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정성민 기자] 교육부가 대학혁신 지원방안과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 기본계획 시안을 연이어 발표했다. 대학혁신 지원방안의 목표는 학령인구 감소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 대학을 미래 인재 양성과 지역혁신의 중심축으로 만드는 것이다. 2021 진단의 골자는 ‘대학이 진단 참여 여부 선택 → 참여 대학 대상 진단 실시 → 진단 결과 일반재정지원 대상 선정’이다. 특히 교육부는 2021 진단 결과와 정원감축을 연계하지 않는다. 단 2021 진단에서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반영비율이 확대된다.

대학혁신 지원방안과 2021 진단 기본계획 시안 발표 이후 대학가의 반응은 냉랭하다. 충원율 반영비율 확대는 교육부 주도 정원감축식 구조조정의 연장선을 의미하며, 지역혁신 방안은 디테일이 부족하고, 재정지원 방안이 근본적으로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학가에서 바라는 혁신 방향이 무엇일까? 본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공동기획을 통해 대학이 위기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고, 4차 산업혁명 시대 주역이 될 수 있는 대학혁신 방향을 제시한다.

<글 싣는 순서>

①정원감축식 구조조정에 위기 심화···구조조정 방점은 ‘자율’
②붕어빵식 평가에 특성화 실종···특성화가 대학 교육의 미래
③대학 기능 일변도 탈피 시급···다양화로 미래 인재 양성 

“지금 입학정원이 120명이다. 전체 4학년까지 500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 규모의 대학과 함께 평가받다 보니 전문화·특성화를 못 하고 평가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1000명 미만을 구분, 평가한다면 극소 규모 대학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A 대 총장의 주문이다. A 대 총장의 주문은 교육부 대학평가의 한계점과 문제점을 의미한다. 붕어빵식 평가, 즉 대학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일률적 잣대로 평가하니 대학의 특성화는 실종된다. 주요 선진국들은 고등교육 혁신과 미래사회 대비를 위해 ‘대학 특성화’를 강조한다. 우리는 소규모 대학부터 대규모 대학까지 평가 보고서 작성에 1년 내내 시달린다. 심지어 “보고서 작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토로까지 나오고 있다. 보란듯이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것. 하지만 특성화가 담보되지 않으면 대학 교육의 미래가 없다. 이를 위해 붕어빵식 평가를 벗어나 대학의 특성을 살리고, 대학 교육이 다양화되는 평가제도 구축이 시급하다.

진단지표 맞추기 급급, 진단지표 현실 외면 = 교육부는 2015년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와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실시했다. 이어 2021년에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실시한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8월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이하 2021 진단) 기본계획 시안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2021 진단 추진방향을 ‘교육의 질 제고와 대학의 적정 규모화 지원’이라고 밝혔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1 진단 지표(일반대 기준)는 △발전 계획의 성과 4점(특성화 계획 또는 중장기 계획 등 발전 계획 2점+자율지표 2점) △교육 여건 20점(전임교원 확보율 15점+교육비 환원율 5점) △대학 운영의 책무성 9점(법인 책무성 4점+구성원 참여·소통 5점) △수업 및 교육과정 운영 29점(교양 교육과정 운영 7점+전공 교육과정 운영 7점+교수‧학습방법 개선 6점+총 강좌 수 1.5점+강의 규모의 적절성 1점+비전임교원 담당 학점 대비 강사 담당 학점 비율 1.5점+강사 보수수준 1점+수업관리의 적정성 및 운영성과 2점+학생평가의 적정성 및 운영성과 2점) △학생 지원 13점(학생 학습역량 지원 5점+진로·심리상담 지원 4점+취·창업 지원 4점) △교육 성과 25점(신입생 충원율 10점+재학생 충원율 10점+졸업생 취업률 3점+유지취업률 2점)으로 구성된다. 자율 지표는 2021 진단에서 새롭게 도입됐다. 이에 대학은 강점 분야를 자유롭게 기술할 수 있다.

교육부가 2021 진단 추진방향을 ‘교육의 질 제고와 대학의 적정 규모화 지원’으로 제시했지만 2021 진단도 지표 맞추기 경쟁의 도돌이표다. 이는 소규모 대학부터 대규모 대학까지 예외가 없다.

전임교원확보율을 예로 들어 보자. 전임교원확보율을 전국 대학 평균으로 평가하면 대학들은 ‘교원의 질 확보’보다 ‘교원 수 확보’로 대학평가를 대비한다. 졸업생 취업률 지표도 마찬가지다. 대학들이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학생들을 적성에 맞춰 우수 취업처에 진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묻지마식’ 취업을 불사해도 취업 인원을 늘려야 한다. 전임교원확보율과 졸업생 취업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단지표 맞추기는 교육의 질 제고에 역행한다. 박진석 전 전국대학평가협의회장은 “각종 평가 준비에 따른 인적·물적 에너지 소비로 대학의 고유 업무인 교육과 연구 기능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대학들이 너도나도 진단지표 맞추기에 급급하면, 대학의 특성화를 제대로 실현할 수 없다. 2021 진단에서 자율 지표가 새롭게 도입됐지만 배점은 2점에 불과하다. 반면 신입생 충원율과 재학생 충원율을 합치면 20점이다. 어느 진단지표가 진단 결과에 영향을 미칠지 자명하다. 결국 2021 진단 추진방향은 ‘교육의 질 제고’보다 ‘대학의 적정 규모화 지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정원감축 유도에 방점이 찍힌다.

