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연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안연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안연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작년의 대입제도 개편 논쟁 결과가 채 시행도 안 됐는데, 또다시 대입 논쟁이 뜨겁다. 골치 아픈 대입 문제를 여론의 향배에 따라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여론은 정시모집을 확대하라는 것이 많을 수 있겠다.

학력고사로 대학에 진학한 학부모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낯설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학교나 선생님들의 학생부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 학종은 스펙이 중요하다는 소문을 진실로 믿고, 이것저것 자녀에게 시키려니 힘들다. 차라리 수능성적으로 대학가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학생들은 동아리‧자율‧봉사‧진로 활동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니 귀찮다. 수능 공부만 파고드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제풀이에 강점을 가진 학원수업에 밤새 매달린다. 낮 학교 수업시간에는 못잔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한다. 그래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학종이 아닌 수능성적으로 대학에 가겠다는데. 선생님이 책임지지 않을 거면 간섭하지 말라는 식이다.

사교육계 사람들은 당연히 수능전형을 원한다. 사교육은 학생이 배우는 교사가 직접 출제하는 학교시험보다는,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시험인 수능시험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발표한 지역별 수능 각 과목의 성적 통계를 보면, 재학생보다는 재수생, 시골 지역보다는 대도시 지역의 학생들의 수능성적이 좋았다. 또 학종은 학교 내 활동만 인정하니 수익성 창출에도 한계가 있다.

교사들은 학종 지지자가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학종 대비는 피곤하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의 각종 항목에 기록을 잘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활동의 장(場)을 제공하고 지도해야 한다. 수업도 토론‧평가‧기록 수업을 해야 한다. EBS 문제집으로 정답을 콕콕 집어내는 교수법이 훨씬 편하다. 수능 점수 결과는 학생 책임이다. 교사는 열심히 가르쳤는데, 학생이 이해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육 주체들은 수능전형 대비는 익숙하고 단순하며, 학종 대비는 힘들고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이러니 여론 조사를 해 보면 학부모도 학생도 사교육도 심지어 교사도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들먹이며 ‘학종’을 기피한다. 그러나 여론에 의한 결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닐 게다. 예수님의 사형도 여론으로 선고된 것 아닌가.

따지고 보면 ‘수능전형’이 공정하다는 여론은 한계가 있다. 숫자로 표현되는 수능점수는 얼핏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0.1점의 수능점수 차까지 컴퓨터가 합격, 불합격을 가르는 평가방식은 객관성이지 공정성은 아니다. 사람(입학사정관)이 학생부의 기록 항목을 보며, 학생의 교육적 환경과 성장과정을 평가하는 방식이 신뢰성만 담보되면 오히려 공정하다.

사실 수능 점수는 수험생의 운이 따른다. 수능은 재학생에게는 단 한 번의 시험이다.(그러나 ‘학종’은 열 번, 다섯 학기의 시험 성적을 종합해서 본다.) 수능 시험 날의 몸과 마음의 컨디션 상태에 따라 점수 결과가 달라진다. 또한 해마다 널뛰기하는 수능 과목의 난이도, 선택 과목의 유‧불리, 경쟁자들의 쏠림에 따라 점수가 출렁인다. 상대평가인 수능 과목은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경쟁자의 실력에 따라 내 위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시골학교에서도 대도시 학교에서도 교과 성적 1등급 학생은 존재한다. 시골 학교 내신 1등급 학생이 수능성적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대도시 학교 학생보다 삶의 노력이 뒤졌다고 할 수는 없다. 시골학교 학생들이, 교육 소외계층에 있는 학생들이 ‘학생부전형’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여론을 핑계로 대입제도를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론보다는 미래의 인재상, 교육적 가치를 염두에 둔 대입 정책을 공고하게 세웠으면 좋겠다. AI(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인재는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할까? 지식의 암기력일까? 인성(협동, 도전, 배려심 등)과 창의성일까? 고교 교육과정 정상화 차원에서 학생이 비 입시과목도 즐겁게 수강할 수 있는 대입전형은 무엇일까? 2015 개정 교육과정과 고교 학점제를 구현할 수 있는 대입전형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는 대입정책을 세웠으면 좋겠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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