉽게 바꿀 수도 있어야 한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홀로 서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개인이 자기 성씨와 이름을 선택해서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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