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수학습센터장

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수학습센터장
주현재 삼육보건대학교 교수학습센터장

얼마 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IT 강연에 참석했다. 이 강연은 구글, 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최신 기술과 트렌드를 바탕으로 혁신을 어떻게 이뤄 가고 있는지 설명하는 자리였다.

도착했을 때 거의 비었던 자리가 강연 시작 10분 전쯤 어느덧 다 채워져 있었다. 강연에 참석한 인원수는 대충 계산해 봐도 1500명은 될 텐데, 인기 있는 강연이구나 싶었다. 글로벌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한국인 강연자들은 자신감이 넘쳤고 본인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것이 느껴졌다. 매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청중들이 손을 많이 드는 것도 낯선 경험이었다.

한 강연자는 ‘도그푸딩’(dogfooding)의 정신을 강조했다. ‘도그푸딩’은 ‘자신의 개밥은 자신이 먹어라(Eat your own dog food)’라는 뜻의 IT 업계 용어로, 자사의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부인들이 먼저 열심히 사용해 보고 개선하는 걸 의미한다. ‘도그푸딩’은 사람중심의 기술과 연결된다. 기술적 성취에 몰입한 나머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실패하기 쉽고,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단순한 기술이라도 사람의 접근성과 편리성을 더해 줄 수 있어야 비즈니스에서 성공할 수 있다.

최근 전문대학에는 핵심역량 교육과정이 화제다. 다수의 대학에서 전미교육협의회(NEA;National Eduation Association)를 통해 제시된 4Cs(Critical Thinking, Communication, Collaboration, Creativity)를 활용하거나 이와 유사한 핵심역량을 도출하고 있다. 4Cs의 개념은 2015년 세계교육포럼에서 유네스코(UNESCO)를 통해 제시된 세계시민교육(Global Citizenship Education)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 세계 교육계의 관심을 끌었다. 국내 전문대학에는 마치 NCS가 처음 도입됐을 때의 열기처럼 핵심역량이 활용되는 분위기다.

4차 산업혁명으로 직업 생태계가 요동치고 있는 오늘날, 고등직업교육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전문대학이 4Cs와 같은 핵심역량을 통해 교육과정 혁신을 도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핵심역량이 지난 NCS 도입 시 가져왔던 혼란의 전철을 밟지 않고 전문대학에 성공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핵심역량은 실용적 인재 양성과 직업인 양성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전문대학에 적합한 특성을 가졌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은 대학혁신지원사업 등 매년 평가를 받아야 하는 대학들의 처지를 고려할 때 장기간에 걸친 본질적 혁신보다는 연차평가에 초점을 둔 페이퍼 작업이 많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량 기반 교육의 도입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인재상에 맞춘 핵심역량 도출과 그에 따른 교육과정 개편, 그리고 교수학습방법의 변화 및 평가방법 개선 등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들의 경우 1년마다 연차평가를 받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따라서 매해 실적과 성과가 중요한 대학들로서는 핵심역량의 개발과 운영에 조급하게 된다. 핵심역량은 대학의 인재상과 연관이 깊은데 대학이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칠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는 국고지원이 이뤄지는 대학의 사업평가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도그푸딩’의 정신으로 교육부는 대학과 학생의 입장에 서서 국고지원 사업 평가를 기획해 보면 어떨까. 만약 교육부나 한국연구재단이 며칠이라도 대학의 사업단이 되어 평가를 준비해 본다면 바뀔 게 많을 것이다. 대학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학뿐 아니라 정부 기관의 도그푸드 정신이 필요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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