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식 서울구치소 보안과 교도(서정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졸업)

김강식 서울구치소 보안과 교도
김강식 서울구치소 보안과 교도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10월 28일 교정의 날은 일제로부터 교정시설을 접수한 날인 1945년 10월 28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은 교정 관련 종사자들의 사기를 높이고 재소자의 갱생의지를 촉진하는 행사도 열린다.

3개월 차 교정직 공무원인 김강식씨는 서울구치소 보안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정대학교를 졸업하고 3년 6개월의 시험 준비 끝에 2018년 국가직 9급 교정직 공무원 시험에서 합격했다. 이후 대기발령 기간과 2개월의 연수 기간을 거쳐 9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교도’로 일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역 근처에서 김강식씨를 만났다. 그는 교도소를 ‘사람 사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교도소는 외부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저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히 무서운 곳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일을 해 보니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더라고요. 여러 사람이 있지만, 지극히 평범한 모습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사람은 모두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어떤 때는 이곳이 교도소인지, 사회의 보통의 공간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하는 김강식씨는 3개월 만에 ‘구치소 생활’에 적응한 듯 한 모습이었다. 벌써부터 업무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에서는 열정 가득한 새내기의 모습도 엿보였다.

“이곳의 수형자들도 제가 인도적으로 대하면 그만큼 제가 하는 일에 잘 협조합니다. 사실 주 업무는 아니지만 어떤 때는 수형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제가 격려하며 마음을 썼더니 생활에 잘 적응하며 교화되는 수형자도 있었어요. 수용생활을 힘들어하는 모습을 조금 보였는데, 제 말과 행동으로 힘을 얻고 착실하게 생활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이 컸습니다. 물론 월급이 들어왔을 때의 보람의 크기도 무시할 수 없고요.”

교정직 공무원은 교정시설에 구금된 수용자 그리고 그중에서도 형이 확정된 수형자를 관리, 감독하고 교정‧교화하는 다양한 일을 수행한다. 업무 시간은 4부제로 이뤄진다. 주간 근무와 야간 근무, 비번 근무, 윤번 근무다. 체력을 관리하기 쉽지 않지만 일하는 시간과 휴일이 정확하게 나뉘기에 만족스럽다는 김강식씨. ‘교도관’에 대한 편견도 존재하지만, 그에게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더 크다.

“저녁 5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오전 9시에 퇴근하는 야간 근무는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힘든 수험생활을 견뎌냈기 때문에 마냥 힘들지만은 않아요. 야간 근무 다음날은 비번이라 하루종일 쉬는데, 이때 운동도 하고 충분히 휴식하면서 체력을 보충하죠. 교도관의 업무 특성상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일이 많은데, 그래서 미디어에서 거칠게 묘사한 모습이 널리 알려진 교도관의 모습인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 교도관들은 법과 규정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수용자들을 보호하고 도움을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따뜻한 일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그는 소방안전관리과에 진학해 소방공무원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체력시험을 준비하던 중 허리 부상을 입게 됐고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길을 찾을 때, 일생을 교정직 공무원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제복을 보며, 업무 후 자기관리에 애쓰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교도관으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져 주셨기에 그 직업에 감사한 마음도 있었고요. 소방관을 생각하다가 다른 길을 찾으려 했을 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고 새로운 길을 찾게 됐어요. 29세에 이 길을 걷기 시작한 아버지는 여전히 현직 교도관으로 근무하고 계십니다. 30년 정도 되셨죠.”

대를 이어 교정직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된 그는 요즘 아버지의 행동을 닮아 가고 있다. 지금은 3개월의 신입 교도관이지만, 아버지의 뒤를 따라 30년 차 베테랑 교도관이 될 때까지 묵묵히 맡은 임무를 해 내고 싶은 것이 그의 소망이다.

“교정 업무를 하면서 종종 ‘아버지는 이런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3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항상 투철한 사명감으로 정직하게 근무하시고 업무 능력도 좋으셨던 아버지의 뒤를 걷게 된 지금, 아버지와 같은 길을 계속 걷고 싶다는 바람이 큽니다. 저도 아버지처럼 성실하고 정직하게 업무를 수행해 내는 한 명의 교정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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