심지어 2021 진단 지표는 대학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지금 대학들은 반값등록금 정책 장기화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2021 진단 지표는 재정 투자 없이 지표 상승이 불가능하다. 박진석 전 회장은 “등록금 동결에 따라 장학금, 강의료, 교원 확보, 기타 고정비용 등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교육환경 개선 차원에서 인적, 물적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방 사립대는 등록금 수입의 25% 이상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향후 재정 압박이 붕괴의 주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과 위주 평가지표, 대학발전 저해 우려 = 대학재정지원사업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평가지표가 정량 중심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대학의 특성화와 대학 교육의 다양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박경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주요 대학재정지원사업의 정량 평가지표를 분석한 결과 △교원 △교사 △교육비환원율 △학생 1인당 교육비 △장학금 △등록금 △충원율 △취업률 △교육과정 △연구 △산학 △국제화 △정원 조정 △총장 선출 등 14가지 정량지표가 대표적으로 활용됐다. 교원 지표(11개 사업)가 가장 많이 활용됐고 그 다음 취업 지표(10개 사업), 충원율 지표(8개 사업) 순이었다. 장학금지급률, 교원 연구실적, 산학협력도 6개 사업에 공통 포함됐다. 대학재정지원사업의 성격과 목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정량지표는 대동소이했다. 박 의원은 “재정지원사업에서 특정 평가지표가 중복 적용되는 것은 특정지표에 따라 ‘대학 줄 세우기’가 될 가능성이 크고, 대학의 자율 운영을 저해할 우려가 있으며, 재정지원사업이 다양하게 내세운 목표도 무색해질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출처= 박경미 의원실
출처= 박경미 의원실

교육부는 5개 목적성 사업을 통합, 올해 대학혁신지원사업을 도입했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일반재정지원사업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매한가지다.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 결과와 대학혁신지원사업이 연계된 것처럼 2021 진단 결과가 일반재정지원사업 대상 여부와 연계된다. 따라서 대학들은 일반재정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되기 위해 과거와 마찬가지로 진단지표 맞추기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박 의원은 “특수목적지원사업이 가시적 성과 위주의 대학운영 방식을 유도하고, 재정지원의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한 점을 감안하면 정책 변화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러나 선별 지원에서 다수 대학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뿐만 아니라 대학이 안정적으로 질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도록 성과 위주 평가지표보다 ‘지원과 육성’ 전제의 평가지표를 담은 새로운 재정지원사업 설계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대학평가, 특성화와 다양화에 맞춰 재설계 시급 = 대교협 소속 회원대학은 200개 교다. 설립 유형부터 소재지, 규모까지 다양하다. 또한 대학마다 설립목표와 인재상이 있다. 그러나 붕어빵식 대학평가가 대학의 특성화와 대학 교육의 다양화를 가로막고 있다. 이현청 한양대 석좌교수는 “실제로는 설립이념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공립과 사립을 구분하지 않는 정책을 수행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획일화된 잣대와 정책, 획일화된 법적 규제 등이 설립이념과 상관없는 오늘날의 대학 모습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선진국은 어떨까. 미국은 민간 비영리단체인 교육인증협회(CHEA; Council for Higher Educations Accreditation)가 대학인증평가를 주관한다. CHEA는 대학의 사명과 목적, 발전계획, 교육프로그램, 교수·학생, 교육시설·재정 등으로 대학을 평가한다. 영국은 고등교육평가원(QAA; Quality Assurance Agency for Higher Educations)을 중심으로 영국 고등교육 품질기준(The UK Quality Code for Higher Education)에 따라 대학인증평가가 실시된다. 평가 대상은 학위수여 기준(학습 성과 포함), 교육품질 기준, 정보제공 기준 등이다.

대교협 관계자는 “미국과 영국의 기관평가인증제는 전통적으로 대학의 사명에 따른 평가를 강조했다”며 “평가준거 또는 평가기준을 비교적 광범위하게 제시하고 있다. 대학은 자체 평가보고서를 대학 사명, 교육목적, 교육목표 등에 근거해 자유롭게 기술할 수 있다. 평가인증을 위한 평가에서도 대학 사명 등에 근거해 평가준거와 평가기준들이 작성됐는지를 검토, 대학의 다양성 반영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우리는 붕어빵식 평가, 평가를 위한 평가에서 조속히 벗어나야 한다. 목적은 대학의 특성화와 다양화 실현이다. 500명 미만의 소규모 대학이 간호 등 보건의료에 경쟁력이 있다면, 보건의료특성화 대학으로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대규모 대학들과 동일 지표로 평가받을 이유가 없다.

윤지관 덕성여대 명예교수는 “대학들은 특성, 설립 형태, 규모, 소재 지역에 따라 현격하게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 평가로는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에서 대학의 특성을 나누기 어렵다면 각 대학에 특성화를 요구하고, 평가군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부여하면 될 것이다. 특성에 따라 대학들을 평가하면 각각의 특성을 추구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라고 제안했다.

김헌영 대교협 회장은 “총장들과 대화하면 '교육부 평가받다 임기가 끝난다'고 말할 정도로 오늘의 대학가는 각종 재정지원사업 제안서나 보고서 작성, 평가 수행 등에 부담감을 크게 갖고 있다”며 “대학평가 제도를 일원화해 대학 스스로 자율적인 구조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면, 정부도 고등교육 재정 확보와 지원 등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